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탐내던 내 모습을 보고 수정이 언니가 사준 막스 제이콥스 가방
물론 홍콩에서 몰래 빼온 가방이니까 완전 정품이랄 수는 없지만 정품을 만드는 가방에서 나온 딱지 없는 물건으로 본 매장에서는 198,000원이라고 한다.
실제 수정이 언니는 70,000원 정도 줬다고 한다.캔버스 재질에 손잡이가 튼튼해서 좋다.
물론 가방 아랫부분의 이쁜 무늬들은 아주 아주 눈길가게 하는 가방이다.

by kinolife 2006. 7. 14. 23:13
한 2년 전 겨울을 맞기 전에 구입한 파란색 꽃무늬 가방...
기어이 기저귀 가방이라거나 촌스러운 컨셉이라거나 하는 멘트로 나의 구매에 비웃음을 덜질 이들에게 머 그러려니...유난히 가방 욕심이 많은 나의 욕심 바구니에 들어와 버린 가방.
가격은 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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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life 2006. 7. 14. 23:06

‘노래’는 때론, ‘음악’이라는 단어보다 정겹고 그 역사도 오랜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두 단어는 같은 의미로 쓰일 때가 많음에도 발생하게 되는 이런 차이는 단순히 단어가 가지고 있는 느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노래는 편안하고 일상적이며 음악은 학문적이고 무거운 느낌, 이 단어의 느낌 중에서 ‘노래’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으며 우리와 함께 의미 지워질까? 답답한 도시 속에서 울려 퍼지는 노랫가락은 갑작스럽게 그런 노래 그것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지난 화요일 지하철 2호선 선릉역에는 지하철 문화사업단에 소속된 에콰도르의 전통 음악단인 시사이(SISAY)의 조촐한 공연, 콘서트 아니 음악회가 있었다. 바쁘게 퇴근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은 이 노랫가락은 이국적인 음색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일지도 있겠지만, 그것에 앞서 낯선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의 파장이 먼저 귀를 자극했을 테고, 그 자극을 받는 뇌는 호기심으로 이어져 시선 역시도 그 소리가 울려나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옮겨 놓았을 것이다. 이렇게 노래는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하면서 일상을 일깨우면서 관심과 사랑을 갈구한다.

한마디로 말해 에콰도르 음악단 사사이의 음악은 음악의 질, 혹은 수준으로 평가한다면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즉석의 공간에서 호기심에 가득찬 흥분의 감각이 믹싱이 된 상태가 아니라면, 스튜디오로 녹음이 된 그들의 음악은 그렇게 매력적인 수준을 가지고 있진 않은 것 같다. 그건 순전히 필자의 개인적인 편견이자 독설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7-8년 전에 들었던 ‘로스 잉카스(Los Incas)’의 앨범들과 폴 사이먼의 라이브를 통해 들었던 ‘우르밤바(Urubamba)’의 선율은 이들의 음악적 선배로써가 아니라 음악에 계단이 있다면 그 단계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 지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잉카의 언덕의 아래와 봉우리의 차이라고 할까. 적어도 예전에 직접 들었던 안데스의 소리는 이들의 음악처럼 들떠 있다든가 하는 류의 가벼운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로스 잉카스 이후의 안데스 소리는 전통이나 그 나라의 땅에서 나는 흙 냄새, 잊혀진 세월의 향기 보다는 오랜 시간 동안 유럽과 아시아를 떠돌면서 유랑하면서 썪이고, 변하고 새롭게 자신을 변화시킨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깊이 이전에 쉽게 다가오고 또 쉽게 잊혀지기 쉽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좁고 먼지 많고, 발걸음 빠른 사람들이 넘쳐나는 지하철에서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잠시 머무르게 하고 그들의 시간을 이 짧은 음악에 묶어 둘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닌가? 그렇듯 노래는 떠돌이처럼 떠 돌고 떠돌이처럼 사람들 곁에 머물고 또 떠나고 그런 것이 아닌가. 이런 음악을 곁에 두는 것도 듣는 이들이고, 멀리 보내는 것도 듣다가 이젠 듣지 않는 이들이다.

멀리서 이름 모를 나라의 좁은 지하철 공간을 이용해 노래하고 자신의 시디와 악기들을 판매한 수익으로 또 노래하는 이들, 제 3세계 그것도 낯설다면 한 없이 낯선 안데스의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 가수 김목경을 생각한 나는 단순히 음악적 현학, 아니 잡다한 지식이 많은 한 사람일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들이 목청 놓아 노래하고 숨죽여 호흡을 맞추고 악기를 다듬는 사이 사이 김목경이라는 우리 가수를 쉽게 지우진 못했다. 이상하게 이들과 쉽게 오버 랩 되는 그림 하나, 김목경이 영국의 차가운 스모그 아래에서 우리 식으로 통기타를 치고 우리말로 때론 영어를 썪어가며 노래했을 그 핏대 선 목줄기가 떠 오르는 건 어쩌면 이 먼 타국에서 노래하는 시사이처럼 떠돌며 노래하는 이들의 이력이 닮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확실히 그럴 것이다. 방랑하듯 떠돌고, 노래하고 또 노래하고…이렇게 노래하는 이들의 유랑이야 말로 노래가 사람에 의해 불려지고 사람에 의해 듣겨서 또 불러지고 전해지고 했을 거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지하철에서 노래하는 에콰도르의 시사이나 영국에서의 김목경이나 뭐가 다르겠는가? 라는 생각을 아주 쉽게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혀 연관이 없는 이 둘의 모습에서 아주 쉽게 떠돌아다니는 노래의 본질과 만날 수 있다. 떠돌이처럼 떠도는 노래의 모습을 말이다. 그 곳, 혹은 이 곳에서 노래하는 이들의 마음이야 다 다르겠지만 그 모습, 노래의 한 일면을 보고 그런 유랑의 굴곡이 담긴 노래를 드는 이들의 마음에서는 그리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사사이나 영국의 김목경이나 말이다.

노래에는 원래 이렇게 방랑의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아니 방랑해야만 살아남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들은 이들의 귀를 통해 전달이 되고 또 다시 그들의 입을 통해 또 전달이 되고, 이러는 사이 노래는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서 유랑하는 것이 아닐까?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 사이를 떠 도는 것이 이른바 히트곡이고, 이보다 더 시간을 초월하고 장소를 초월한 음악들이 명곡으로 남아 수많은 시간과 사람들에게 불려지고 들려지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작곡가와 가수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그 이후의 음악은 작곡가의 손을 떠나 또 가수의 입을 떠나 CD로 저장이 되어 자기만의 유랑을 떠나야 하지 않나. 모든 것이 그렇듯 부모의 곁을 떠나 스스로의 위치를 잡아야만 온전한 하나의 독립적 존재가 되듯, 노래도 만들어 지고 만들어진 곳을 떠나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자신의 가치를 가지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것처럼 노래도 그러하다.

빠듯한 하루 하루, 어느 하루도 다를 수 없이 반복되는 이 분주함 속에 울려퍼진 시사이의 음악과 시디에 담긴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를 들으면서 김목경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떠 올린 날, 이렇게 낯선 땅에서 불려진 노래처럼 떠돌고 다시 집으로 오고 시디로 남아 어디로 어디로 또 떠나는 노래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노래처럼 나도 집을 떠나 일터로 갔듯이 다시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짧고 반복적인 생활 속에 노래랑 닮은 삶의 한 모습을 떠 올려본다. 그래서 노래가 고맙고 또 노래하는 이들의 고뇌가 의미 있게 보인다. 떠돌이 같은 노래, 나그네 같은 인생이 그렇게 딱딱한 도시를 스쳐가는 2002년 월드컵 전의 오월이다.

이 글은 제가 2002년 6월에 www.kpopdb.com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kinolife 2006. 7. 14. 23:01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란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바꿀 수 있을까 보다는.어떻게 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할까를 생각했으면 합니다.”
by kinolife 2006. 7. 14. 22:54
“난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리고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옷을 벗었어요.  그래서 대상화 되거나 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난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좋게만 생각한다면 언제나 찬성입니다.”
by kinolife 2006. 7. 14. 22:51

“뎁은 정말 많이 피웁니다. 한번은 좀 줄여야 할 것 같다고 그에게 말라자 “잘 하는 일을 왜 그만둡니까.” 라고 대답하더군요.”
by kinolife 2006. 7. 14. 22:49

“난 정말 그냥 단순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런 삶은 비싼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난 누구의 눈도 의식하지 않은 채 누드로 정원을 거닐어 보고도 싶습니다.”
by kinolife 2006. 7. 14. 22:48

2002년, 한국, 96분
감독: 윤제균
출연: 임창정
     하지원
     최성국
     유채영

<두사부일체>를 보면서 내내 찜찜함과 우울함을 금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이상한 정체불명의 영화로 흥행에 성공했던 그 감독의 두 번째 영화를 주변의 엄청난 이슈와 찬사 이후에 철 지난 외투를 벗지 못하는 이상한 찜짐함을 느끼며보았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건지, 아니면 영화제작의 열정이 넘치는 건지 연이어 바로 다음 영화를 내 놓은 이 충무로 행운아 흥행감독의 두 번째 작품은 역시 첫번 째 보다는 진 일보. 나쁘진 않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즐거움은 코미디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적당히 희화화된 캐릭터들. 그리도 그 다음은 역시 조금은 모자란 듯한 그래서 혹시 나빠질 지 몰랐던 함정을 피해간 에피소드의 적절한 양이다. 영화 <색즉시공>은 미국의 <어메리칸 파이>나 독일의 <팬티 속의 개미> 류의 영화들과 비교해서도 전혀 빠지지 않을 섹스 코미디를 보면서, 우리도 이제 우리만의 섹스 코미디를 가진다는 기대감에 적당히 부응하는 여유를 보여준다. 어색하지도 과장되지도 않아 보이는 에피소드가 가지고 있는 이 영화의 힘은 역시 감독 스스로가 밝힌데로 에피소드의 대부분들이 주변, 혹은 자신의 경험담이었다는 사실성에 바탕을 둔 이야기들이기 때문일테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웃음은 실제 이런류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들에겐 신선함으로, 실제 경험이 있던 이들에겐 경악스러운 유머로 다가왔을 터, 역시 정열 아니 정력이 넘치는 청춘은 그 때만의 정말이지 성(性)스러운 묘약과 웃음이 담겨져 있는가 보다.

'성적 괴담'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자 요리법이나, 자위행위의 정열은 가히 남성들의 성적 치기를 본격적으로 보여준 장면들, 그런가 하면 영화 속의 여성들이 성에 대해 당당한 일면을 보여주는 부분은 놀라운 부분이기도 하다. 침대를 놓고 본다면, 여성 상위 형식의 체위도 그렇거니와 숫총각을 "머리가 뽀개지겠다"는 문장으로 자신의 침실로 끌어들이는 것이나, 혹은 섹스를 하지 않은 대신 손으로 봉사(?)를 하는 여성까지 기존의 영화 속 침실 위에서의 여성 캐릭터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바람난 남차 친구에게 "그만 놀고 네 자리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당당함이나,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며 연인의 머리에 크레디트 카드"를 날려버릴 수 있는 모습까지...현실적이면서도 톡톡튀는 여성 캐릭터들은 흔히 남성들만의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는 성 이야기의 성의 균등을 이뤄내는 캐릭터들이다.

물론 이런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연기가 가능한 것은 에피소드들의 자연스러운 연결 때문이겠지만, 우리의 불쌍한 청춘 은식은 물론이거니와 조연들의 주인공 못지 않은 연기를 빼 놓고는 이 영화의 성공을 야기 할 수 없을 듯 싶다. 특히 은식 역을 맡았던 임창정은 적어도 자신있게 제 2의 연기과정의 발판 마련이라고 해도 무관할 정도의 연기를 보여준다. 역할상 순수하지만 고집스럽고, 어눌하지만 자기 의지가 있는 이 미련해 보이기까지 한 청년 은식은 여드름 투성이에 진지하려 해도 얼빵해 보이는 임창정의 얼굴이 있었기에 더욱 더 돋보이는 것이다. 거기다가 시트콤에서 발군을 실력을 발휘한 최성국, 가수에서 연기자로의 변신이라고 해도 무관할 유채영의 연기는 의외의 발견. 물론 전문 조연 연기자들의 연기를 말할 나위 없겠다.

영화 <색즉시공>을 보고 누군가는 연인들끼리 보기엔 좀 민망하다고도 했고, 또 누구는 꼭 연인들에게 권해주고, 혹은 주어야 할 영화라고 극찬하며 침을 튀키며 말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개봉 당시 극장가를 흥행의 폭풍으로 몰고, 코미디의 전성기라는 고뿔을 늦추지 않게 했던 이 영화 <색즉시공>의 힘은 역시 끼 넘치는 엽기적 상상력과 폭발하는 웃음의 힘이 뒷받침이 되어서였겠지만, 어리한 청년의 짝사랑과 그것의 표현이 없었다면 정말이지 색이 넘치는 공허한 영화로 남았을 지도 모르겠다. 말 그대로 '눈물의 차력'이 보여준 임창정의 차력쇼는 하지원의 상황과 눈물로 교차되면서 이 시대의 성과 이 시대를 비켜가는 사랑법에 대한 만감을 보여주며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웃음과 눈물의 적절한 조화는 쉼 없이 허무한 웃음으로만 치달았던 전작 <두사부일체>와 이 영화를 구분짓게 하는 경계선 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윤제균 감독의 이번 영화 <색즉시공>은 덜 부담스럽고 덜 싸구려 같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상업영화로서의 이 영화는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인다.  

by kinolife 2006. 7. 14. 22:43
2002년, 미국/영국, 89분
감독: 가이 리치 (Guy Ritchie)  
출연: 마돈나(Madonna)
       아드리노 지아니니(Adriano Giannini)
        진 트리플혼(Jeanne Tripplehorn)

영국의 활력넘치는 영화 감독 가이 리치와 활력 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미국의 마돈나와의 만남! 이들이 만남이 이루어낸 또 다른 결과물인 영화 <스웹트 어웨이>는 이들 각가의 명성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뒤 쳐저 보이는 안타까운 작품이다. 1974년에 이미 만들어진 적이 있는 리나 베르트뮐러 감독의 이태리 영화 <귀부인과 승무원>을 가이 리치 부부식으로 리메이크한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제목  'Swepy Away'는 휩쓸리다. 혹은 조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 즉 귀부인이 승부원 아니 어부(이 영화에서는 어부라는 점에 많이 강조된다.)가 조난을 당해 사랑에 휩쓸리기 까지 한다는 이야기일테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귀부인과 가난한 어부의 사랑이 아니라 마돈나의 탄탄한(아지까지도) 몸매와 미국의 거부들이 놀고 먹는 휴양지가 안겨다 주는 시각적인 만족도가 더 크다는 점에 있어 쏟아지는 외부적인 혹평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돈이 많다보니 시간까지 넘쳐 흐르는 미국의 갑부 커플 세 쌍은 지중해로 색다른 여행을 위해 배에서 내린다. 명품으로 둘러싸인 패션은 화려함을 더하고 거만하기 이를때 없는 이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돈 쓰로 오신 마나님과 서방님의 정형이 아닐 수 없다. 이 중에서도 유독 한 귀부인은 입이 닭나발 처럼 튀어 나와 모든 것에 불평 불만을 늘어 놓는다. 배가 후지다고 한마디, 체력단련실이 없다고 한마디, 금방 잡은 물고기를 썩었다고 한마디, 커피를 새로 뽑지 않고 데워 왔다고 한마디, 티 셔츠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한마디, 이 단계에 이르면 시중을 들고 있는 승무원이자 어부인 페페 말고도 영화를 보던 모든 이가 이 귀부인 마돈나에게 재수없다는 평가를 한마디 내릴 만하다.

그러나 모든 헤프닝은 앙숙관계에서 부터 시작이 될지도 모르겠다. 여느 로맨틱 코미디(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로 보기에도 좀 어색하다. 그냥 웃기는 사랑 이야기가 로맨틱 코미디라 칭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수이겠지만.)처럼 이 재수없는 귀부인과 돈은 없지만 자존심이 살아 꿈틀거리는 어부는 휴양지 근처의 많은 어느 무인도에 정박하게 되면서 새로운 관계를 싹 띄운다. 명령하던 귀부인은 얻어 받거나 무릎을 꿇고 애걸해야 했으며, 온갖 조롱을 받아내던 어부는 어느새 마스터가 되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물고기를 잡아올리시는 당신 진정한 어부이십니다." 싸이의 노래처럼 무인도에서는 어부가 진정한 챔피언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 넓은 땅에 둘 밖에 없다는 한계와 자연의 개척과 생존이라는 공동의 과제앞에서 서로에게 싹드는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물론 밤낮을 함께 보내며 외로움을 달래고, 시간을 같이 보내는 남녀에게 정이 안 싹틀수가 없으니 이미 사건을 인태된 셈이다. 특히 낡은 무인도의 집을 헤집다가 발견한 술을 마시고 쇼를 감행하는 마돈다는 여지 없이 자신의 본업이 댄스가수였음을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솔직이 이 영화 속에서의 마돈나의 연기는 말 그대로 볼품이 없었으므로 그러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덕분인지 마돈나의 상대역을 맡았던 아드리노 지아니니의 연기가 자연스러운 맛을 내는 것 처럼 보인다. 그의 이력을 찾아 보니 1974년 작품 ,<귀부인과 승무원>에서 승무원 역할을 맡았던 지안카를로 지아니니의 아들이란다. 어찌 되었건 이들 커플의 어색한 앙상블은 이 영화의 스토리까지도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것 같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는 후미로 가면서부터는 맥이 빠지면서 바람빠진 고무풍선 처럼 변해 버리고 시들해진다. 특히 이들이 구조되고 그들만의 사랑을 확인하는 부부에서는 실소가 터져 나오는 지경. 어느 무명의 감독 데뷔작보다 못한 이 영화의 연출력은 전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스내치>에서 깔끔하면서도 독특한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감독의 영화라고 보기 힘들게 한다. 말 그대로 가이리치의 대표적인 실패작인 셈이다.

하지만 팝콘이랑 함께 하면 좋을 영화에 그리 큰 작품성을 논하지 말고 마돈나의 패션과 아름다운 휴양지에 시선을 맞춰보자. 그리 나쁘지는 않다. 단지 가이 리치의 영화에 연출력에 대한 적당한 실망감과 이제 서서히 늙어간다는 것의 징후를 마돈나의 얼굴에서 찾는 씁쓸함이 조금 불편하게 할 뿐이다. 거기다가 과거의 영화를 리메이크 할 때 범하기 쉬운 우려들을 그대로 표출하는 점과 영화 시작 오프닝에서 마돈나의 노래와 함께 느낄 수 있었던 007 같은 매력적인 분위기가 오래되지 않는 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수 많은 헛점 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점이다. 이 모든 것 역시 관객들이 새겨 본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흥행성적 저조는 당연한 귀결이리라. 이런 평가와 결과에 대해 마돈나가 팬들에게 "제발 봐주세요"라고 했다는 외신은 어느 당당한 팝 스타가 남편을 잘못 만나 그렇게 된건지, 또 그도 아니면 어느 창창한 신예영화감독이 부인을 잘못 만나 당하는 혹독한 형벌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사랑에만 충실하고 일에는 나태한 것에 대한 결과인지 아리쏭하다. 웬지 영화는 세 번째 이유가 아닐까 하는 힌트를 주는 것 같이 보인다.
by kinolife 2006. 7. 14. 22:40
동화                                                              영화
글,그림:윌리엄 스타이크                                   감독: Andrew Adamson
          (William Steig)                                             (앤드류 아담슨)
번역:조은수                                                            비키 젠슨(Vicky Jenson)
국내 출판:비룡소의 그림동화 64                                 스코트 마샬(Scott Marshall)
출판년도:1990년(미국), 2001년(한국)                  제작년도:2001년

애니메이션 <슈렉>을 본지도 벌써 2년이 흘렀다. 그러다 우연히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화책들 중에서 이 만화영화의 원안이 된 동화책을 발견하고, 신기하게 책장을 열어서 거짓말 없이 10분만에 다 읽어버리고, 다시 슈렉 DVD를 꺼내 본다. 10분짜리 책과 90분에 해당되는 영화와의 차이는 크게 말하자면, 간단한 줄거리 책과 보다 풍부해진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선보인 만화영화 정도다. 책장을 덮고, 그리고 DVD의 전원마저도 꺼진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간단한 이야기로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슈퍼 히어로를 만들어 내다니 대단한 헐리우드 놈들! 그저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거기다가 겨우 14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어린이 그림책을 애들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변화시켰다니 그저 그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을 팔아낼 수 있는 진정한 슈퍼 마케터로서의 헐리우드는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런 못생긴 놈! 슈렉! 슈렉의 원안이 된 윌리엄 스타이크의 동화책 속 이야기는 달랑 하나다. 진짜 못생긴 슈렉이 지만큼이나 못생긴 저만의 공주를 만나 결혼한다는 게 사실상 다다. 동화책 첫 장, 슈렉의 엄마는 못생겼어, 슈렉의 아빠도 못생겼지.하지만 슈렉은 그 두사람을 합친 것보다도 더 못생겼어...라는 확고한 반복으로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그리고 이 못생긴 슈렉은 엄마 아빠한테 엉덩이를 차이면서 세상으로 나오게 되고 세상으로 나온 여행에서 만난 마녀로부터 아주 못생긴 공주와 결혼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은 그 공주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당나귀도 만나고(정말 어리버리하게 생긴 당나귀다). 굉장히 쉽게 성에서 공주를 만나서 결혼한다. 재미있는 것은 동화 중간에 슈렉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공주가 있는 성안의 어느 거울로 가득찬 방에서 괴물들을 보고 도망가는 부분, 거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인줄 알고는 "모두 나잖아!"라고 외치면서 공포감에서 벗어나는 슈렉의 모습은 철학적이라기 보단 유머러스하다. 역시 이 동화책의 주제는 못생긴 슈렉이 저만큼 못생긴 공주를 좋아한다는 당연한 자기인식이 주는 미덕을 강조한 단순한 동화같아 보인다. 궂이 하나를 더 붙이자면, 제 눈에 안경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에 비해 영화가 가장 돋보이는 점은 역시 살아있는 캐릭터. 수다스러운 당나귀나, 자기 얼굴을 보지 않고 탐욕스러운 군주 파쿼드, 명랑하면서도 자조적인 피오나 공주 같은 리얼한 인물들이 주는 즐거움은 역시 동화보다는 한 수 위로 보인다. 중간 중간에 현실 감각을 잃고 잊지 않은 대사나 상황들도 역시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동화의 간단한 이야기와 슈렉의 캐릭터에 보다 기존의 다른 동화 주인공들을 이용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점이 애니메이션 슈렉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저 못생긴 슈렉이 공주를 만나는 이야기에서 욕심 많은 영주와 그 영주 아래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동화, 만화 속의 캐릭터들을 통해 슈렉을 공주도 위험에서 구해 자신의 짝을 찾는 용감한 남자이면서도 압제자의 권력에서 만화 속의 인민 캐릭터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점에서 슈렉은 적지 않은 영웅으로 사랑받을 수 있게 한다. 비록 발단이야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깨는 현실을 바로 잡겠다는 이기적인 발상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여행에서 친구도 만나고 연인도 만나고 다른 동화 속 캐릭터들도 구해내는 슈렉은 자신의 원래 목적을 찾는 것 이상의 일을 해 낸 슈렉은 정말 못생겼지만 운 좋은 놈이며, 그래서 그 별날 것 없는 못생긴 놈도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놈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이야기나 원안의 캐릭터는 단순하나, 저아무리 못생기고 기괴한 사람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발현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화의 간단한 이야기가 90분이라는 장대해 보이는 애니메이션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면서 사랑스럽고 참으로 대단한 인물의 스팩터클한 여행담으로 보여진다. 물론 영화를 통해 먼저 접한 이야기 이후 동화를 봐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영화 속의 인물이 주는 매력은 슈렉에서 국한 되지 않는다는 점이 동화 속의 슈렉과는 또 다른 증폭된 매력으로 다가온다. 물론 단순한 그림 속의 슈렉이 살아 움직인다는 매체의 특성 역시 무시 못하겠지만, 살아 숨쉬는 느낌을 주는 애니메이션 속의 슈렉은 동화보다 인간적이며, 동화 속 슈렉 보다 사랑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작품 '슈렉'은 원안보다 훌륭한 청출어람 작품의 좋은 모델로 보여진다. 이것이 바로 헐리우드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의 힘일 것이다.
by kinolife 2006. 7. 14. 2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