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에서 주인공인 핀 벨(에단 호크 분)이 커서 어릴적 꿈이었던 화가로서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벨의 그림은 벨의 성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중요한 도구이면서도 그의 성장과 함께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상징이기도 하다. 어릴적 부터 성장기까지 보여지는 영화 속의 이 그림들은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프랜시스코 클레멘트( Francesco Clemente)의 그림들이라고 한다. 그는 이 영화 이외에도 영화 <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에서는 최면술사로, 또 다른 멕시코 영화 <도대체 훌리엣이 누구야? Quien Diablos Es Juliette?>에서도 단역으로 촐연하기도 해 영화와의 인연이 긴 화가이기도 하단다. 그의 그림엔 영화만큼이나 독특한 향내가 난다. 내가 아시는 어떤 분은 같이 영화를 보고 나와선느 그냥 편한 그림들을 쓱쓱 그리는데 잘 그리는 걸 보니 화간가봐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나는데, 정말이지 별로 어려운 것 같지 않는데 내가 그린다면 하면 깝깝한 걸 보면 화가라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정말이지 선택받은 재주인건 분명 한가 봅니다.

by kinolife 2006. 7. 12. 13:23
"Double portrait of Lucaian Freud and Frank Auerbach" 1964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오프닝에는 영화 속의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그림 두 점이 벽에 걸려 있다. (아래 그림과 연작 인듯 싶은데 정확하게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기에 둘 다 올렸다,) 그림속의 남자는 얼굴이 이그러져 있어서 누군지를 알 수가 없다. 영화 속에서 폴을 총으로 쏜 잔느는 그 남자가 누군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림 속의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져 알 수 없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 잔느의 대사와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Double portrait of Lucaian Freud and Frank Auerbach" 1964

Study for Portrait of Isabel Rawsthorne1964

물론 아래에 잔느를 연상시키는 듯한 그림에서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서보다는 잔느적인 느낌만이 남아 있는 그림이지만,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속의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Vacon)의 그림은 이 영화속의 주인공들에게 있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자아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의 주제처럼 혼돈스럽고 부정확한 인간의 관계를 잘 드러내 준다. 특히 각각 남자 여자의 그림은 개인의 혼돈을, 두 그림을 붙혀 두었을 때는 더더욱 정리되지 않은 혼돈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주인공들의 자아와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속의 피사물이 주는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by kinolife 2006. 7. 12. 13:16
영화 <미스터 빈 Mr-Bean>에는 빈이 어이없게 망쳐 버리는 그림이 한 장 있다. 영화 속에서는 손으로 짓이겨진 이 영화 속의 그림은 영화적 장면에 의해 그의 재치로 다시 소생한 듯 보이지만, 만약 영화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빈은 예술품을 망친 범죄자로 자책감에 휩싸여 감방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영화 속에서 미스터 빈에 의해 곤욕을 치르는 모델이 된 그림은 미국 출신의 화가 제임스 애보트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가 1872년 경에 그린 <화가의 어머니 Portrait of the Artist's Mother >라고 한다. 현재는 파리의 오르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군더더기 없는 구도와 깔끔한 색채가 단정함과 진득함을 전해 주는 담백한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by kinolife 2006. 7. 12. 13:12
영화 <텔 미 썸딩 Tell Me Something>에는 두 편의 그림을 찾아 볼 수 있다.

한 편은 15C의 화가 헤랄드 다비드(Herald David)가 그린 그림 [캄뷰세스 왕의 재판]과 또 다른 한 편은 셰익스피어의 소설 [햄릿]과 연관이 있는 존 에버릿 밀레이(J E.Millais)의 작품 [오필리어의 죽음]이다.

전작 [캄뷰세스 왕의 재판]의 경우는 재판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결단과 그림 속의 잔혹함이 영화 속의 주인공이 지닌 살기에 대한 느낌을 충분히 전달해 준다. 그다지 아름답고 완벽해 보이는 그녀가 왜 이렇게 피 비린내 나는 그림들을 좋아하는지....어떤면에서는 신비로운 느낌마저 전해준다. 영화속 주인공 채수연(심은하 분)이 자신만의 완벽한 남자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애인들의 몸을 조합해온 사실은 앞선 그림의 시각적 효과가 영화 속에 어떻게 반영 되었는지를 짐작 할 수 있게 하는 부분. 살아있는 사람의 생살을 찢고 피를 내는 심판은 영화 속에서는 시체 절단이라는 행위로 치환되어 이해 될 수 있겠다. 뒤 이은 작품 [오필리어의 죽음]의 경우는 세익스피어의 소설 [햄릿] 속의 오필리어가 사랑하는 오빠 햄릿이 선왕의 복수를 위해 발산하는 광기, 급기야 그녀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 절대 순수의 상징인 자신이 미쳐  물속에서 빠져 죽는 과정을 그린 그림이다. 특히 이 그림의 모델은 당시 뛰어난 프로의식을 가진 모델로 실제로 얼어붙은 강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물에 들어가 있음으로서 명작 탄생이 기꺼이 동조했으나 이후에는 병을 얻어 나이보다 쇠락해 일찍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그림이다. 이런 그림 속의 오필리어의 죽음은 순수를 위해 죽음으로 향하는 자아를 자신에게 맞는 타아를 찾아 죽음을 감행하는 여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는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살인을 저지르는 여자, 알고 보면 미친 여자인데...그 여자가 너무 매혹적이다 보니, 영화 속의 남자들이 빠져들듯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그녀와 그녀의 살인에 빠져든다. 역사 속의  전혀 다른 느낌의 두 그림이 영화 <텔미 썸딩>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치환, 소생했다고 도 볼 수도 있다.

by kinolife 2006. 4. 18. 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