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국, 112분

감독: 박제현
출연: 김정은
       김상경
       오승현
       
연애를 하다 보면 (해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 좋던 연애의 절정이 지나자마자 연애를 하기 이전과 크게 달라진게 없다고 느끼거나 심한 경우엔 눈에 띄게 불편한 일상만이 발견되게 된다. 이른바 긴장감이 떨어져 나가버리는 일상의 연애란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버리거나 거추장스러운 악세사리처럼 불편할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긴장감 없는 연애에 불을 댕기는 것은 결혼이라는 화려한 결말을 만들거나, 연애 중인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에게 제 3의 인물의 등장해 이 식어가는 관계에 질투라는 양념이 들어가 또다시 눈에 불을 켜게 할 때이다.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는 후자에 관한 이야기를 거쳐 전자의 결말로 향해가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이다. 위기를 거쳐 행복한 결말에 다다르기 위해 달려가는(마치 이 결말을 위해 위기가 있었다는 듯) 이 영화 역시 오랫동안 냄새 날 정도로 쿰쿰한 연애가 결국은 뉴페이스를 몰아낸다는 영화 속의 착한 연애학이 가진 일반 방정식을 따라간다. 영화를 다 본 지금도 영화 속의 주인공 처럼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의 선택을 감행할지는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이 착한 연애는 순진한 관객들을 배신하지는 않는다.
연애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7"이라는 숫자는 갈때까지 갔다는 것을 증명하는 불운한 숫자이다. 7년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커플이란 역시 결혼을 하기엔 무리수가 있는 사이라는 증거인 수도 있다. 혹은 연애하는 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편안하다 못해 무덤덤해진 커플들은 그 편안 일상 같은 생활에 염증을 느껴 스스로의 위기를 향해 달려가라고 속삭이는 숫자인지도 모른다.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의 주인공 현주 역시도 7년 동안의 연애를 통해 변함없이 소훈의 프로포즈만을 기다린다. 정말 영화속에 표현된 엽기적인 공주처럼, 가만히 앉아서 마냥 기다린다. 그런 그녀에게 사랑은 싸워서 가지는 것이고 노력해서 얻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나타나는데, 그게 바로 뻔하디 뻔한 연적이다(아 상대방의 불치병도 있을 수 있는데, 이건 좀 현실적으로 발현될 %가 낮은 이유이다.). 살다가 직접 맞닥트리진 않아도 많이 보게 되는 장면,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그 연적이 연예인이라는 설정이 보다 영화적인 흥미를 돋구지만 일반적으로 연적이란 당사자의 정신적 흔들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봤을 때, 그 상대가 연예인이든 아니든 그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법이다. 이렇게 내 애인의 또 다른 로맨스는 나의 눈물의 재료가 된다. 서러운 육체의 알수 없는 기폭제. 이 눈물은 두말 할 것 없이 그저 서러운 법이다.

아주 평범한 줄거리에 평이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영화의 매력은 오래된 연인을 밀고 땡기기가 아니라 영화 속 주인공 현주에게 제 3의 인생동반자이자 양념인 친구들의 면모들이다. 이들 친구들이 보여주는 일상적인 생활이 주는 단초로운 즐거움이다. 강북의 가난한 동네(하지만, 영화 속에 나오는 집은 아주 괜찮다.)의 한 빌딩에 꽃집, 만화가게, 비디오 가게 등을 같이 하며 모여사는 반백수 친구들의 일상은 미국의 TV 시트콤 <프렌즈>의 친두들만은 못하겠지만 그들만의 색깔을 가진 공동체로서 훌륭하다. 갓 스물을 넘어서면 특별히 불편할 것도, 나쁠 것도 없는 부모님의 집을 떠나 좀 더 자유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자유로움이래봐야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남자친구를 집에다 데려오고, 친구들이랑 야한 비디오 보고 싶고 머 이런게 다였지만, 그 자유를 즐기기 위해 독립이다 자취다 그런 생활을 해 본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들의 집은 유토피아 인지도 모르겠다. 역시 젊다 못해 어린 이들에겐 영화 속 이야기처럼 부자 아빠를 둔 친구가 있어야만 가능하겠지만.....

이런 이들 친구들 눈에 비친 현주는 사랑스럽고 미련한 친구이면서도 자신들 중에서 가장 착실하고 지고지순한 친구다. 물론 유일하게 남자 친구가 있고, 연애를 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친구를 괴롭히는 여자를 괴롭히기 위한 술자리에서 이내 스타의 후광에 빠져 친구들을 배신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 이전에 친구의 사랑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들뜨고 화내는 그렇게 솔직하고 순진한 이들이 현주의 친구들이다. 이런 친구들의 자잘한 이야기가 특별할 것 없는 로맨스 영화가 따뜻한 일상에 기대어 별 욕심없는 영화인 듯 비쳐지게 한다. 들뜨고 흥분하고 애태우지만 역시 사랑은 짜여진 운명 안의 스토리에 따라 내 배역이 정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때가 많다. 영화속의 현주도 자신의 사랑을 지키 위해 용기를 내면서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의 맥은 지루한 커플, 그들을 갈라놓고 사랑을 쟁취하고 싶은 제 3자라는 틀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연애라는 것도 독립된 자아들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라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라는 걸 알 수 있다. 비교적 세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스토리가 중심이지만 현주의 입장에서 사랑을 찾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찾아가는 여정에 더 큰 의미를 뒀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 이 영화는 다양한 장르를 어설프게 섭렵하고 있는 박제현 감독의 그저 그런 프로젝트 로맨스 영화이다. 하지만 그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에 자잘한 재미를 주는 건 현주역을 맡은 김정은의 표정연기이고, 또 떄론 독이 되기 쉬운 김정은의 표정연기가 독주할 수 없도록 막는 친구들의 만화같은 캐릭터가 주는 조율의 묘미이다.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 속의 사랑 이야기는 웰메이튼 수준에도 못 미치지만 풋풋하게 웃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다행이다 싶다.
by kinolife 2006. 10. 22.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