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작 : 후지TV
방 영 : 2002년 1월-3월
감 독 : 와카마츠 세츠로(若松節朗)
         무라카미 마사노리(村上正典)
각 본 : 아이자와 토모코(相澤友子)
음 악 : 스미토모 노리히토(住友紀人)
출 연 : 후카츠 에리(深津繪里), 츠츠미 신이치(堤眞一)
          야다 아키코(矢田亞希子),사카구치 켄지(坂口憲二)
          니시무라 마사히코(西村雅彦),네코제 츠바키(猫背椿)
          쿠가 요코(久我陽子),스가와라 토시미(菅原禄弥)
          시가 코타로(志賀廣太郎),코다마 키요시(児玉清)
          오오사와 케이스케(大沢恵介), 사노 타카시(佐野崇) 
시미즈 유코(清水優子), 히로사와 미키(広沢味希)  
타니하라 쇼스케(谷原章介), 토네사쿠 토시히데(東根作寿英)
한카이 카즈아키(半海一晃), 나미키 시로(並樹史朗)  
 타카스기 코다이(高杉航大), 오오바야시 타케시(大林丈史)  
하세가와 하츠노리([長谷川初範), 노구치 마사히로(野口雅弘)  
시다 마사유키(信太昌之),후루고리 마사히로(古郡雅浩)  
시마오 야스시(嶋尾康史),나카고메 사치코([中込佐知子)  
카네코 타카토시([金子貴俊),타케이 히데노리(武井秀哲)  
키카와다 마사야(黄川田将也),오시키리 모에(押切もえ)  
오오츠카 마에(大塚麻恵),나스 마사에(那須正江)  
카와구치 노리코(川口典子),아키모토 마유미(秋元真由美)    

주제곡: キラキラ(반짝 반짝) - 오다 카즈마사(小田和正)

"이 세상에 태어나 30년하고 6개월 19일...
더이상 사랑 따윈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도 사랑은 다시 찾아왔다..."

어느 평범한 여자의 일기에서 읽을 수 있을 듯한 이 독백에서 시작되는 드라마 [사랑의 힘]은 여자에게 있어 인생에 있어서 일이나 남자라는 문제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까 하는 문제를 아주 담담하면서도 소박하게 풀어낸 수작 드라마다. 더군다나 주인공을 맡은 후까츠 에리의 극중 나이가 30이니까 말 그대로 일본판 브리짓 존스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브리짓 보다는 보다 감정이입이 잘 되는 캐릭터다. 일본의 특수적인 상황인 듯 보이는 몇몇 장면이 부담스럽지도 하지만, 그녀의 기본적인 캐릭터는 정말이지 평범하면서 소박해서 생각하면 할 수록 그 캐릭터의 매력에 빠져들기 쉽다.

주인공 코모미야 토코는 아주 큰 광고 회사에서 일을 하고는 있지만 스무살 때 자신이 꿈꿔왔던 광고일과는 거리가 멀다. 사무실에서는 뮤료하게 졸음을 쫓기에 바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핀잔을 듣는 게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말그대로 할일 없는 노처녀의 평범한 일상이 직장이라고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이다. 유일한 인생의 위로라면 회사 동료인 스다와 금요일이 오면 즐겨가는 와인바에서 각각 한병씩의 와인 앞에서 자신의 주량을 확인하는 일 뿐이다. 홀로인 노처녀들에게 잘 익은 와인과 맛있는 치즈케익은 그야말로 입만이라도 즐거울 수 있는 친구가 아닐 수 없다. 게으름과 무료함 그리고 와인과 치즈....이 별 일 없는 일상은 반복의 되풀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그녀에게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데 그 기회가 일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지만, 드라마를 보는 이들은 그것이 두가지 모두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진행방식이 자연스러워 결코 식상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그 변화의 시작은 누구나 처음에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을 때, 혹은 자신의 잃어버린 열정과 만날 때와 같은데, 코모미야는 예전 자신의 그 꿈과 만나게 되는 광고계의 이단아 누쿠이와 같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면서 다시 인생의 열기와 대면하게 된다. 물론 함께 일하는 소고의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코모미야는 결코 포기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전의 무료한 삶에다 안녕을 하고 난 다음이니 말이다. 실수를 인정하듯 누쿠이 기획은 이제 코모미야에게 일과 밥을 주어야 한다. 그녀가 눌러앉아버렸으니....

비록 코모미야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전화를 받고, 줄광고 일을 맞는 일이지만, 이전에 자신의 꿈에 탄력을 받게 해준 누쿠이의 광고에 대한 열정을 지켜보는 것은 작은 월급이나 유명한 회사에 다니지 않은 불영예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은 가난한 마음에, 솔직한 가슴에 그리고 자신 스스로를 낮추어 볼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혼자서 오랜동안 동경인지 연모인지를 모르고 키워온 마음은 자신의 예전 남자친구의 여동생과 누쿠이가 데이트를 시작하면서 어찌보면 동경이었음을 스스로 느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함께 일을 하면서 함께 얼굴 보고, 밥을 먹고, 술을 먹고 어려운 일을 헤쳐나간 이들에겐 스스로도 모르는 우정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코모미야의 마음이야 동경과 연모를 오간다지만, 함께 일하면서 옆에서 보는 코모미야는 연애의 상대라고는 전혀 예상이 되지 않는 캐릭터, 말 그대로, 생긴 것과는 상관없이 연애 감정 이전에 우정이 생겨버리는 만인의 연인이자 친구이다. 물론 드라마 속의 누쿠이는 그저 말썽장이로 보이겠지만, 드라마 후반부로 갈 수록 자신 스스로도 모르게 정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를 그대로 내 보인 자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란 있을 땐 몰라도 사라지만 가장 섭섭한 존재라는 것이다. 누쿠이는 자신도 모르는 감정을 코모이야가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고, 코모미야는 자신의 옛애인의 청혼을 거절하게 되면서 자신이 누쿠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드라마는 역시 예상대로 누쿠이와 코모미야의 러브 스토리에 대한 종결점을 향해가는 이야기이지만, 이 드라마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코모미야 역을 맡은 후카츠 에리의 캐릭터와 그녀의 연기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사실적이면서도 소박한 묘사다. 우리나라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연인이라면 흔히 운명적이며, 그 운명의 사랑 옆에 있는 그 누구의 노력도 헛된 것으로 비치면서 그 사랑을 견고하게 하지만, 이 드라마 속의 사랑은 생활 속에 묻어나 있으면서도 누구나 있을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전해줘서 더 감정이입이 되곤 한다. 정말 이 드라마 속의 연인들 처럼 11번의 커피 리필은 없었지만, 헤어지기가 힘들어 서로의 버스 정류장과 집을 왔다 갔다 한 경험, 전화를 끊기 위해 끊어 안 끊어를 반복해 본 경험 등등이 있는 나로서는 너무나 와 닿는 내용들이 운명이 아닌 생활속의 범인들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 같아 반갑기도 했다. 물론, 드라마 속의 여자친구와의 끊임없는 음주작태 역시 많이 해 보던 일 같고, 그것도 병채 나발의 보는 그녀들의 모습이란....웃습지도 않은 나의 다른 모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재미는 물론이지만 그저 좋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면에서는 서른 초입의 나의 후배들에 권해주고 싶은 드라마인데, 사랑은 드닷없이 온다는 이야기... 그래서 신비하지만 그 안에 이상한 운명같은 것이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그냥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 준다.

-드라마 속 명대사-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여자에게 매력 못 느끼는 법이야
일이 힘들다고 해서 남자에게 먹여 살려달라고 하다니..
결혼으로 도망치면, 재미없지
그리고 결혼해도 마찬가지야 후회하는 녀석은
어떤 답을 고를지라도
결국 후회하기 마련이야


정말로 광고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구나 라고..
만드는 것에 대한 마음만은
순수하구나 라고 느껴져서..조금 부러웠어요


8년 동안의 추억은 몇 년이 지나야 없어지는 걸까요?
순식간이야
잊고싶지 않아도 추억은 점점 없어져
그러니깐 기억하고 있는 동안 소중히 간직해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야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야

30살 생일이 온 뒤에는 더 이상 사랑하는 일 따위는
더 이상 사랑하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진심으로.. 괴로워질 정도로
괴로워질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것만으로도..행복했다고 생각해
정말 그렇게 생각해

가장 사랑할 때 더나고 싶은 유혹도 가장 큰 법이다. 그것은 자기만의 추억을 가지고 싶은 유혹과 욕심에 다름 아니다.

Tip : 내가 이 드라마를 보고 글을 쓴 것이 2005년 1월...그러니까 1년 반이 훨씬 지나버렸다.
      그리고 올해 한국에서 이 드마라를 각색한 드라마가 제작되어 방영되었다. 개인적으로 괜찮게 생각하는 배우 유준상이 나오길래 무언가 해서 봤더니 첫회에서 바로 이 드라마글 배낀건가? 이런 생각을 했다...드라마 끝 스크롤에 원작 표시가 되어 있길래 보니 리메이크였는데..후카츠 에리의 생활연기를 김민선이 따라가기엔 아주 많이 역부족...아무튼 매회 시청률에 연연하는 우리 드라마의 현실이 안타깝다.


by kinolife 2006. 7. 12. 23:12

저자: 오자와 마리(小沢真理 ,Ozawa Mari )
출판사: 서울문화사
총권: 1~16권 완결
1998. 01 1쇄 발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역시 너무나 개인적이고 변화 무쌍해서 무엇=유일한 것으로 두기에는 무리가 있는 명제 인 것 같다. 처음 회사에서 회사내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만화책을 볼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마치 세상의 모든 만화책을 가진 듯한 황홀경에 빠지고 그저 이거 다 볼 수 있구나~ 그러고 구경만 한지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읽게 된 만화책이 어느 미혼모의 건강한 생활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지닌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다. 앙증맞은 그림이 편안함을 전해 주는 이 만화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욕심이나 과장이 없이 자연스러운 삶의 진행을 보여주는 부담없는 드라마 트루기이다. 뭐라 할만한 특별한 주제나 이야깃 거리가 있는 것도 어떤 놀랄한 만한 쇼킹한 비밀 따위도 없이 그저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게 하는 이 소박한 책을 사랑스럽게 볼 수 있는 건 어쩌면 여자이면서 엄마가 될 사람이기 때문일까..아니 궂이 이야기를 덧댈 필요 없이 그저 쉽고 편한 이야기에 끌려서 일거라 생각한다.


주인공 수우는 나이 스물에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가지고 행복한 새출발을 시작하지만, 자신의 아이를 낳기도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게 된다. 말 그대로 뱃속의 아이와 함께 혼자 남아버린 젊은 여자에게 남은 희망이란 무엇일까?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나 추억이란 것이 그 상태의 여자에게 얼마나 가혹한 것일까...만화는 이 여자의 용기에 모든 이야기를 걸어버린다. 그리고 주인공 수우는 혼자서 자신의 사랑의 결실을 확인하게 위해 전혀 망설임이나 주저없이 자신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를 아기를 선택한다. 너무나 귀여운 아이 노조미는 그런 엄마의 용기와 고통에 의해 태어났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될 성장을 시작한다. 이렇게 만화 [새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이야기의 주제를 초반에 박아두고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이 만화 속의 노조미 같은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일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비록 만화 속에서 픽션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이지만 노조미 같은 아이는 모든 엄마의 큰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물론 누구에게나 자신의 아이가 최고의 희망이겠지만 만화 속 수우에게는 위로나 친구 이상의 버팀목이 바로 자신의 딸 노조미 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만화의 주된 이야기는 혼자 남은 수우가 딸 노조미를 키우면서 생기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된 줄거리로 삼으면서 이야기 중간 중간에 노조미의 성장과정을 따뜻하게 그려, 새로운 육아일기로서의 만화의 미덕을 보여주는데, 상당 부분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물론 스물이 되기도 전에 엄마가 되어 버린 아이같은 여자에게 자신의 아이는 인생의 스승 이상의 의미 이겠지만, 아주 많은 부분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삶을 배우고 삶을 이어갈 힘을 얻어가니, 아이의 힘이란 과연 신비스럽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만화는 단순이 미혼모와 아이가 나오는 귀여운 만화쯤으로 치부하기엔 좀 부족하다 싶은데, 그런 아쉬운 평가를 기어이 뒤집는 것은 수우와 노조미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인물들과 그드란의 관계을 그리는 데 작가의 탁월한 능력이 돋보인다는 데 있다. 이들 등장인물 역시도 특별한 과장이 없이 각각의 일상이 담긴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쳐 만화보기의 즐거움을 주는데 마치 우리 일상 생활에서 없어도 될 듯 하지만 막상 없으면 허전할 것 같은 인물들에 대한 묘사같아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런 소소한 재미는 과장이 없이 자연스럽게 묘사되고 그려진다는 것...이런 편안한 이야기 구조는 특별한 임펙트 없이도 내내 작은 미소를 띄면서 책장을 넘기게 하는 힘이 된다.

수우가 노조미를 키우면서 겪는 일, 노조미와 친 할아버지의 관계, 예전 남편의 가정교사와의 사랑, 이들을 보는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관계....로 연결되는 가족들과, 수우의 직장 동료들과 그들의 관계, 그리고 노조미가 자라면서 주변의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관계들이 실제로의 관계 구성을 그리면 모두 이어 그린다면 무척이나 복잡해 보이지만, 매권 책장을 넘기면서 익숙해져서 띄엄띄엄 봐오던 가족들이나 친척들을 어쩌다 보는 것과 같이 별로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권수를 더 할 수록 자연스럽게 이들의 가족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어 더더욱 편하게 볼 수 있게 된다. 각각의 이야기나 각자의 마음을 보게 될 때는 마치 그들의 일기장이나 고백서를 보는 것 같아 별 내용이 없는데로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만화의 숨어있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나 힘든일이 있고, 그 힘든일이 사람의 성격을 바꾸기도 하고 또 때론 운명까지도 바꾸기도 하지만, 결국엔 사람은 살아남아 자신의 그릇만큼 꾸리고, 배풀고, 쌓아간다는 인생의 절대적인 법칙이나 논리를 그대로 그리고 있는 이 만화는 말 그대로 소박하다. 누군가가 죽어서 나쁜 운명이 휩싸이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죽이는 것도 아니며 피를 흘리거나 힘을 키워야 하는 것들과도 다르며, 이상한 짓거리를 헤대는 캐릭터가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그런대도 재미가 있어서 좋다. 삶이 지지부진하듯..이런 지지부진한 일상을 따뜻하게 그리고 있어서 쉬었다 보아도 이야기는 연결이 되고,,다음권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도 없고 빨리 다음권을 보고싶다는 열망도 없이 부담없이 넘어가버린 책장 때문에 더더욱 마음이 홀가분하다. 우리 같이 어쩌다 시간이 나서 만화책을 찾게 되는 날엔 더더욱 좋은 책이다. 사족으로 세상에서 사장 아름다운 음악은....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역시 스스로가 행복할 때 듣는 음악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 만화 속 좋은 글 -

역시 난 태어나길 잘했다.
죽도록 서로 사랑했던 엄마와 아빠가 연주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기에.....
분명 내 생명은 생겨났다.

엄마, 엄마
왜 모든 동화책엔 공주님이 왕자님이랑 결혼하는 장면에서 끝나버려?

그건 말야~
인생에서 결혼식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그런 거 아닐까?!

때때로 길을 가다가 갑자기 멈춰버린 적이 있어요.
누군가가가 보고 있는 기분이 들어
누가 꼭 날 부른 느낌이 들어서
난 뒤를 돌아바 봐요
하지만 아무도 없고
모두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만 가요.
거기 있는 건 단지
투명하고 푸른 하늘과 부드러운 나뭇잎
아아, 당신이었군요


네 살때 나는
무척 씩씩하고 말괄량이어서

"지금까지"는 전부 "어제"고
"지금부터"는 전부 "내일"로
언제나 "오늘"밖에 머리 속엔 없었다.

"꿈 같은 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
그건 절대 지금이 아니다."
by kinolife 2006. 7. 12. 22:38

취화선에 나오는 그림... 영화가 화가의 일생을 다루다 보니 장승업의 그림들이 장승업과 함께 또 다른 주인공이다.영화를 본지 오래 되었거니와, 영화 속의 그림이 희미해 질 때 갑자기 오래된 엽서 속의 수묵화가 생각이 나서 영화 <취화선>의 홈페이지를 열어본다. 영화가 개봉된지도 오래 되었는데 여전히 홈페이지가 열려 있다는 사실이 참 반갑다. 개봉 당시에도 상당히 잘 만든 홈페이지였다는 생각을 했는데, 단순한 홍보의 수단이 아니라 영화의 발자취로서 홈페이지가 항상 건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미술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상태지만 자연인이 다른 자연인인 화가가 그린 그림을 감상하는 시점으로 그림들을 다시 열여다 본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그림이 다 그만의 색깔을 담고 있겠지만, 기존에 수묵화 하면 보이던 매화나 십장도가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닭이나 개 곤충들과 몇몇의 인물화들은 그의 그림에 대한 생각이 자연의 일부를 종이에 담는 것이 아니었나  혼자 생각해 본다.

취화선의 홈페이지에는 그의 그림에 대한 안내도 친절하게 되어 있어서 영화를 그림을 통해서 다시 기억하기 좋게 해 두었다. 혹시 궁금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홈페이지에 수록된 그림에 대한 팁을 달아 두었다. 개인적으로 난 메인에 올려둔 이 그림이 가장 좋으다. 홈페이지의 해설에는 "곽선비 방에 걸려 있던 그림 불과 몇 획으로 파초의 느낌을 생생하게 잡아 낸 승업의 붓놀림을 곽선비가 부러워 하는 그림"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여렴풋이 영화 속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아래에 달아놓은 그림들도 영화를 기억하면서 다시 봐도 좋을 듯 싶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그림을 보고 영화가 보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최민식의 연기만으로도 두 시간이 그러게 아깝지는 않은 영화다. 장승업의 그림은 물론이고...
첫사랑 소운에 대한 열정을 담아 그린 소운의 초상화

첫신에 등장한 그림으로 어느 양반집에서 술을 마시며 그린 그림과 계곡에서 술을 마시며 시화를 즐기는 장면에 승업이 그린 그림으로 칡가지를 뭇으로 채색은 간장과 김치로 그렸다.

장승업이 유랑길 중에 자연을 벗삼아 잠자리를 그린 그림

수령의 생일잔치에서 승업과 승업의 스승인 유숙 등 쟁쟁한 화가들이 함께 그림 합동그림

폐가가 된 김병문의 집으로 몰래 들어간 승업이 남아있던 산수화에 채색을 한다

유숙선생에게 다시 그려 보내준 귀거래도

변원급의 집에서 장승업이 그린 그림

죽음을 앞둔 소운을 위해 승업이 그린 그림과 이응헌이 한번도 남에게 보이지 않았던 그림을 승업이 한번 훔쳐보고 그린 명나라 진가훈 그림의 모사본

김병문의 서당에서 장승업에게 처음 칭찬한 그림

영화 속 장승업의 전성기 때 그림 중 하나와 유숙의 소개로 최역관이 승업에게 부탁한 부채그림

화가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갈등한 끝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동한 그림을 완성해 낸다. 처음 낙관을 찍어 개똥에게 건내는 그림과 매향과 처음 만날 때 매향의 속치마에 그려준 매화
도자기에 그려넣은 승업의 마지막 그림

장승업이 소운을 닮은 기생을 만나기 위해 기방에 그려준 그림

장승업이 이별을 앞두고 천으로 그려준 그림






by kinolife 2006. 7. 12. 22:31
15년간 영문도 모른채 강금당한 오대수는 자신이 강금당한 이유에 대한 대답을 얻지 못해 미칠 지경이며 그 미치는 지경이 그 대답없음에 대한 답답함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 속의 이 그림은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그림의 제목은 [슬퍼하는 남자] 1892년에 완성된 이 그림은 벨기에 출신의 후기 표현주의 화가 제임스 시드니 앙소르(James Sydney Ensor)의 그림이다. 화가 스스로 위기가 닥쳤을 때 완성했다는 이 그림은 영화 속 오대수의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과 쉽게 오버랩 된다.그림의 아랫부분에 적혀 있는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라는 경구는 정말이지 오대수의 더욱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더 극명하게 만들어준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혼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갖힌자의 대답 없는 고뇌를 어찌 표현하느냐를 이 작은 그림으로 총화시켜 주는 것 같다. 급기야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얼굴이 스스로 헝크러트리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오대수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그림과의 오버랩 이후의 독백 가스가 나오면 ~ 잠이 들고 일어나면 머리고 깍아 주고 몸도 씻어주었다는 비능동에 맡겨 버린 체념을 통해 스스로를 지워버리는 오대수는 영화 속에서 그 어떤 주인공보다 애처롭다. 그래서 그의 얼굴과 결코 다르지 않는 이 그림속의 남자처럼 웃을 수도 울지도 못하는 이의 마음이 쓸쓸히게 전해진다.
by kinolife 2006. 7. 12. 21:15

지하철 테러범에 관한 영화 <튜브>는 일종의 테러를 소재로 한 액션 영화지만 영화 개봉 즈음에서 발생한 대구의 방화범으로 인한 지하철 사고의 여파로 액션이 아닌 재난영화가 되버린 비운의 영화다.
철저하게 헐리우드 스타일의 극전개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영화는 조금은 빈약한 스토리와 완벽하지 못한 CG, 그리고 극의 리듬을 깨는 러브 스토리까지 진부하면서도 산만한 액션영화의 모든 법칙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기존에 우리영화에서 다루지 못했던 소재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감정과 내용 모두가 과잉이 되어버린 부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배두나는 항상 악기통을 하나 들고 다닌다. 크기로 봤을때는 바이얼린이 아닌가 싶은데 역시 이 부분은 악가 전공자가 봐야 명확해 질 것 같다. 배두나가 들고 다니는 이 악기통 밖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현대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그림 "Kiss"가 옮겨져 있다. 악기통의 굴곡을 그대로 옮겨받은 그림 "Kiss"는 여주인공의 짝사랑을 더욱 스산하게 하는 장치로 보여진다. 1907년에 그리고 시작해서 이듬해에 완성한 이 그림은 화려한 색체에 애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비극적인 사랑(사실 그렇게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지만)의 메타포로 쓰여서 그런지 스산하게 보인다. 물론 그런 느낌에는 지하라는 주된 공간과 어두운 조명으로 인한 분위기 연출의 영향이 없지 안겠지만, 역시 이들 캐릭터들의 우울한 과거와 현재가 그림을 비켜갈 수 없기 때문이 주된 요인이다.크림트의 다른 그림 역시도 마찬가지지만 빨아들이는 듯한 색감이 오히려 쓸쓸한 감상을 전해주는 그의 그림이 이 불운한 액션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약간 오용된 듯한 느낌이 든다. 편견인가? 역시 영화는 성공을 하고 볼 일인가 보다. 재미없고, 흥행에 실패해서 그런지 그런 자잔한 것 깥지 뭔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by kinolife 2006. 7. 12. 21:14
2003년 가을, 국내 영화계에 섹쉬하면서도 슬픈 영화 한편이 크게 사람들의 이름에 오르내릴 것 같다. <정사>에서의 화려한 데뷔이후, <순애보>에서 조금 주춤했던 이재용이 칼을 갈며 내 놓은 영화 <스캔달-조선남여상렬시자>가 바로 그 작품.

18C 관능문학의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라클로(Pierre Choderlos de Laclos)의 원작 소설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를 원안으로 했다는 데서 영화계는 물론 순수문학인들에게도 주목을 받는 이 작품은 단순히 옛 유럽문학을 우리식으로 옮긴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역사의 과거로 되돌아가 현재의 이야기를 한다는 복합적인 정서의 결합체로서의 관심은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런 궁금증과 기대들은 영화가 공개되기 전의 기대는 영화가 공개되고 난 이후 더욱 더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오고 있으니 말 그대로 이슈작이 나온 셈이다. 문학의 완성도에 전혀 누가 되지 않는 영화적 재해석과, 시대여행이 지루하지 않도록 배치한 우리 멋의 극치, 그리고 그에 역시 빠질까 신경을 쓰고 있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어디 하나 험을 잡기가 쉽지 않은 웰메이든 영화의 표본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러한 영화적인 요소만큼이나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옛이야기를 현대식으로 풀면서 중간중간에 보여주는 남자 주인공 조원의 그림솜씨가 더 없이 눈이 풍성한 식탁으로 초대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은 현재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교수로 있는 윤여환 화백의 그림들이다. 한국화의 묘미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윤화백의 그림은 말 그대로 몰라서 그 가치를 알지 못했던 미지의 개쳑이 주는 기쁨을 전해준다. 어떤 그림이 이전의 윤화백 그림이며, 이번 영화를 위해 새롭게 그린 그림이 어떤 것인지는 구별되지 않지만, 더군다나 그의 홈페이지에서도 영화 속의 그림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이 없어서 조금은 답답하기는 하지만, 영화를 보기전에..그리고 다시 영화를 보고 나서 보아도 적지않은 기쁨들을 주는 그림들이다.

한국화에 대한 조예는 전혀 없는 나지만, 예쁜 그림들에 대한 솔직한 감상은 궂이 숨길 필요가 없을 듯 싶다. 자! 그럼 차례대로 그림들을 감상 해 보자.


by kinolife 2006. 7. 12. 13:47

[수코의 아이들] 과  [수콕메달들] (240×170㎝, 1987년작)

2000년 경, 막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dbdbdb)의 내리막길의 정점에서 한 편의 한국 다큐멘터리가 영화인은 물론 문화계의 관심을 끌었었다.  영화의 제목은 <하늘색 고향> 감독은 여류감독 김소영이었고 다큐멘터리의 소재는 소련의 우즈베키스찬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족화가 신순남 화백에 대한 이야기. 시대는 1937년부터 스탈린에 의해 일본과의 전쟁을 예견하고, 러시아 국경 지대의 한인들을 이주시킨 일종의 '강제이주'의 역사를 시발점으로 한 우즈베키스탄에서의 한인들의 생활, 그 중에서도 화가 신순남의 인간사와 그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처절한 우리 민족의 또 다른 역사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그 당시엔 개봉이 되지 못했고, 지난 2002년 뒤늦게 서울의 몇몇 극장에서 개봉해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고 한다. 나 역시도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우연히 이 영화에 대한 소식을 담은 기사를 다시 보았고 그 때(2000년 경)가 생각이 나서 이래 저래 정보를 모아 보았다.

영화 초입, "“우리는 노예였습니다. 노예에겐 이름도, 민족도 없습니다. 그래서 난『레퀴엠』에 얼굴을 그려 넣지 않았습니다..."라는 신순남 화백의 말로 시작한다는 영화는 이제 개봉도 끝이 나고 몇몇의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게 됐다. 이런 영화들이 간간히 작은 공간에서 상영되고 알려지고, 하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영화가 화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 속의 주인공은 신순남 화백과 그의 자식과도 같은 그림들이 될테다. 그 중에서도 신순남 화백의 대표작인  [하늘색 고향]과 [전설] [레퀴엠], 그리고  세편의 그림들을 더 올려본다.

[장미색의 눈(雪)]
연작 [레퀴엠-하얀새 검은해] 36m (2m×3m×총18점)
연작 [하늘색 고향] (8×3m, 2×3m, 88년작, 4부작의 대형유화)
연작 [전설] (2×3m 총 26점, 가로길이 52m)

신순남 화백이나 영화에 대해 더 관심이 있으신 분은 그림 위, 링크되어 있는 홈페이지에서 다 많은 정보 얻으시면 됩니다.

홈페이지  http://www.sky-blue.co.kr

by kinolife 2006. 7. 12. 13:38

영화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에서 주인공인 핀 벨(에단 호크 분)이 커서 어릴적 꿈이었던 화가로서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벨의 그림은 벨의 성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중요한 도구이면서도 그의 성장과 함께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상징이기도 하다. 어릴적 부터 성장기까지 보여지는 영화 속의 이 그림들은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프랜시스코 클레멘트( Francesco Clemente)의 그림들이라고 한다. 그는 이 영화 이외에도 영화 <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에서는 최면술사로, 또 다른 멕시코 영화 <도대체 훌리엣이 누구야? Quien Diablos Es Juliette?>에서도 단역으로 촐연하기도 해 영화와의 인연이 긴 화가이기도 하단다. 그의 그림엔 영화만큼이나 독특한 향내가 난다. 내가 아시는 어떤 분은 같이 영화를 보고 나와선느 그냥 편한 그림들을 쓱쓱 그리는데 잘 그리는 걸 보니 화간가봐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나는데, 정말이지 별로 어려운 것 같지 않는데 내가 그린다면 하면 깝깝한 걸 보면 화가라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정말이지 선택받은 재주인건 분명 한가 봅니다.

by kinolife 2006. 7. 12. 13:23
"Double portrait of Lucaian Freud and Frank Auerbach" 1964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오프닝에는 영화 속의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그림 두 점이 벽에 걸려 있다. (아래 그림과 연작 인듯 싶은데 정확하게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기에 둘 다 올렸다,) 그림속의 남자는 얼굴이 이그러져 있어서 누군지를 알 수가 없다. 영화 속에서 폴을 총으로 쏜 잔느는 그 남자가 누군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림 속의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져 알 수 없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 잔느의 대사와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Double portrait of Lucaian Freud and Frank Auerbach" 1964

Study for Portrait of Isabel Rawsthorne1964

물론 아래에 잔느를 연상시키는 듯한 그림에서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서보다는 잔느적인 느낌만이 남아 있는 그림이지만,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속의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Vacon)의 그림은 이 영화속의 주인공들에게 있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자아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의 주제처럼 혼돈스럽고 부정확한 인간의 관계를 잘 드러내 준다. 특히 각각 남자 여자의 그림은 개인의 혼돈을, 두 그림을 붙혀 두었을 때는 더더욱 정리되지 않은 혼돈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주인공들의 자아와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속의 피사물이 주는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by kinolife 2006. 7. 12. 13:16
영화 <미스터 빈 Mr-Bean>에는 빈이 어이없게 망쳐 버리는 그림이 한 장 있다. 영화 속에서는 손으로 짓이겨진 이 영화 속의 그림은 영화적 장면에 의해 그의 재치로 다시 소생한 듯 보이지만, 만약 영화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빈은 예술품을 망친 범죄자로 자책감에 휩싸여 감방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영화 속에서 미스터 빈에 의해 곤욕을 치르는 모델이 된 그림은 미국 출신의 화가 제임스 애보트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가 1872년 경에 그린 <화가의 어머니 Portrait of the Artist's Mother >라고 한다. 현재는 파리의 오르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군더더기 없는 구도와 깔끔한 색채가 단정함과 진득함을 전해 주는 담백한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by kinolife 2006. 7. 12. 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