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 96분
감독: 윤제균
출연: 임창정
     하지원
     최성국
     유채영

<두사부일체>를 보면서 내내 찜찜함과 우울함을 금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이상한 정체불명의 영화로 흥행에 성공했던 그 감독의 두 번째 영화를 주변의 엄청난 이슈와 찬사 이후에 철 지난 외투를 벗지 못하는 이상한 찜짐함을 느끼며보았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건지, 아니면 영화제작의 열정이 넘치는 건지 연이어 바로 다음 영화를 내 놓은 이 충무로 행운아 흥행감독의 두 번째 작품은 역시 첫번 째 보다는 진 일보. 나쁘진 않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즐거움은 코미디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적당히 희화화된 캐릭터들. 그리도 그 다음은 역시 조금은 모자란 듯한 그래서 혹시 나빠질 지 몰랐던 함정을 피해간 에피소드의 적절한 양이다. 영화 <색즉시공>은 미국의 <어메리칸 파이>나 독일의 <팬티 속의 개미> 류의 영화들과 비교해서도 전혀 빠지지 않을 섹스 코미디를 보면서, 우리도 이제 우리만의 섹스 코미디를 가진다는 기대감에 적당히 부응하는 여유를 보여준다. 어색하지도 과장되지도 않아 보이는 에피소드가 가지고 있는 이 영화의 힘은 역시 감독 스스로가 밝힌데로 에피소드의 대부분들이 주변, 혹은 자신의 경험담이었다는 사실성에 바탕을 둔 이야기들이기 때문일테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웃음은 실제 이런류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들에겐 신선함으로, 실제 경험이 있던 이들에겐 경악스러운 유머로 다가왔을 터, 역시 정열 아니 정력이 넘치는 청춘은 그 때만의 정말이지 성(性)스러운 묘약과 웃음이 담겨져 있는가 보다.

'성적 괴담'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자 요리법이나, 자위행위의 정열은 가히 남성들의 성적 치기를 본격적으로 보여준 장면들, 그런가 하면 영화 속의 여성들이 성에 대해 당당한 일면을 보여주는 부분은 놀라운 부분이기도 하다. 침대를 놓고 본다면, 여성 상위 형식의 체위도 그렇거니와 숫총각을 "머리가 뽀개지겠다"는 문장으로 자신의 침실로 끌어들이는 것이나, 혹은 섹스를 하지 않은 대신 손으로 봉사(?)를 하는 여성까지 기존의 영화 속 침실 위에서의 여성 캐릭터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바람난 남차 친구에게 "그만 놀고 네 자리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당당함이나,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며 연인의 머리에 크레디트 카드"를 날려버릴 수 있는 모습까지...현실적이면서도 톡톡튀는 여성 캐릭터들은 흔히 남성들만의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는 성 이야기의 성의 균등을 이뤄내는 캐릭터들이다.

물론 이런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연기가 가능한 것은 에피소드들의 자연스러운 연결 때문이겠지만, 우리의 불쌍한 청춘 은식은 물론이거니와 조연들의 주인공 못지 않은 연기를 빼 놓고는 이 영화의 성공을 야기 할 수 없을 듯 싶다. 특히 은식 역을 맡았던 임창정은 적어도 자신있게 제 2의 연기과정의 발판 마련이라고 해도 무관할 정도의 연기를 보여준다. 역할상 순수하지만 고집스럽고, 어눌하지만 자기 의지가 있는 이 미련해 보이기까지 한 청년 은식은 여드름 투성이에 진지하려 해도 얼빵해 보이는 임창정의 얼굴이 있었기에 더욱 더 돋보이는 것이다. 거기다가 시트콤에서 발군을 실력을 발휘한 최성국, 가수에서 연기자로의 변신이라고 해도 무관할 유채영의 연기는 의외의 발견. 물론 전문 조연 연기자들의 연기를 말할 나위 없겠다.

영화 <색즉시공>을 보고 누군가는 연인들끼리 보기엔 좀 민망하다고도 했고, 또 누구는 꼭 연인들에게 권해주고, 혹은 주어야 할 영화라고 극찬하며 침을 튀키며 말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개봉 당시 극장가를 흥행의 폭풍으로 몰고, 코미디의 전성기라는 고뿔을 늦추지 않게 했던 이 영화 <색즉시공>의 힘은 역시 끼 넘치는 엽기적 상상력과 폭발하는 웃음의 힘이 뒷받침이 되어서였겠지만, 어리한 청년의 짝사랑과 그것의 표현이 없었다면 정말이지 색이 넘치는 공허한 영화로 남았을 지도 모르겠다. 말 그대로 '눈물의 차력'이 보여준 임창정의 차력쇼는 하지원의 상황과 눈물로 교차되면서 이 시대의 성과 이 시대를 비켜가는 사랑법에 대한 만감을 보여주며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웃음과 눈물의 적절한 조화는 쉼 없이 허무한 웃음으로만 치달았던 전작 <두사부일체>와 이 영화를 구분짓게 하는 경계선 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윤제균 감독의 이번 영화 <색즉시공>은 덜 부담스럽고 덜 싸구려 같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상업영화로서의 이 영화는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인다.  

by kinolife 2006. 7. 14. 22:43
2002년, 미국/영국, 89분
감독: 가이 리치 (Guy Ritchie)  
출연: 마돈나(Madonna)
       아드리노 지아니니(Adriano Giannini)
        진 트리플혼(Jeanne Tripplehorn)

영국의 활력넘치는 영화 감독 가이 리치와 활력 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미국의 마돈나와의 만남! 이들이 만남이 이루어낸 또 다른 결과물인 영화 <스웹트 어웨이>는 이들 각가의 명성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뒤 쳐저 보이는 안타까운 작품이다. 1974년에 이미 만들어진 적이 있는 리나 베르트뮐러 감독의 이태리 영화 <귀부인과 승무원>을 가이 리치 부부식으로 리메이크한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제목  'Swepy Away'는 휩쓸리다. 혹은 조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 즉 귀부인이 승부원 아니 어부(이 영화에서는 어부라는 점에 많이 강조된다.)가 조난을 당해 사랑에 휩쓸리기 까지 한다는 이야기일테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귀부인과 가난한 어부의 사랑이 아니라 마돈나의 탄탄한(아지까지도) 몸매와 미국의 거부들이 놀고 먹는 휴양지가 안겨다 주는 시각적인 만족도가 더 크다는 점에 있어 쏟아지는 외부적인 혹평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돈이 많다보니 시간까지 넘쳐 흐르는 미국의 갑부 커플 세 쌍은 지중해로 색다른 여행을 위해 배에서 내린다. 명품으로 둘러싸인 패션은 화려함을 더하고 거만하기 이를때 없는 이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돈 쓰로 오신 마나님과 서방님의 정형이 아닐 수 없다. 이 중에서도 유독 한 귀부인은 입이 닭나발 처럼 튀어 나와 모든 것에 불평 불만을 늘어 놓는다. 배가 후지다고 한마디, 체력단련실이 없다고 한마디, 금방 잡은 물고기를 썩었다고 한마디, 커피를 새로 뽑지 않고 데워 왔다고 한마디, 티 셔츠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한마디, 이 단계에 이르면 시중을 들고 있는 승무원이자 어부인 페페 말고도 영화를 보던 모든 이가 이 귀부인 마돈나에게 재수없다는 평가를 한마디 내릴 만하다.

그러나 모든 헤프닝은 앙숙관계에서 부터 시작이 될지도 모르겠다. 여느 로맨틱 코미디(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로 보기에도 좀 어색하다. 그냥 웃기는 사랑 이야기가 로맨틱 코미디라 칭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수이겠지만.)처럼 이 재수없는 귀부인과 돈은 없지만 자존심이 살아 꿈틀거리는 어부는 휴양지 근처의 많은 어느 무인도에 정박하게 되면서 새로운 관계를 싹 띄운다. 명령하던 귀부인은 얻어 받거나 무릎을 꿇고 애걸해야 했으며, 온갖 조롱을 받아내던 어부는 어느새 마스터가 되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물고기를 잡아올리시는 당신 진정한 어부이십니다." 싸이의 노래처럼 무인도에서는 어부가 진정한 챔피언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 넓은 땅에 둘 밖에 없다는 한계와 자연의 개척과 생존이라는 공동의 과제앞에서 서로에게 싹드는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물론 밤낮을 함께 보내며 외로움을 달래고, 시간을 같이 보내는 남녀에게 정이 안 싹틀수가 없으니 이미 사건을 인태된 셈이다. 특히 낡은 무인도의 집을 헤집다가 발견한 술을 마시고 쇼를 감행하는 마돈다는 여지 없이 자신의 본업이 댄스가수였음을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솔직이 이 영화 속에서의 마돈나의 연기는 말 그대로 볼품이 없었으므로 그러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덕분인지 마돈나의 상대역을 맡았던 아드리노 지아니니의 연기가 자연스러운 맛을 내는 것 처럼 보인다. 그의 이력을 찾아 보니 1974년 작품 ,<귀부인과 승무원>에서 승무원 역할을 맡았던 지안카를로 지아니니의 아들이란다. 어찌 되었건 이들 커플의 어색한 앙상블은 이 영화의 스토리까지도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것 같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는 후미로 가면서부터는 맥이 빠지면서 바람빠진 고무풍선 처럼 변해 버리고 시들해진다. 특히 이들이 구조되고 그들만의 사랑을 확인하는 부부에서는 실소가 터져 나오는 지경. 어느 무명의 감독 데뷔작보다 못한 이 영화의 연출력은 전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스내치>에서 깔끔하면서도 독특한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감독의 영화라고 보기 힘들게 한다. 말 그대로 가이리치의 대표적인 실패작인 셈이다.

하지만 팝콘이랑 함께 하면 좋을 영화에 그리 큰 작품성을 논하지 말고 마돈나의 패션과 아름다운 휴양지에 시선을 맞춰보자. 그리 나쁘지는 않다. 단지 가이 리치의 영화에 연출력에 대한 적당한 실망감과 이제 서서히 늙어간다는 것의 징후를 마돈나의 얼굴에서 찾는 씁쓸함이 조금 불편하게 할 뿐이다. 거기다가 과거의 영화를 리메이크 할 때 범하기 쉬운 우려들을 그대로 표출하는 점과 영화 시작 오프닝에서 마돈나의 노래와 함께 느낄 수 있었던 007 같은 매력적인 분위기가 오래되지 않는 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수 많은 헛점 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점이다. 이 모든 것 역시 관객들이 새겨 본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흥행성적 저조는 당연한 귀결이리라. 이런 평가와 결과에 대해 마돈나가 팬들에게 "제발 봐주세요"라고 했다는 외신은 어느 당당한 팝 스타가 남편을 잘못 만나 그렇게 된건지, 또 그도 아니면 어느 창창한 신예영화감독이 부인을 잘못 만나 당하는 혹독한 형벌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사랑에만 충실하고 일에는 나태한 것에 대한 결과인지 아리쏭하다. 웬지 영화는 세 번째 이유가 아닐까 하는 힌트를 주는 것 같이 보인다.
by kinolife 2006. 7. 14. 22:40



"모든 역사를 통하여 진리와 사랑의 길이 항상 승리하였음을 기억하노라"

by kinolife 2006. 7. 13. 22:26


"음악이 시작되면 그걸 느끼기 시작하죠. 그럼 자연적으로 몸이 움직이기 시작해요."-알렉스(Jennifer Beals 분)
by kinolife 2006. 7. 13. 22:24
2002년, 미국, 125분
감 독: 알렉산더 페인 (Alexander Payne) 
각 본 : 알렉산더 페인(Alexander Payne)
          짐 테일러(Jim Taylor)   
원 작 : 루이스 베글리(Louis Begley)

출연: 잭 니콜슨(Jack Nicholson)
        호프 데이비스(Hope Davis)
        더몬트 멀로니(Dermot Mulroney)
        렌 카리오우(Len Cariou)
        하워드 헤스먼(Howard Hesseman)
        케시 베이츠(Kathy Bates)
        준 스큅(June Squibb)
        매트 윈스톤(Matt Winston)
        해리 그로너(Harry Groener)
        코니 레이(Connie Ray)
        필 리브스(Phil Reeves)   
        제임스 M. 코너(James M. Connor)   
        스티브 헬러(Steve Heller)   
        안젤라 랜스베리(Angela Lansbury)   

음 악 : 롤페 켄트(Rolfe Kent)   


같은 직장에서 30년을 전후하는 시간동안 근속 근무를 한다는 건 요즘같은 직장 분위기, 근무 환경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힘든 일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장애도 많고,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 쯤으로 치부되기도 쉽고, 요즘에도 그런 마인드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니 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만큼 한 직장에 뿌리를 박고 일을 한다는 것은 언제부턴가는 능력이 없다는 것의 한 증거가 되기도 했고, 고지식하다는 말과 연관되어 그 사람의 경직성을 표출하는 다른 표현이 되기도 했다.
그래미 시상식에서 남우 주연상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개봉한 영화 <어바웃 슈미트>는 그 수상자의 이름이 잭 니콜슨이라는 사실에 어느 정도 안정적인 연기를 기대하며 영화에 다가가게 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순간엔 그가 아니면 안되는, 아니 그를 진짜 연기자로 만들어준 영화구나 라는 생각을 쉽게 하게 된다. 이 바보같고 꽉 막힌것 같은 슈미트는 말 그대로 잭 슈미트여만 가능헐 것 같아 보인다.

평생친구였던 직장과의 영원한 이별, 그리고 그것이 사회로부터의 격리라는 걸 알게 된 슈미트, 정확한 시간에 몸은 움직일 준비를 하지만, 슈미트에겐 그의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곳이 없음을 알게 된다. 자신만의 시간이 많아질거라 기대를 하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해 버렸고 세상의 어느 곳도 그의 새출발에 무관심하다. 여유로와 곤혹스러운 낮 시간은 그의 허전함을 더욱 배가 시키는 증거가 될 뿐이다. 그 낮 시간에 우연히 보게 된 TV속의 운두구는  그의 허전함에 속에서 유일하게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미지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런 그에게 지저분하고 너무 싫어하는 습관으로 학을 떼게 하는 지겨운 아내의 죽음,  죽음 이후 밝혀지게 되는 친구와 아내와의 불륜은 이제 그가 믿었던 가족은 가짜였으며, 그를 일하게 해준 사회는 단순히 그를 이용한 장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는 슈미트를 버렸고, 슈미트 혼자에게  남겨진 가정은 모든 의미상실이 벽에 부닥트리며 힘을 잃고 만다. 말 그대로 팔 떨어지고 다리 부러진 연은 이제 곧 어느 이름없는 촌동네의 나뭇가지에 걸려 떨어지고, 부서져 날아가 없어져야 할 판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성에 차지 않는 사위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 지지 않은 사돈은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에 대한 도전 바로 그것이다. 이런 그에게 있어 자신의 딸의 결혼식이 있는 도시로 가기까지의 혼자만의 여행(물론 딸의 홀대로 시작된 여행)은 진정 열린 시간을 다시 자기식으로 재배열할 수 있는 계기인지도 모른다.

영화 <어바웃 슈미트>는 그래미 시상식에서의 잭 니콜슨의 말대로 드디어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게 된, 어느 명배우에게 제 2의 인생에 대해 쏘아 올려진 화려한 신호탄과 같은 작품이다. 잘생겼지만 엽기적인 더몬트 멀로니의 망가짐, 케시 베이츠의 화끈함은 이 영화가 코미디 영화임을 잊어버리지 않게 한다. 하지만 곳곳에 산재해 있는 웃음이란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뜻하지 않은 복병처럼 쉽고 편한 웃음이 아니며 채 웃음이 다 터지기 전에 인생은 황혼을 향해 달려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웃음이 주는 여운은 쓸쓸하다. 그 인생의 진실을 슈미트는 아내의 고집스런 버스 위에서 촛불을 밝히며 혼자 잠들고 혼자 깨면서 알 수 있으며, 거짓스런 인생 속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딸아이의 결혼식과 무지한 웃음 속에서 한숨 쉬며 어렵게 깨닫게 된다.

지나온 시간이 많기 때문에 남아 있는 시간이 훤히 보이는 이 나약한 늙은이 슈미트는 모든 사람들이 늙어갈 모습에 대한 한 전형을 보여 주늗 것 일지도 모른다. 영화 말미,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자신의 계좌와 일치하는 먼 곳의 가난한 나라의 소년 운두구는 그나마 슈미트에게 남겨진 선행과 봉사라는 이름의 마지막 의무인 셈이다. 혼자 남은 무력한 노인에게 의무란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행복하게 할 이 슈미트의 숙제 운두구는 고마움을 담은 편지 속의 욕심없는 그림을 통해 그에게 가장 인간적이며 시원스러운 통곡까지 선사한다.  써늘한 자신의 작은 집은 그의 울음을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며 그가 죽어가야 할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장소이다. 이 장면에서의 잭 니콜슨은 이 세상 모두의 늙어버린 슈미트의 모델 같아 보인다. 이 영화의 원안이 되었다는 1996년에 발표된 루이스 베이글의 동명 소설이 그의 통곡 때문에 더욱 더 궁금해 진다. 인생의 씁쓸함을 담고 있는 휴먼 코미디의 정수 <어바웃 슈미트>에게 <늙어감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붙여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을 듯 싶다.
by kinolife 2006. 7. 13. 22:17

취화선에 나오는 그림... 영화가 화가의 일생을 다루다 보니 장승업의 그림들이 장승업과 함께 또 다른 주인공이다.영화를 본지 오래 되었거니와, 영화 속의 그림이 희미해 질 때 갑자기 오래된 엽서 속의 수묵화가 생각이 나서 영화 <취화선>의 홈페이지를 열어본다. 영화가 개봉된지도 오래 되었는데 여전히 홈페이지가 열려 있다는 사실이 참 반갑다. 개봉 당시에도 상당히 잘 만든 홈페이지였다는 생각을 했는데, 단순한 홍보의 수단이 아니라 영화의 발자취로서 홈페이지가 항상 건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미술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상태지만 자연인이 다른 자연인인 화가가 그린 그림을 감상하는 시점으로 그림들을 다시 열여다 본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그림이 다 그만의 색깔을 담고 있겠지만, 기존에 수묵화 하면 보이던 매화나 십장도가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닭이나 개 곤충들과 몇몇의 인물화들은 그의 그림에 대한 생각이 자연의 일부를 종이에 담는 것이 아니었나  혼자 생각해 본다.

취화선의 홈페이지에는 그의 그림에 대한 안내도 친절하게 되어 있어서 영화를 그림을 통해서 다시 기억하기 좋게 해 두었다. 혹시 궁금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홈페이지에 수록된 그림에 대한 팁을 달아 두었다. 개인적으로 난 메인에 올려둔 이 그림이 가장 좋으다. 홈페이지의 해설에는 "곽선비 방에 걸려 있던 그림 불과 몇 획으로 파초의 느낌을 생생하게 잡아 낸 승업의 붓놀림을 곽선비가 부러워 하는 그림"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여렴풋이 영화 속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아래에 달아놓은 그림들도 영화를 기억하면서 다시 봐도 좋을 듯 싶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그림을 보고 영화가 보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최민식의 연기만으로도 두 시간이 그러게 아깝지는 않은 영화다. 장승업의 그림은 물론이고...
첫사랑 소운에 대한 열정을 담아 그린 소운의 초상화

첫신에 등장한 그림으로 어느 양반집에서 술을 마시며 그린 그림과 계곡에서 술을 마시며 시화를 즐기는 장면에 승업이 그린 그림으로 칡가지를 뭇으로 채색은 간장과 김치로 그렸다.

장승업이 유랑길 중에 자연을 벗삼아 잠자리를 그린 그림

수령의 생일잔치에서 승업과 승업의 스승인 유숙 등 쟁쟁한 화가들이 함께 그림 합동그림

폐가가 된 김병문의 집으로 몰래 들어간 승업이 남아있던 산수화에 채색을 한다

유숙선생에게 다시 그려 보내준 귀거래도

변원급의 집에서 장승업이 그린 그림

죽음을 앞둔 소운을 위해 승업이 그린 그림과 이응헌이 한번도 남에게 보이지 않았던 그림을 승업이 한번 훔쳐보고 그린 명나라 진가훈 그림의 모사본

김병문의 서당에서 장승업에게 처음 칭찬한 그림

영화 속 장승업의 전성기 때 그림 중 하나와 유숙의 소개로 최역관이 승업에게 부탁한 부채그림

화가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갈등한 끝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동한 그림을 완성해 낸다. 처음 낙관을 찍어 개똥에게 건내는 그림과 매향과 처음 만날 때 매향의 속치마에 그려준 매화
도자기에 그려넣은 승업의 마지막 그림

장승업이 소운을 닮은 기생을 만나기 위해 기방에 그려준 그림

장승업이 이별을 앞두고 천으로 그려준 그림






by kinolife 2006. 7. 12. 22:31
15년간 영문도 모른채 강금당한 오대수는 자신이 강금당한 이유에 대한 대답을 얻지 못해 미칠 지경이며 그 미치는 지경이 그 대답없음에 대한 답답함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 속의 이 그림은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그림의 제목은 [슬퍼하는 남자] 1892년에 완성된 이 그림은 벨기에 출신의 후기 표현주의 화가 제임스 시드니 앙소르(James Sydney Ensor)의 그림이다. 화가 스스로 위기가 닥쳤을 때 완성했다는 이 그림은 영화 속 오대수의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과 쉽게 오버랩 된다.그림의 아랫부분에 적혀 있는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라는 경구는 정말이지 오대수의 더욱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더 극명하게 만들어준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혼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갖힌자의 대답 없는 고뇌를 어찌 표현하느냐를 이 작은 그림으로 총화시켜 주는 것 같다. 급기야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얼굴이 스스로 헝크러트리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오대수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그림과의 오버랩 이후의 독백 가스가 나오면 ~ 잠이 들고 일어나면 머리고 깍아 주고 몸도 씻어주었다는 비능동에 맡겨 버린 체념을 통해 스스로를 지워버리는 오대수는 영화 속에서 그 어떤 주인공보다 애처롭다. 그래서 그의 얼굴과 결코 다르지 않는 이 그림속의 남자처럼 웃을 수도 울지도 못하는 이의 마음이 쓸쓸히게 전해진다.
by kinolife 2006. 7. 12. 21:15

지하철 테러범에 관한 영화 <튜브>는 일종의 테러를 소재로 한 액션 영화지만 영화 개봉 즈음에서 발생한 대구의 방화범으로 인한 지하철 사고의 여파로 액션이 아닌 재난영화가 되버린 비운의 영화다.
철저하게 헐리우드 스타일의 극전개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영화는 조금은 빈약한 스토리와 완벽하지 못한 CG, 그리고 극의 리듬을 깨는 러브 스토리까지 진부하면서도 산만한 액션영화의 모든 법칙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기존에 우리영화에서 다루지 못했던 소재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감정과 내용 모두가 과잉이 되어버린 부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배두나는 항상 악기통을 하나 들고 다닌다. 크기로 봤을때는 바이얼린이 아닌가 싶은데 역시 이 부분은 악가 전공자가 봐야 명확해 질 것 같다. 배두나가 들고 다니는 이 악기통 밖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현대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그림 "Kiss"가 옮겨져 있다. 악기통의 굴곡을 그대로 옮겨받은 그림 "Kiss"는 여주인공의 짝사랑을 더욱 스산하게 하는 장치로 보여진다. 1907년에 그리고 시작해서 이듬해에 완성한 이 그림은 화려한 색체에 애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비극적인 사랑(사실 그렇게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지만)의 메타포로 쓰여서 그런지 스산하게 보인다. 물론 그런 느낌에는 지하라는 주된 공간과 어두운 조명으로 인한 분위기 연출의 영향이 없지 안겠지만, 역시 이들 캐릭터들의 우울한 과거와 현재가 그림을 비켜갈 수 없기 때문이 주된 요인이다.크림트의 다른 그림 역시도 마찬가지지만 빨아들이는 듯한 색감이 오히려 쓸쓸한 감상을 전해주는 그의 그림이 이 불운한 액션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약간 오용된 듯한 느낌이 든다. 편견인가? 역시 영화는 성공을 하고 볼 일인가 보다. 재미없고, 흥행에 실패해서 그런지 그런 자잔한 것 깥지 뭔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by kinolife 2006. 7. 12. 21:14
2003년 가을, 국내 영화계에 섹쉬하면서도 슬픈 영화 한편이 크게 사람들의 이름에 오르내릴 것 같다. <정사>에서의 화려한 데뷔이후, <순애보>에서 조금 주춤했던 이재용이 칼을 갈며 내 놓은 영화 <스캔달-조선남여상렬시자>가 바로 그 작품.

18C 관능문학의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라클로(Pierre Choderlos de Laclos)의 원작 소설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를 원안으로 했다는 데서 영화계는 물론 순수문학인들에게도 주목을 받는 이 작품은 단순히 옛 유럽문학을 우리식으로 옮긴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역사의 과거로 되돌아가 현재의 이야기를 한다는 복합적인 정서의 결합체로서의 관심은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런 궁금증과 기대들은 영화가 공개되기 전의 기대는 영화가 공개되고 난 이후 더욱 더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오고 있으니 말 그대로 이슈작이 나온 셈이다. 문학의 완성도에 전혀 누가 되지 않는 영화적 재해석과, 시대여행이 지루하지 않도록 배치한 우리 멋의 극치, 그리고 그에 역시 빠질까 신경을 쓰고 있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어디 하나 험을 잡기가 쉽지 않은 웰메이든 영화의 표본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러한 영화적인 요소만큼이나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옛이야기를 현대식으로 풀면서 중간중간에 보여주는 남자 주인공 조원의 그림솜씨가 더 없이 눈이 풍성한 식탁으로 초대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은 현재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교수로 있는 윤여환 화백의 그림들이다. 한국화의 묘미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윤화백의 그림은 말 그대로 몰라서 그 가치를 알지 못했던 미지의 개쳑이 주는 기쁨을 전해준다. 어떤 그림이 이전의 윤화백 그림이며, 이번 영화를 위해 새롭게 그린 그림이 어떤 것인지는 구별되지 않지만, 더군다나 그의 홈페이지에서도 영화 속의 그림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이 없어서 조금은 답답하기는 하지만, 영화를 보기전에..그리고 다시 영화를 보고 나서 보아도 적지않은 기쁨들을 주는 그림들이다.

한국화에 대한 조예는 전혀 없는 나지만, 예쁜 그림들에 대한 솔직한 감상은 궂이 숨길 필요가 없을 듯 싶다. 자! 그럼 차례대로 그림들을 감상 해 보자.


by kinolife 2006. 7. 12. 13:47

[수코의 아이들] 과  [수콕메달들] (240×170㎝, 1987년작)

2000년 경, 막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dbdbdb)의 내리막길의 정점에서 한 편의 한국 다큐멘터리가 영화인은 물론 문화계의 관심을 끌었었다.  영화의 제목은 <하늘색 고향> 감독은 여류감독 김소영이었고 다큐멘터리의 소재는 소련의 우즈베키스찬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족화가 신순남 화백에 대한 이야기. 시대는 1937년부터 스탈린에 의해 일본과의 전쟁을 예견하고, 러시아 국경 지대의 한인들을 이주시킨 일종의 '강제이주'의 역사를 시발점으로 한 우즈베키스탄에서의 한인들의 생활, 그 중에서도 화가 신순남의 인간사와 그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처절한 우리 민족의 또 다른 역사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그 당시엔 개봉이 되지 못했고, 지난 2002년 뒤늦게 서울의 몇몇 극장에서 개봉해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고 한다. 나 역시도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우연히 이 영화에 대한 소식을 담은 기사를 다시 보았고 그 때(2000년 경)가 생각이 나서 이래 저래 정보를 모아 보았다.

영화 초입, "“우리는 노예였습니다. 노예에겐 이름도, 민족도 없습니다. 그래서 난『레퀴엠』에 얼굴을 그려 넣지 않았습니다..."라는 신순남 화백의 말로 시작한다는 영화는 이제 개봉도 끝이 나고 몇몇의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게 됐다. 이런 영화들이 간간히 작은 공간에서 상영되고 알려지고, 하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영화가 화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 속의 주인공은 신순남 화백과 그의 자식과도 같은 그림들이 될테다. 그 중에서도 신순남 화백의 대표작인  [하늘색 고향]과 [전설] [레퀴엠], 그리고  세편의 그림들을 더 올려본다.

[장미색의 눈(雪)]
연작 [레퀴엠-하얀새 검은해] 36m (2m×3m×총18점)
연작 [하늘색 고향] (8×3m, 2×3m, 88년작, 4부작의 대형유화)
연작 [전설] (2×3m 총 26점, 가로길이 52m)

신순남 화백이나 영화에 대해 더 관심이 있으신 분은 그림 위, 링크되어 있는 홈페이지에서 다 많은 정보 얻으시면 됩니다.

홈페이지  http://www.sky-blue.co.kr

by kinolife 2006. 7. 12. 1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