2002년, 102M, Color
감독: 사부(SABU)
주연: 츠츠미 신이치(堤眞一)
       시바사키 코우(柴咲コウ)
       안도 마사노부(安藤政信)
       오오스기 렌(大杉漣),
       테라지마 스스무(寺島進)

인생이란 수 많은 비유법으로 칭송되고, 의미화 되어왔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길"이란 단어에 의해 규정 지어진 삶이란 언제나 끝이 없고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어떤 꽉 짜여진 길이 가지고 있는 묘한 의미처럼 다가오곤 했다. 그래서 운명같고, 또 그래서 아프게 느껴지기도 하는 길과 같은 인생, 우리는 그 위를 걸어가면서 살아가고, 뛰어가면서 넘어가고, 때론 쉬면서 나름의 형태를 취하며 길을 지나간다. 물론 그 길이란 끝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적잖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길로 치환된 삶에 대해 그리고 그 길을 지배하는 인생의 속도에 관한 의미를 생각케 하는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제목은 <드라이브 Drive> 말 그대로 인생, 길, 속도에 관한 왁짝지컬한 인생역전 코미디이다.

영화를 만든 이는 국내에 <포스트맨 블루스>로 어느 정도 알려진 사부 감독,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재미난 영화를 만들어 내는 감독으로 관심 있는 주제를 별 욕심없이 작게 잘 그려내는 감독이다.

모든 차들은 다 떠나고, 홀로 정지선에 서 있는 차가 한 대 있다. 그리고 그 차를 허겁지겁 얻어타는 세 명의 남자, 셋 다 복면을 쓰고 있고, 하나는 칼까지 들고 있는 걸 보니 직업이 어느 정도 예상이 간다. 차에 오르자마자 셋은 흥분한 상태에서 앞 차를 따라가라고 칼을 움직이며 외쳐 보지만, 이 차의 주인은 그저 '규정속도 40'을 지키는 바른생활맨이자 답답이. 소리를 지르고 위협을 하던 셋은 어느새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복면도 벗어던진 채 이 답답이를 향해 외치다가 안 통하는 걸 알고 한숨을 짓는다. 차례대로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는 이 세명의 강도는 아 아, 할 정도로 얼굴이 낯이 익은 일본의 배우들이라 반갑다. 이 황당한 사건으로 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이 작은 차에 타고 있는 4명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인생을 통해 삶의 일면과 그 삶속에 숨어 있는 인생의 속도를 보여준다. 같은 길을 같은 차를 타고 가지만 각각 다른 인생은 그들만의 가속도(각각 다른 과거와 현재로 연결되는 속도)를 통해 다르게 보여진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지만....그 인생은 차에서 하나씩 각자만의 이유를 가지고 '하차'하는 형식으로 결론지어지며, 그것은 각자 캐릭터들의 과거와 관련되어 현재의 삶을 보여주며 현재의 선택이 영화에서는 보여지지 않지만 어느 정도 상상이 가능한 미래를 예상하게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이 취하는 삶은 각자의 속도가 보여진 드라이브처럼 길 위에서 보여지고 계속된다.

제일 먼저 차에서 하차하는 청년과 중년의 중간이라고 말하고 싶은 이 아저씨는 음울하면서도 코믹한 느낌을 전해주는 독특한 캐릭터. 마치 스님같은 말을 혼자 중얼거리는 이 현학자는 우연히 마약에 심취해 있는 하드락 밴드(장르는 불확실하다. 펑크인지도 모르겠다)의 멤버를 질책하다가 마약에 뿅이 가 버린 놈 대신 무대에 오르면서 인생역전이 시작된다. 이른바 밴드의 간주 중간 중간에 랩 형식으로 중얼거리던 현학자의 말이 무대 아래에서 조명과 음악에 심취한 사람들에게 크게 어필, 대중스타로 거듭날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한번의 오디션도 없이 그는 어느 락 밴드의 리드싱어이자 랩퍼가 된 것이다. 로또보다 심한 인생의 우연, 여기서 크게 아니 웃을 수가 없다. 마치 어느 헐리우드 영화의 장면에서 본 듯한 이 우연의 컨셉은 스님이나 어느 철학자가 세상을 단죄하는 것과 젊음이 넘치는 음악이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것이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는 가능성을 느끼게 한다. 사부 식의 세상보기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 어정쩡한 나이의 아저씨는 차에서 제일 먼저 내린다.


그 다음으로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4명의 강도 중 가장 잘 생긴 청년, 우연히 신호 대기에 선 자동차 옆으로 묘령의 아가씨가 뒷 자석에 벌러덩 누운 청년을 보고 외친다. "지금 머하고 있는 거야?" 그냥 머....같이 은행을 털던 동료를 잡으려다 얻어탄 차가 추격은 커녕은 개인사를 뒤지는 로드 무비 형식의 운행이 되면서 동행하던 중이었다는 정도가 정답이 될 만하겠지만, 이 아가씨의 등장으로 이 청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차는 잠시 야구 연습장에 쉬게 되고, 실력을 발휘하던 청년은 프로야구단의 스카우터의 눈에 띄는 인생 역전의 기회를 맞는다. 어찌 그가 야구 실력이 있으며, 그의 그런 야구 실력을 딱 봐줄 스카우트가 거기 있었을까? 역시 사부식의 이 황당한 설정이 적지 않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아름다운 청년은 야구장으로,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도 기꺼이 그의 옆에 있으리라. 이로써 두 번째 하차다.

이제 남은 두 사람 중에서 이야기의 축이 되는 것은 주인공, 역시 이 뜻하지 않았던 동행은 소심하다 못해 짜증발전소를 방불케 하는 주인공의 소심증을 낳게 하고, 눈여겨 보던 은행 아가씨와의 새로운 동행이 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이 외에도 주인잃은 돈에게 제 갈길을 안내 해주며, 교정속도가 안겨 줬던 생활에 또 다른 드라이브의 속도를 선사한다.


젊은 감독 사부의 재기발랄함이 그대로 엿보이는 이 영화는 차 한 대와 그 차에 올라탄 사람들의 우연적이면서도 상상적이며, 또한 엽기적인 상황을 통해 인생에 대한 또 다른 해법의 가능성을 언급한다. 인생이 길로 치환되는 영화 속에서 드라이브란 그 과정이며, 그 안에 있는 속도는 자신의 인생이라는 차를 운전하는 속도=방식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이 사부식의 은유와 그 속에 담긴 유머가 비슷한 그의 영화들과 다르지 않으면서도 식상하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그 표현의 방식이 주는 묘미가 아니라 정론을 비켜난 듯 보이지만 자신의 스타일로 정론을 표현하는 사부만의 스타일 때문이 아닌가 싶다.
by kinolife 2006. 7. 14. 20:32
오월의 마지막 주말, 조금씩 시작되는 더위는 아주 조금씩 저녁을 빨리 기다리게 하고, 어쩌다 불어오는 바람은 황사가 지나간 이후라 조금은 반갑기도 한 때,,,,, 연세대학교 노천강당에는 여름을 시원하게 해줄 바람이 아닌 또 다른 한 바람이 불었다. 시원한 노랫가락과 넘치는 박수소리, 그리고 뜻을 같이 하고, 같은 소망을 바라는 많은 이들의 열기 속에서 시작된 열린 콘서트 <바람이 분다> ….

정태춘, 박은옥을 위시한 많은 음악인들이 참여한 공연 <바람이 분다>는 많은 대학교의 축제들 사이에서 오래간만에 대학의 열정과 변혁을 꿈꾸는 이들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인터넷 신문 ‘오마이 뉴스’를 비롯한 재야 단체의 주최로 정태춘과 박은옥을 비롯해 노래를 찾는 사람들, 윤도현 밴드, 이정열 등의 가수들이 함께 했다. 대중가요가 노래를 통해 시민정치와의 조우를 꿈꾼다는 점에서 이 공연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났다. 관객들 각자의 관람이유야 각양각색이겠지만,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정태춘이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향수는 독특하게 현재의 정치와 사회상과 유리되어 생각할 수는 없다.

80년대, 그리고 90년대까지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정태춘과 박은옥이라는 메인 타이틀과 함께 참여한 젊은 가수들은 노 개런티로 함께 노래함으로써 새로운 정치가 만들어내는 새 나라에 대한 작은 염원에 대한 열의에 동참했다. <바람이 분다>는 총 4부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영화배우 문성근의 사회로 1부와 3부에서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정태춘, 박은옥의 무대, 2부에서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 4부는 함께 하는 장으로 구성된 공연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과거 히트곡들과 다른 가수들의 포크, 락 음악을 통해 다양한 레파토리를 선사해 대학교 노천강당에서 우렁찬 함성이 함께한 열기의 무대를 선보인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 ’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진행, 그리고 공연장 입구에 “아직도 조선일보를 읽으십니까? ”라고 쓰인 샌드위치 걸개를 목에 건 청년들과 배우 명계남 씨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이날 공연장의 풍경들이 사뭇 묵직하거나 딱딱하게도 보일 수 있겠으나 그러한 느낌이 전혀 없었던 것은 공연의 진행이나 게스트들의 다양함에도 있겠지만, 노찾사의 초기 멤버들이 함께 다시 모였다는 동창회적 분위기와 유머 섞인 정태춘의 노래들, 그리고 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지닌 굳은 결심이 담긴 웃음처럼 당당한 자의 여유들이 대학가 노천강당에서 옛추억과 함께 잘 버무려져서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40, 50대의 젊어 보이는 부부와 386 세대를 대변하는 듯한 양복에 사각 서류가방을 든 사람들, 그리고 이 강당의 주인같이 편안한 젊은 학생들과 아이들을 무등에 태워 함께 온 부부까지, 들뜨고, 추억에 잠긴 관객들은 조악한 음향 시설과 울리는 하울링에도 굴하지 않고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고 손뼉치고 하늘과 시멘트 바닥 사이에서 이들은 다 하나가 되어 작은 손을 모은다.

제 1부, 아직도 채 해가 지지 않은 초저녁, 처음으로 소개를 받은 정태춘이 소개되고, 정태춘은 자신의 노래 “사람들”을 2002년 5월 버전으로 들려주며 사람들을 즐겁게, 그리고 생각하게 하며, 박은옥은 변함없는 목소리로 자신의 신곡 “빈산”을 부른다. 그리고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노찾사의 대표곡들이 불려지고 연이어 1부 게스트 강산에는 자신의 히트곡 “라구요”의 통일버전을 자신의 개인사에 엮어 들려준다. 근래에 보기 드문 강산에의 열창은 그가 얼마나 팬들 앞에서 노래 부르고 싶어했는지 짐작하게 하고, 무대는 그의 그리움만큼 뜨거워진다. 2부에 들어서는 “사계 ”를 비롯한 노찾사의 대표곡과 정태춘, 박은옥의 “정동진 2 ”가 계속되고 2부 게스트 이정열과 윤도현 밴드의 노래는 관객들의 폭발적인 열기로 더더욱 불을 뿜는다. 무엇보다도 관객들이 하나가 되어 열광한 이 무대에서는 자연스럽게 가수들의 열창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관객들의 함께하고픈, 여기 모인 이들이 힘을 모으고픈 열망이 함성이 되고 그 함성이 가수들에게 힘으로 전달되듯 인기나 선택한 곡들과는 상관없이 열기는 충천, 희망이 만발한다.  

열기는 식지 않고 이어져 4부에 다다라서는 이 곳에 모든 이들이 같은 마음으로 이 공연을 보고 있음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연호와 합창이 관객과 가수들과 함께 이루어진다. 전체적으로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원 멤버들이 다시 다 모이는 계기가 마련된 장이었지만 이들이 공연의 모토로 이야기 하는 새로운 정치시대 10년의 개막과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의미를 일깨우는 새 정치를 위한 축제의 성격 역시 지울 수 없다. 조금 규모가 큰 대학의 축제 같은 공연일지 몰라도 공연장 가운데 설치된 조형물은 이 무대를 더욱 더 의미 있게 만든다. 이렇듯 실로 오래간만에 현실 정치를 바꾸고 싶은 열망이 대학 내에서 노래와 함께 울린 것이다. 지난날, 혹은 과거 그 때 사회를 알게 되어 고민하던 이들과 함께 앞으로 다가올 10년을 꾸미기 위해 정치에 참여하고 힘을 모은다는 점에서 공연의 색깔은 빨간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색도 세월의 힘에 의해 분홍빛으로 옅어지고 부드러워진 분홍색은 유별난 몇 명의 사회 변화기가 아닌 일반 시민과 학생 대중들이 음악을 즐기듯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전달이 된다.

오래간만에 노래하는 많은 가수들과 오래간만에 한자리에 모여 소리 지르고 함께 부른 노래공연 “바람이 분다”는 6.13 지방선거, 이후에 이어질 대통령 선거까지 정치가 변해야 나라가 변한다는 모토아래 열린 무대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유도한다는 데 있어, 단순히 일부 어떠한 후보를 드러내놓고 지지하는 성격이 보인다 하더라도 혹은 선거의 스케쥴에 의도적으로 계획되어 보인다 할지라도, 대중문화가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팬들도 노래와 함께 현실정치에 관심을 가진다는 데 있어 보다 넓은 의미에서 노래의 또 다른 모습을 보기에 충분하다. 또 어떤가 화려한 락 카페에서 머리를 흔드는 이가 있다면 넓은 운동장에서 손을 흔드는 이도 있지 않겠는가? 노래를 듣고 춤을 추는 이가 있다면 노래를 들으며 생각하는 이도 있을 테니 말이다. 공연의 주최자들의 의도와 기대만틈 이 노래공연이 낡은 정치를 바꾸는데 아주 작은 청량 바람이어도 좋지 않겠는가!

Tip 이 글은 제자가 2002년 5월에 www.kpopdb.com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kinolife 2006. 7. 13. 23:09



"모든 역사를 통하여 진리와 사랑의 길이 항상 승리하였음을 기억하노라"

by kinolife 2006. 7. 13. 22:26


"음악이 시작되면 그걸 느끼기 시작하죠. 그럼 자연적으로 몸이 움직이기 시작해요."-알렉스(Jennifer Beals 분)
by kinolife 2006. 7. 13. 22:24
2002년, 미국, 125분
감 독: 알렉산더 페인 (Alexander Payne) 
각 본 : 알렉산더 페인(Alexander Payne)
          짐 테일러(Jim Taylor)   
원 작 : 루이스 베글리(Louis Begley)

출연: 잭 니콜슨(Jack Nicholson)
        호프 데이비스(Hope Davis)
        더몬트 멀로니(Dermot Mulroney)
        렌 카리오우(Len Cariou)
        하워드 헤스먼(Howard Hesseman)
        케시 베이츠(Kathy Bates)
        준 스큅(June Squibb)
        매트 윈스톤(Matt Winston)
        해리 그로너(Harry Groener)
        코니 레이(Connie Ray)
        필 리브스(Phil Reeves)   
        제임스 M. 코너(James M. Connor)   
        스티브 헬러(Steve Heller)   
        안젤라 랜스베리(Angela Lansbury)   

음 악 : 롤페 켄트(Rolfe Kent)   


같은 직장에서 30년을 전후하는 시간동안 근속 근무를 한다는 건 요즘같은 직장 분위기, 근무 환경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힘든 일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장애도 많고,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 쯤으로 치부되기도 쉽고, 요즘에도 그런 마인드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니 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만큼 한 직장에 뿌리를 박고 일을 한다는 것은 언제부턴가는 능력이 없다는 것의 한 증거가 되기도 했고, 고지식하다는 말과 연관되어 그 사람의 경직성을 표출하는 다른 표현이 되기도 했다.
그래미 시상식에서 남우 주연상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개봉한 영화 <어바웃 슈미트>는 그 수상자의 이름이 잭 니콜슨이라는 사실에 어느 정도 안정적인 연기를 기대하며 영화에 다가가게 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순간엔 그가 아니면 안되는, 아니 그를 진짜 연기자로 만들어준 영화구나 라는 생각을 쉽게 하게 된다. 이 바보같고 꽉 막힌것 같은 슈미트는 말 그대로 잭 슈미트여만 가능헐 것 같아 보인다.

평생친구였던 직장과의 영원한 이별, 그리고 그것이 사회로부터의 격리라는 걸 알게 된 슈미트, 정확한 시간에 몸은 움직일 준비를 하지만, 슈미트에겐 그의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곳이 없음을 알게 된다. 자신만의 시간이 많아질거라 기대를 하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해 버렸고 세상의 어느 곳도 그의 새출발에 무관심하다. 여유로와 곤혹스러운 낮 시간은 그의 허전함을 더욱 배가 시키는 증거가 될 뿐이다. 그 낮 시간에 우연히 보게 된 TV속의 운두구는  그의 허전함에 속에서 유일하게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미지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런 그에게 지저분하고 너무 싫어하는 습관으로 학을 떼게 하는 지겨운 아내의 죽음,  죽음 이후 밝혀지게 되는 친구와 아내와의 불륜은 이제 그가 믿었던 가족은 가짜였으며, 그를 일하게 해준 사회는 단순히 그를 이용한 장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는 슈미트를 버렸고, 슈미트 혼자에게  남겨진 가정은 모든 의미상실이 벽에 부닥트리며 힘을 잃고 만다. 말 그대로 팔 떨어지고 다리 부러진 연은 이제 곧 어느 이름없는 촌동네의 나뭇가지에 걸려 떨어지고, 부서져 날아가 없어져야 할 판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성에 차지 않는 사위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 지지 않은 사돈은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에 대한 도전 바로 그것이다. 이런 그에게 있어 자신의 딸의 결혼식이 있는 도시로 가기까지의 혼자만의 여행(물론 딸의 홀대로 시작된 여행)은 진정 열린 시간을 다시 자기식으로 재배열할 수 있는 계기인지도 모른다.

영화 <어바웃 슈미트>는 그래미 시상식에서의 잭 니콜슨의 말대로 드디어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게 된, 어느 명배우에게 제 2의 인생에 대해 쏘아 올려진 화려한 신호탄과 같은 작품이다. 잘생겼지만 엽기적인 더몬트 멀로니의 망가짐, 케시 베이츠의 화끈함은 이 영화가 코미디 영화임을 잊어버리지 않게 한다. 하지만 곳곳에 산재해 있는 웃음이란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뜻하지 않은 복병처럼 쉽고 편한 웃음이 아니며 채 웃음이 다 터지기 전에 인생은 황혼을 향해 달려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웃음이 주는 여운은 쓸쓸하다. 그 인생의 진실을 슈미트는 아내의 고집스런 버스 위에서 촛불을 밝히며 혼자 잠들고 혼자 깨면서 알 수 있으며, 거짓스런 인생 속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딸아이의 결혼식과 무지한 웃음 속에서 한숨 쉬며 어렵게 깨닫게 된다.

지나온 시간이 많기 때문에 남아 있는 시간이 훤히 보이는 이 나약한 늙은이 슈미트는 모든 사람들이 늙어갈 모습에 대한 한 전형을 보여 주늗 것 일지도 모른다. 영화 말미,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자신의 계좌와 일치하는 먼 곳의 가난한 나라의 소년 운두구는 그나마 슈미트에게 남겨진 선행과 봉사라는 이름의 마지막 의무인 셈이다. 혼자 남은 무력한 노인에게 의무란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행복하게 할 이 슈미트의 숙제 운두구는 고마움을 담은 편지 속의 욕심없는 그림을 통해 그에게 가장 인간적이며 시원스러운 통곡까지 선사한다.  써늘한 자신의 작은 집은 그의 울음을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며 그가 죽어가야 할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장소이다. 이 장면에서의 잭 니콜슨은 이 세상 모두의 늙어버린 슈미트의 모델 같아 보인다. 이 영화의 원안이 되었다는 1996년에 발표된 루이스 베이글의 동명 소설이 그의 통곡 때문에 더욱 더 궁금해 진다. 인생의 씁쓸함을 담고 있는 휴먼 코미디의 정수 <어바웃 슈미트>에게 <늙어감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붙여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을 듯 싶다.
by kinolife 2006. 7. 13. 22:17
1956년 10월 29일
* 출 신 : 도쿄도(東京都) 메구로(目黑區)
* 데 뷔 : 1984년 핑크영화로 데뷔
* 학 력 : 릿교(立敎)대학 문학부 불문과 졸업
* 가족관계: 1996년 발레리나 쿠사가리 다미요(草刈民代)(쉘 위 댄스의 여주인공)과 결혼

국내 최초의 국제영화제인 부산영화제에서 97년 소개된 영화 <쉘 위 댄스? Shall we ダン>로 우리에게도 알려진 수오 마사유키는 일본의 싸구려 애로영화를 지칭하는 핑크무비를 만들던 감독이었다. 우리나라 상황과 비교하자면 '유호'로 대표되는 애로영화 감독 출신이라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영화사에 빠지지 않는 명감독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를 영화 스승으로 동경하면서도 핑크 무비를 찍으면서 자신의 영화 생활을 시작한 수오 마사유키의 이 이력은 흥미로움 그 자체다. 핑크무비와 야스지로 참으로 어울리지 이름들이다.

1956년 도쿄 태생으로 중학교 때는 야구부에서 주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팔꿈치를 다쳐 문과 계열로 전향, 그가 영화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게 된 것은 2년 동안 재수생활을 할 때였다고 한다. 처음엔 재미로 영화를 보다 점차 예술 영화 전용관을 전전하며 일본영화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이 시절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작품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한다. 영화에 대한 꿈을 품고 있던 마사유키는 본격적으로 영화에 몰입,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찾을 수 있는 작품 <변태 가족·형님의 신부 變態家族·兄貴の嫁さん>의 극본과 감독을 모두 맡아 영화작가로서 정식으로 데뷔한다. 그의 이 감독 데뷔작은 일본 평론가들로부터 핑크영화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작품성을 높이 평가 받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화 <시코 밟아 버렸다 シコふんじゃった>의 극본을 쓰고, 감독을 맡게 되는데, 이는 수오 감독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극적 순간에 최종적으로 집약되는 뛰어난 내러티브 구조 속에서 눈물과 웃음이 한데 뒤엉킨 인생의 묘미를 여러 인간의 군상을 통해 표현한 이 작품은 키네마 준보(キネマ旬報)의 베스트 원,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 등 거의 모든 영화상을 독점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 영화사로부터는 "이것이 바로 상업영화다"라는 극찬을 받아 흥행감독으로 그 이름을 높히게 된다.

하지만 역시 우리에겐 <쉘 위 댄스? Shell we ダンス?>를 크게 기억한다. 가족주의적 댄스영화라는 독특한 특징을 가진 이 영화는 핑크무비의 감독을 헐리우드에 까지 이름을 드높히게 하고 있다. 사교댄스를 음지의 문화에서 양지의 문화로 전환시키는 등 일반대중 사이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쉘 위 댄스?>는 일본 아카데미상을 13개 전부문을 석권했으며 1997년 미국의 선댄스 영화제에서도 상영되기도 했었다. 이 영화는 선댄스에서 호평을 받은 데 이어 급기야는 헐리우드에 당당히 개봉되기도 했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도 부산국제영화제 소개, 관객들의 영화에 대한 소문이 퍼져 개봉,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야쿠쇼 코지가 주연한 이 영화에서 보다 활발하고 명랑한 마사유키 식의 가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일본색이 강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이 영화는 가장 보편적이지 않는 주인공과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수오 마사유키의 영화적인 힘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인 셈이다. 수오 마사유키는 핑크라는 달리기의 출발점에서 헐리우드라는 현재 그의 모습에서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현재 일본에서 주목할 만한 감독이다.

Filmography

<동경맑음 東京日和> (1997)
<쉘 위 댄스?Shall we ダンス?> (1996)
<大災難> OVA (1995)
<119> (1994)
<무덤과 이혼 お墓と離婚> (1993)
<異常の人? ??の虹の三兄弟> OVA (1993)
<시꼬 밟아버렸다 シコふんじゃった> (1992)
<팬시 댄스 ファンシダンス> (1989)
<マルサの女をマルサする2> OVA(1988)
<マルサの女をマルサする> OVA(1987)
<변태가족, 아버지와 형수 變態家族兄貴の嫁さん> (1984)
<짧은 속옷의 여인, 막 벗은 향내 スキャンティド ル 脫ぎたての香り> (1984)
<神田川淫??? > (1983)
<늑대 狼> (1982)
by kinolife 2006. 7. 13. 22:06
 

이 상에는 비슷한 것, 이른바 닮은꼴이 참 많다. 음악에서도 비슷비슷한 음률이나 분위기를 느낀다거나 비슷한 음악세계를 가지고 있는 가수들을 만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비슷한 음악, 비슷한 가수 이러한 음악세계에서 시와 노래의 만남은 조금 다른 영역에서의 비슷한 감성을 만나게 한다. 시가 아주 원시적인 시대에서는 그들이 부르던 가사였음을 상기한다면 시의 노래화는 '보는 시'에서 '듣는 시'로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크게 보면 음악과 문학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 같지만 시에 마음을 담으면 노래가 되었고, 노래를 깊게 들으면 시가 되듯이 이 둘의 관계는 마치 같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형제처럼 그 모양새나 느낌이 닮아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선보이는 BOOK-CD는 이 둘의 친밀함과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를 잘 알 수 있게 한다. 시와 독자와의 사이를 조금 더 친근하게 접근하는 방법으로 진행중인 여러 동인, 개인의 시노래들을 천천히 살펴본다.

이런 일련의 BOOK-CD 중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팀이 있다면 시인과 가수, 그리고 시인이 주축이 되어 만든 동인 ‘나팔꽃’의 활동이 아닐까 한다. 시인 김용택, 정호승, 도종환, 안도현과 작곡가이자 시인인 유종화 그리고 가수이자 작곡가인 백창우, 김원중, 배경희, 김현성, 홍순관, 류형선, 이지상, 안치환, 이수진 등이 모여 만든 시 노래 모임인 나팔꽃은 한달에 한번씩 작은 장소를 빌려 콘서트를 개최하고, 현재까지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주 현대문학북스, 1999)과 [제비꽃 편지](현대문학북스, 2001)라는 제목의 BOOK-CD를 두 권 만들어 냈다. 이 동호회에 소속된 시인의 시와 삶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책과 이들의 시에 노래를 붙힌 곡들을 위의 가수들이 부른 시디를 함께 읽고 들을 수 있다. 이들만의 독특한 서정성은 자신들의 홈페이지 입구에 씌어있는 -작게. 낮게, 느리게-라는 문구를 통해서 그 색깔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현재의 도시인들에게 더 없이 따뜻하고 윤택함이 될 수 있는 이들의 음악과 시는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시선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스스로를 작게 보는 넉넉한 마음과 자기를 낮출 수 있는 솔직함 그리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는 이 동인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이 나팔꽃 동호회에 속해있는 멤버 중에서는 나팔꽃을 통한 BOOK-CD 이외에 따로 출간한 개인적인 성격의 BOOK-CD들을 발간한 경우도 있다. 먼저 ‘노래마을’ 등으로 오랜 동안 노래패 활동해 온 백창우의 소탈한 노래 운동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동요집을 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시인 이원수씨의 시에 자신이 음률을 붙힌 동요집 [이원수의 시에 붙힌 노래들 1,2](보림, 1999)는 자신이 직접 결성한 어린이 노래패 ‘꼬마 굴렁쇠’들과 함께 해 포크 팬들은 물론 순수함을 원하는 맑은 노래들을 들려준다. 이 앨범 속에서는 ‘나팔꽃’ 동호회의 일원인 홍순관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토속적인 맛에다 풋풋함까지 서려 있는 이 앨범은 함께 부는 노래가 어떤 것인지 조용히 알려주는 독특한 앨범이다. 음악인으로서의 백창우 못지 않게 문학적인 감수성도 높은 백창우는 [사람하나 만나고 싶다] 1,2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가을편지] 등의 시집을 냈다. 단순히 음악인이라고만 하기에는 그의 문학적인 활동이 무척 왕성한 모습이다.

백창우와 함께 BOOK-CD [바람 부는 날](당그레, 2001)을 낸 시인이자 국어교사인 유종화는 시를 통한 노래운동,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말의 아름다움과 참다운 삶을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바람 부는 날] 역시 그의 활동을 볼 수 있는 좋은 보기가 되는데 유종화가 선택한 우리의 시들에 자신이 직접 곡을 붙혀 만든 이 노래들은 그 음색에 맞게 재야 가수들이 색깔있게 불러냈다. 이 음악과 함께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시에 대한 의미들은 담은 책은 CD만큼이나 돋보인다. 여느 시 해설서에서 볼 수 없는 개인적이면서 솔직한 글들은 우리의 시가 가진 아름다움을 아주 쉽게 보여준다. 시가 어떻게 노래가 되는지 그 과정을 알려주는 듯한 그의 글, 그리고 우리의 노래들 중에서 여느 시 못지 않는 감성과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노래 가사까지 꼼꼼하게 적은 그의 글들은 맑은 노래만큼이나 다양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전해준다.

이들 앨범과 그 멤버나 성격이 비슷한 또 하나의 BOOK-CD [혼자 사랑한다는 것은](명예의 전당, 2002)은 가장 최근에 발표된 BOOK-CD이다. 시인 이정하 씨의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에 가수이자 작곡가인 김현성이 곡을 붙힌 이 BOOK-CD는 기존의 김현성의 음악세계를 아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낯설지 않은 앨범이다. 보통의 사랑노래와는 다른 김현성 식의 사랑노래를 담백한 음색으로 들을 수 있는 이 앨범은 그를 중심으로 결성된 문화행동 ‘혜화동 푸른 섬’이 노래해 부담없는 사랑 노래를 전해준다. 단순하면서도 말랑말랑한 사랑노래와는 다르게 시적인 언어로 정화된 사랑은 단순한 고백이나 맹목적인 사랑으로 일관하는 메인스트림의 사랑노래와는 다른 정서를 전해준다. 이것이 이른바 김현성 스타일의 포크에 담긴 사랑일 것이다.

위에 소개된 노래들을 듣다 보면 역시 시와 음악의 사이에 흐르는 감정이란 시가 음악에부터 가사부분을 담당하는 형태라는 당연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이 노래가 가지고 있는 문학성이기도 하며 음악이 문학에 기댄 부분이기도 할 테다. 그리고 잘 만들어진 노래 가사는 문학에 자극을 주기도 하면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일 테다.

이제까지 열거된 앨범과 책들이 포크 가수들과 시인의 시 그리고 편곡자들이 만들어낸 앨범이다. 이러한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는 여타의 앨범들 속에서 특별히 돋보이는 앨범들이 있다. 그건 바로 시인들이 직접 노랫말을 만들고 자신들이 직접 앨범의 노래를 부른 경우다.
시인이자 노래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한보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꽃 한송이 주지 못했네](당그레, 2001) 라는 제목의 BOOK-CD를 발표했다. 우리 정서가 충분히 담겨있는 노래가사와 자신의 음성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의 목소리는 일면 너무 평범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숨김없음이 가지는 담백함이 전해주는 그의 색깔은 색다른 사랑노래로 거듭날 수 있게 한다. 언더 중에서도 언더로 불릴 수 있는 그의 시와 음악은 마치 청학동 동자들의 노래처럼 세상과 유리되어 있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 안에 있는 개인적인 감수성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데 있어 편안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최근 요란스러운 가요계의 여러 풍토들을 생각한다면 그의 이런 활동이나 노력은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한보리가 음악이나 문학적인 활동에서 시작하는 단계라고 한다면 또 한명의 이 문학인 이제하는 문학적인 경륜이나 여러가지로 상당히 놀라움을 전해준다.
소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쓴 소설가로 그리고 시인으로 많이 알려진 이제하가 1990년 말에 발표한 시집 [빈들판](나무생각, 1998) 과 음악은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을 선사한다. CD에 담긴 총 12곡 중에 10곡을 자신이 직접 만들었으며 예전 여러 기수들에 의해 애창되어온 “세노야”를 자기식으로 불러준다. 워낙 내공이 깊은 문학인이었으니 그가 노랫말을 만들었다는 소식은 놀랄 일이 아니겠으나 그가 직접 노랫가락을 만들고 불렀다는 것은 센세이션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한다. 이제하의 목소리는 구수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 한데, 마치 오랫동안 잘 숙성시킨 된장이 전해주는 편안함과 구수한 맛이 넉넉한 삶의 성찰로 빠져들게 한다. 황혼으로 달려가는 한 나이든 사나이이자 문학인인 그의 삶은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된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독백의 성격이라 볼 수도 있는 이러한 성찰의 내음은 노랫말 곳곳에 나타나는 우리 자연과의 호흡과 내면을 다듬는 개인의 자숙이 섞인 우리 포크의 진수같이 보인다. 마치 최근까지 잠자고 있는 우리 포크에 정신을 깨우치는 돌팔매 같은 이 음반은 90년대를 통틀어 손에 꼽을 만한 포크의 수작이라고 보기에 전혀 아까움이 없이 앨범이다.

시를 쓰는 사람, 노래를 만드는 사람, 노래를 하는 사람, 어쩌면 이들은 같은 나무에 달린 나뭇가지처럼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태고적에는 같은 것이었다. 꽃이 필 때면 열매가 숨을 죽이고 있고, 꽃이 다 지고 나면 비로소 열매가 열리는 것과 같이 서로를 드러내지 않고 잘 보듬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이 문학적인 음악들은 장르로 말하자면 수수한 포크 정도로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때로는 특별한 장르 구분 없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듣는 이들에게 부담없이 전해진다. 삶 속에서 노랫말을 찾고 그 안에서 성찰을 담아 노랫가락을 붙히고……노래를 단순한 노래에 한정하지 않고 노랫말을 음미할 수 있어서 좋고, 마치 따분함이나 너무 어려움의 진수로 볼 수 있는 시를 편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이 시를 노래하고, 노래를 읽게 하는 BOOK-CD들은 갖가지 개성과 매력으로 다가온다. 여름을 향해가는 봄의 끄트머리에 시와 노래가 함께 담긴 이 종합선물 세트는 명절 이외에 과자 꾸러미를 지고 집에 오신 삼촌마냥 푸짐하고 행복한 순간을 전해준다.

이 글은 제가 2002년 5월에 www.kpopdb.com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kinolife 2006. 7. 13. 18:38
국내 음반 유통업계의 일반적인 판로를 통하지 않고 독자적인 루트를 통하는 음악이란 역시 시장성 없음, 혹은 독특한 자기 고집의 과다 쯤으로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이러한 루트 중에서도 출판사를 통한 음반의 발매가 조용하면서도 꾸준하게 이어지는 현상이 눈에 띈다. 가장 흔한 포멧이 시집과 묶어나오는 시 낭송집과 작사가 곧 시라는 점에서 시집과 노래CD가 묶여나오는 것 등이다. 이러한 부류의 앨범 중에서도 출판사 바오로딸에서 출시한 "사랑의 이삭줍기" 시리즈가 주는 신선함은 종교적인 색채만이 아닌 독특한 색깔로 새로움 이상의 여운을 남긴다.

사람과 사람과의 교통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흔하고, 또 인정하기도 쉽다. 하지만 그 사랑보다 더 가치있는 교통의 방법이 있다면 '배려'일런지도 모른다. 눈에 잘 띄지 않고 그 가치보다 폄하되는 배려는 계산없이 타인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줄 수 있기에 오랜동안 조용한 빛을 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숨어있는 작은 등불이 나즈막하지만 진심어린 힘을 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천주교의 교리 안에서 타인에게 봉사하는 삶을 일생의 자화상으로 삼은 수녀들이 부르는 노래는 그래서 더 큰 가치로 다가온다.

"사랑의 이삭줍기"는 1997년 1집이 발매된 이후 2001년에 2집이 발매되었다. 사랑을 근간으로 해서 '노래'로 배려와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이 앨범은 수녀들의 맑은 목소리를 실력을 갖춘 가요계의 순수함이 담아낸다는 데 있어 그 행보 자체만으로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종교적인 색깔을 바탕에 두긴 하되 일부러 드러내지 않으면서 일반 대중들의 정서를 받아들이는 노력은 이 앨범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랑과 배려를 그대로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첫번째 앨범에 수록된 "아름다운 사람", 두번째 앨범에 수록된 "백구"의 경우 김민기 작사, 작곡으로 국민 대다수가 익히 알고 있는 서정성 깊은 대중가요의 기본 코드, 하지만 순박한 수녀들의 목소리로 표현되는 노래는 익숙한 음률을 신선한 목소리고 새롭게 다가오게 한다. 이렇게 눈에 띄는 몇몇 곡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이 앨범의 백미는 대중가요를 다시 부른다는 일반적인 변주에 한정되지만은 않는다. 익숙한 가요를 다시 부르는 친근한 접근 사이사이에 녹아있는 이들만의 맑은 노래, 순박한 음성이 주는 독특한 안식 이 더 크게 다가온다. 척박하고 답답한 세상에 그들만의 새로운 신호를 담은 곡들은 노래를 듣는 동안은 세상의 고통과 고민에서 벗어난 착각을 가지게 한다. 첫번째 앨범에 수록된 도종환 시인의 시에 노래를 붙인 "꽃씨를 거두며"나 두번째 앨범에 수록된 "노래를 불러드릴까요" ,"행복한 과일가게" 같은 노래들은 우리 삶 속의 일상사가 주는 행복이야 말로 삶의 활력소임을 아낌없이 전해준다. 또한 1집에 수록된 "꼬마 천사와 꼬마 거지" 는 종교적인 색채가 두드러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녀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훌륭한 동요로써 모자람이 없다.

앨범에 담긴 하나하나의 노래만큼이나 눈여겨 볼 것은 두 앨범의 전체적인 성격.
두 앨범에 쓰인 작사는 뜻깊은 이들의 '시'와 '마음'라는 데 있어 충분히 감성적이며 교육적이다. 또한 이런 시적 감성을 욕심없는 마음으로 부른 수녀들 사이에는 훌륭한 가교로서의 한 음악인이 있어 음반이 더욱 더 빛을 발하게 한다. 독특한 행보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이어가고 있는 작곡가 겸 가수로 활동중인 김현성씨가 선보이는 음반 프로듀싱은 현재 가요계에서 상쾌한 기분을 가지게 하는 최고의 청량제로써 다가오게 한다. 음반 전체의 분위기를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기계음보다는 수녀님들의 목소리를 더욱 더 강조하는 그의 의도는 사람의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임을 여지없이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김현성씨의 프로듀싱은 함께 하면서도 수녀님들을 배려하는듯한 인상에서 전체 음악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조력자로서의 프로듀싱의 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인상은 남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만의 신호로 세상의 자기 아닌 것들에게 자기의 의지를 전달한다. 말과 몸짓, 그리고 글과 행동, 또한 그 많은 방법들 중에 '노래' 역시도 힘있는 자기 메세지 전달법이다. 몸으로 행동하되 조용히 노래하는 수녀님들의 행보는 급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나즈막하게 이 작은 노래를 통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한다.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이 욕심없이 맑은 사람들이 전하는 세상의 따스함과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사랑의 이삭줍기"는 앨범의 타이틀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에 버려진 아주 작은 하나의 이삭을 줍는 마음처럼 세상의 작은 미물에 대한 넓은 사랑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더더욱 풋풋한 마음 그대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마치 하나의 붕어빵 기계로 앙코의 양만 차이가 있게 만들어지는 최근의 국내 음반들에 비하면 이들 수녀님의 도전은 가요계는 물론 문화계 전반에 신선함으로 다가오며 가요계의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하나의 자극으로도 받아들여진다. 사랑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 부르는 욕심없고 맑디 맑은 노래는 반복되고 더 복잡해지는 '요즈음의 노래' 사이에 좋은 쉼터가 되며 일생을 통해 함께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말이 된다. 성서 속에서 누가로부터 전해지는 전언,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배부르게 한 것처럼 두 장의 "사랑의 이삭줍기"는 오천명이 넘는 이들의 가슴에 생물학적 배부름에 결코 못하지 않는 정신적인 편안함과 마음속의 사랑을 다시 새겨 줄 것이다.
p.s. 녹음 뒷이야기를 정리해주신 음반기획부 황젬마 수녀님 감사드립니다.

Tip 이 글은 제가 2002년 4월에 www.kpopdb.com의 미니웹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kinolife 2006. 7. 13. 00:00



제 작 : 후지TV
방 영 : 1999년 1월-3월
감 독 : 다케우치 히데로키(武內英樹)  
          나가야마 코조(永山耕三)
          하스미 에이이치로(羽住英一郎)
각 본 : 키타가와 에리코(北川悅吏子)  
음 악 : 타케베 사토시(武部聡志)

출 연 : 소리마치 타카시 (反町隆史),
          에스미 마키코(江角マキコ)
          키무라 요시노(木村佳乃
          카토 하루히코(加藤晴彦)
          이토 히아키(伊藤英明)
          니시다 나오미(西田尙美)
          이시다 유리코(石田ゆり子)  
          시이나 킷페이(椎名桔平)
                                                              
 주제곡: そのスピ-ドで (소노 스피도데) - The Brilliant Green  

부모님이 안 계신 집에 누나의 친구들과 함께 사는 사진작가 소이치로, 그리고 그 누나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어찌보면 이 드라마의 틀은 진부하기 그지 없다. 물론 끝도 없이 쏟아내는 연애에 대한 담론들은 결코 신선하지 않은..하지만 그냥 또 지나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드라마. 내 기억이 정확이 맞다면 SBS에서 채림, 최윤영, 이의정에다 최근에 크게 뜬 권상우를 엮어 만들어 냈던 드라마 <지금은 연애중>은 이 드라마들 배낀 것이 틀림 없어 보인다. 물론 1회, 2회를 보면 딱 떠오르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각 캐릭터들의 조금은 다른 듯 보이지만 같은 포지션이나 조금 변화됐지만 다를 것 없는 극중 인물들의 성격이나 직업 등이 그런 의혹을 버릴 수 없게 한다. 각 드라마가 방영된 시기(각각 1999년, 2000년)를 보아도 작가가 보고서 배끼기(참고가 아니가 배낀다는 과격한 단어를 쓴데는 그 만큼 차용한 정도고 심하기 때문이다.)에 적당한 딱 좋은 텀이 있으니 더더욱 심증을 확실케 한다.


이 드라마는 내가 수 많이 모아온 일본 드라마 중에서 솔직히 처음으로 본 일본 드라마이다. 구한지가 3년이 넘어서야, 그리고 보다 끊다를 5=6번을 반복하며 2년만에 다 본...남들이 들으면 그렇게 볼려면 보지 마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한꺼번에 혹은 단 시간에 다 보아내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다 보고 난 지금은 오랫동안 미뤄온 숙제를 끝낸 듯, 가뿐하고 기분도 좋다. 궂이 그 이유가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것 보단, 20대 후반의 여자들의 연애담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예전에 들아왔던 못난이 공주 이갸기로 풀어온 것도 좋고, 욕심없고 솔직히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주인공들의 연애의 자세(?)에도 꽤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주인공인 나츠키와 소이치로는 친구의 동생, 누나의 친구이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각별한 사이이다. 특히 그들의 관계가 가장 빛날 때는 서로의 연애담에 대한 상담이 이루어지는 시간, 서로가 남녀로 보지 않는다는 상호전제 아래에서 이들의 대화는 진지하면서도 따뜻하고,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일면 솔직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더욱 더 사람의 마음을 파고 드는 것은 느닷없이 들리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상황을 함께 인지해주는 사람이라면 이 둘에게서 사건이 생기고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별 뉘앙스를 남기지 않는 시시콜콜한 연애담에 머물지도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는 자뭇 소소한 재미를 던져주는 캐릭터와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이 주는 유쾌함으로 단순한 이야기의 지루함을 깨고, 이러한 드라마들이 가지고 있는 그 빤한 오점을 털어낸다. 그 외에도 고민 썪인 대화와 역시 사랑의 몫을 보는 이들에게 돌려주는 영리함을 보여주면서 긴 여운까지 남겨 준다.

그걸 이뤄내기 위한 방법이란 누구나 바라는 연애의 성공 짝대기를 보는 이들이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결론 내리며,  그 결론의 이유로 '뒷모습'이라는 화두와 연애의 성격은 연애를 하는 당사자들의 성격을 따라간다는 연애의 숨은 법칙을 깨지 않으면서 사랑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영리함이다. 주인공 소이치로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과묵한 남자. 역시 사랑을 쟁취하는 것에서는 한 발짝 물러 서 있다. 이런 반면 나츠키는 솔직하면서도 나름대로의 당당함을 지니고 있지만, 역시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서는 바라는 것 만큼의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다는 점에서 활달한 성격과는 달리 전형적인 여성의(연애라는 관점에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결코 여우가 될 수 없는 나약한 여자의 전형이라 볼 수 있겠다. 역시 연애라는 관점에서... 이들 사이에 아니 이들의 사이가 생기기 이전에 있었던 나츠키의 또 다른 남자 쿠가는 이혼을 한, 그래서 사랑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지만 솔직하면서도 너그러운 성격의 기대기 좋은 남자. 말 그대로 마음에서 울리는 사랑의 짝대기는 소이치로와 나츠키겠지만, 현실적인 사랑의 짝대기는 쿠가와 나츠키, 우리 나라 드라마가 전자를 이뤄냈다면 이 드라마는 작가의 본 의도대로 후자의 사랑으로 매듭짓는다.

이유는 역시 상대방에 대한 마음, 그리고 드라마의 제목 "Over Time"을 보는 관점이리라. 사랑을 이루어진다 또는 이루어낸다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Over Time"이란 다 끝났음=상대방을 얻는다는 점에서의 성취를 의미하겠지만 그것에 안주하지 않는다면 "Over Time"은 연장전이라는 또 다른 관계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사 "똑같은 것이라도 보는 위치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는 말처름 사랑 역시도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고, 사랑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의 마음의 기준에 따라 다르지 않겠나, 역시 사랑은 영원보다는 찰나에 가깝고, 변하기도 잘 변하고, 변덕스럽기 까지 하다.

연애의 대상이란 앞에서 손을 내어 끌어주는 사람과 뒤에서 항상 지켜봐 주는 사람..어쩌면 연애에는 이 두 사람이 꼭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속의 나츠키 처럼 뒤에서 봐주는 사람과의 연애는 불안하면서도 끌리지만, 내가 또 언젠가 실연을 했을 때 티슈를 통째로가 아니라 뽑아다 줄 수 있는 배려깊은 사람을 잃기 싫기 때문이라고...사랑은 사랑대로 가지고 싶지만 그런 배려깊은 소중한 사람을 친구라는 이름으로 붙들어 매놓고 싶은 마음 역시 어쩔 수 없다. 역시 사람에 대한 욕심은 사랑보다 앞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연장전-Over Time-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걸 버린 사람에게는 그것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드라마 속 명대사-

"뭐랄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기적이야. 그런 기적이니까 하나님이 '연애'라는 멋진 이름을 지어준거잖아"

"한번 준 마음은 회수할 수 없는 것"

"난장판에 형편 없어도 혼자서 머리 싸매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잖아. 애교를 부리든 화를 내든 싸움을 해도 괜찮아. 아니면 뭐하러 이 세상에 이렇게 여기저기 사람들이 많겠어. 친구도 있고, 애인도 있고, 동반자도 있고, 그러니까 하나님은 오직 혼자만 살라고 놓아 두진 않았잖아. 우리들을"

"똑같은 것이라도 보는 위치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

"뒷모습이 좋은 건...봐 주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 때문......"


by kinolife 2006. 7. 12. 23:53

저자: 우라사와 나오키(浦澤 直樹)
출판사: 학산출판사
총권: 1~23권 완결
1998. 02.25 초판1쇄 발행

어느 가난한 집에 착한 딸은 도박을 즐기는, 아니 도박에 발을 담그게 된 오빠 때문에 가장이 되고 말았다. 고등학교를 일년 놔두고 있지만 오빠가 진 빚(우리 돈으로 2억 5천)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학업이란 사치가 되버렸다. 꼭 이런 주인공 밑에는 그저 착하기만 한 디딤돌은 커녕 걸림돌이 형제가 위에 꼭 포진해 있다. 성별은 주인공이 여자일 경우엔 남자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주인공의 성이 바뀔땐 그 걸림돌의 성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아무튼, 이 만화의 주인공 미유키는 가라오케, 터키탕과 같은 곳에서 망가지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필살기인 테니스에 승부를 걸어본다. 미유키가 테니스채를 잡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문제의 오빠와 빚 이외데도 키워야 되는 동생들이 셋이나 있으니까 그녀에겐 말 그대로 큰 돈을 마련해야만 하는 벼랑에서 부모님이 남겨주신 필살기를 쓸 수 밖에 없다. 말 그대로 만화같은 이유이지만, 이 이유는 미유키가 테니스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근거가 된다.  


가난한 이 주인공이 동생들에게 해 줄수 있는 것은 양파가 갈색이 될때까지 볶아서 만들어줄 수 있는 카레뿐, 동생들에겐 보다 맛있는 음식이, 미유키에겐 오빠의 빚을 갚아 다 같이 사는 인생의 목표가 뚜렷해 지고, 이들 가족 주위에 빚을 받아내기 위한 야쿠자들의 목적까지 가세하면서 그녀의 테니스 코트로의 복귀를 다그친다. 아마시절, 챔피언이기도 했지만, 미유키에게 있어 테니스는 복잡한 가족사 내에 얽힌 아픔임을, 그래서 미유키의 상황에 대한 절박함이 느껴지는 부분은 이쩨까지 우라사와 나오키가 보여줬던 사건의 복선이 주는 묘미의 작은 발현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주인공의 성공에는 수많은 역경이 따르기 마련인데, 가난한 자에게 있어서의 스포츠가 주는 굴욕감이 타고난 재능을 가로막는 부분이나, 부정한 승리욕에 가득한 라이벌의 계책이 주는 강력하면서도 짜증나는 묘미, 그리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작은 코미디와 순진한 사랑은 이 만화의 숨길 수 없는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면에서는 꼬이고 꼬이는 인물들이 복잡한 구조로 엮어지는 듯 보이지만, 어느 인물하나 불필요한 (하다못해 협회 회장의 개 존 트라볼트까지도)인물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져가는 사건사건들은 만화를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미국 US오픈, 영국의 윔블던, 까지 이어지는 테니스 잔치의 향연으로 끌어 들인다. 물론 일본 테니스계의 부폐와 승리를 위해 철면피로 변하는 클럽회장이나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야쿠자들의 지리한 행보들이 타이트 한 구조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역시 스포츠 만화의 묘미는 시합이 벌어지는 코트에서의 에피소드들이 주는 재미들이다. 개인적으로 야구만화는 몇번 본 적 있지만 정통 테니스만화는 처음이어서 생소한듯 했지만 책장을 남길수록 역시 하나의 스포츠에는 그만의 흥미거리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테니스 코트가 가지고 있는 땅의 표면이나 잔디의 변화가 주는 특성이나 , 테니스화의 차이, 코칭스탭과 선수의 육체가 지니고 있는 잠재적인 능력에 대한 작가의 코멘트들은 만화의 흥미를 끊임없이 유발시킨다.
이렇게 강인한 정신력들 지니고 있는 주인공 주면에는 역시나 나약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면서 주변을 맴도는 마마보이류의 샌님이나 겉으로는 불같아도 속이 여린 남자들은 있기 마련이다. 미유키 주변을 맴도는 이 두 남자 이외에도 술이나 알콜에 쩔어지내는 진정한 실력자 코치도 하나의 도구였던 선수를 자신의 여동생이나 딸같은 포지션의 친구로 삼게 되는 과정을 통해 강인한 여성이 비탄에 빠진 남자들을 진정성이 통하는 한 인간으로 구해낸다.

가난한 천재 테니스 천재와 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의 테니스 귀재와의 양대 구도는 그것이 꼭 테니스가 아니라 무엇이라 해도 어쩌면 너무 뻔한 만화의 뼈대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속에 꼬여있는 모든 갈등들의 해결 속에는 언제나 인간의 깊은 정이 흐러고 있어 만화책을 보는 순간순간에는 무서울 수도 있고, 짜증스러울 수도 있지만, 책장을 덮을 때는 마치 꼭 읽었어야 되는 책을 읽어낸 듯한 쾌감을 선사한다. 마치 부무모님은 했음 하고, 나는 하기 싫어했던 숙제를 끝냈을 때의 푸듯함을 주는 것은 역시 그의 탄탄한 구성능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극적인 요소를 풀어내는 작가의 힘이 결국은 미유키가 테니스의 본 고장이자 가장 권위 있는 윔블던에서 우승을 할거라는 것을, 그리고 말도 안되는 라이벌 쵸코는 그 전에 낙방, 결국 여왕과의 게임에서 승리할거라는 것, 결국 공이 빵처럼 크게 보이는 테니스의 시간 속으로 빠져버려 우승하고 말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흥분해서 보게되는 이유기기도 하다. 그래서 만화 속의 함성을 자연스럽게 동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몇년 전에 방영됐던 SBS 드라마 <라이벌>은 스포츠의 무대를 현재 한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스포츠 골프로 옮기는 잔머리를 쓰면서 적당히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를 다 본 건 아니지만, 이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고 보기에는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나 구조가 많이 단순화 되어서 웰 메이든 드라마라는 생각을 가질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마치 만화 속의 큰 이야기 하나를 토대로 필요한 에피소드들을 찾아서 조각을 맞춰놓은 듯한 느낌이었으니 원작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낸 느낌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독창성이 있을리 없고, 주변의 인물들의 캐릭터 역시도 기존의 드라마에 필요한 사람들만 배치해 평이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렇게 쉽게 드라마를 찍어냈다는 생각이 들다보니, 미유키의 막내 동생은 "그건 아니야"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by kinolife 2006. 7. 12. 2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