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같은 달을 보고 있다>에는 자신의 세게에서 염력까지 하는 천재일 수 밖에 없는 소년이 나온다. 영화는 B 정도였지만, 영화 속에서 소년이 그림이 그리는 그림들은 좋았다.
실제 어떤 화가의 그림이라면 작가가 누구인지도 궁금했다. 아직 누구인지 어떤 그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림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by kinolife 2006. 12. 3. 22:58

취화선에 나오는 그림... 영화가 화가의 일생을 다루다 보니 장승업의 그림들이 장승업과 함께 또 다른 주인공이다.영화를 본지 오래 되었거니와, 영화 속의 그림이 희미해 질 때 갑자기 오래된 엽서 속의 수묵화가 생각이 나서 영화 <취화선>의 홈페이지를 열어본다. 영화가 개봉된지도 오래 되었는데 여전히 홈페이지가 열려 있다는 사실이 참 반갑다. 개봉 당시에도 상당히 잘 만든 홈페이지였다는 생각을 했는데, 단순한 홍보의 수단이 아니라 영화의 발자취로서 홈페이지가 항상 건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미술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상태지만 자연인이 다른 자연인인 화가가 그린 그림을 감상하는 시점으로 그림들을 다시 열여다 본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그림이 다 그만의 색깔을 담고 있겠지만, 기존에 수묵화 하면 보이던 매화나 십장도가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닭이나 개 곤충들과 몇몇의 인물화들은 그의 그림에 대한 생각이 자연의 일부를 종이에 담는 것이 아니었나  혼자 생각해 본다.

취화선의 홈페이지에는 그의 그림에 대한 안내도 친절하게 되어 있어서 영화를 그림을 통해서 다시 기억하기 좋게 해 두었다. 혹시 궁금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홈페이지에 수록된 그림에 대한 팁을 달아 두었다. 개인적으로 난 메인에 올려둔 이 그림이 가장 좋으다. 홈페이지의 해설에는 "곽선비 방에 걸려 있던 그림 불과 몇 획으로 파초의 느낌을 생생하게 잡아 낸 승업의 붓놀림을 곽선비가 부러워 하는 그림"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여렴풋이 영화 속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아래에 달아놓은 그림들도 영화를 기억하면서 다시 봐도 좋을 듯 싶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그림을 보고 영화가 보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최민식의 연기만으로도 두 시간이 그러게 아깝지는 않은 영화다. 장승업의 그림은 물론이고...
첫사랑 소운에 대한 열정을 담아 그린 소운의 초상화

첫신에 등장한 그림으로 어느 양반집에서 술을 마시며 그린 그림과 계곡에서 술을 마시며 시화를 즐기는 장면에 승업이 그린 그림으로 칡가지를 뭇으로 채색은 간장과 김치로 그렸다.

장승업이 유랑길 중에 자연을 벗삼아 잠자리를 그린 그림

수령의 생일잔치에서 승업과 승업의 스승인 유숙 등 쟁쟁한 화가들이 함께 그림 합동그림

폐가가 된 김병문의 집으로 몰래 들어간 승업이 남아있던 산수화에 채색을 한다

유숙선생에게 다시 그려 보내준 귀거래도

변원급의 집에서 장승업이 그린 그림

죽음을 앞둔 소운을 위해 승업이 그린 그림과 이응헌이 한번도 남에게 보이지 않았던 그림을 승업이 한번 훔쳐보고 그린 명나라 진가훈 그림의 모사본

김병문의 서당에서 장승업에게 처음 칭찬한 그림

영화 속 장승업의 전성기 때 그림 중 하나와 유숙의 소개로 최역관이 승업에게 부탁한 부채그림

화가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갈등한 끝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동한 그림을 완성해 낸다. 처음 낙관을 찍어 개똥에게 건내는 그림과 매향과 처음 만날 때 매향의 속치마에 그려준 매화
도자기에 그려넣은 승업의 마지막 그림

장승업이 소운을 닮은 기생을 만나기 위해 기방에 그려준 그림

장승업이 이별을 앞두고 천으로 그려준 그림






by kinolife 2006. 7. 12. 22:31
15년간 영문도 모른채 강금당한 오대수는 자신이 강금당한 이유에 대한 대답을 얻지 못해 미칠 지경이며 그 미치는 지경이 그 대답없음에 대한 답답함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 속의 이 그림은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그림의 제목은 [슬퍼하는 남자] 1892년에 완성된 이 그림은 벨기에 출신의 후기 표현주의 화가 제임스 시드니 앙소르(James Sydney Ensor)의 그림이다. 화가 스스로 위기가 닥쳤을 때 완성했다는 이 그림은 영화 속 오대수의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과 쉽게 오버랩 된다.그림의 아랫부분에 적혀 있는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라는 경구는 정말이지 오대수의 더욱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더 극명하게 만들어준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혼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갖힌자의 대답 없는 고뇌를 어찌 표현하느냐를 이 작은 그림으로 총화시켜 주는 것 같다. 급기야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얼굴이 스스로 헝크러트리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오대수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그림과의 오버랩 이후의 독백 가스가 나오면 ~ 잠이 들고 일어나면 머리고 깍아 주고 몸도 씻어주었다는 비능동에 맡겨 버린 체념을 통해 스스로를 지워버리는 오대수는 영화 속에서 그 어떤 주인공보다 애처롭다. 그래서 그의 얼굴과 결코 다르지 않는 이 그림속의 남자처럼 웃을 수도 울지도 못하는 이의 마음이 쓸쓸히게 전해진다.
by kinolife 2006. 7. 12. 21:15

지하철 테러범에 관한 영화 <튜브>는 일종의 테러를 소재로 한 액션 영화지만 영화 개봉 즈음에서 발생한 대구의 방화범으로 인한 지하철 사고의 여파로 액션이 아닌 재난영화가 되버린 비운의 영화다.
철저하게 헐리우드 스타일의 극전개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영화는 조금은 빈약한 스토리와 완벽하지 못한 CG, 그리고 극의 리듬을 깨는 러브 스토리까지 진부하면서도 산만한 액션영화의 모든 법칙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기존에 우리영화에서 다루지 못했던 소재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감정과 내용 모두가 과잉이 되어버린 부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배두나는 항상 악기통을 하나 들고 다닌다. 크기로 봤을때는 바이얼린이 아닌가 싶은데 역시 이 부분은 악가 전공자가 봐야 명확해 질 것 같다. 배두나가 들고 다니는 이 악기통 밖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현대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그림 "Kiss"가 옮겨져 있다. 악기통의 굴곡을 그대로 옮겨받은 그림 "Kiss"는 여주인공의 짝사랑을 더욱 스산하게 하는 장치로 보여진다. 1907년에 그리고 시작해서 이듬해에 완성한 이 그림은 화려한 색체에 애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비극적인 사랑(사실 그렇게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지만)의 메타포로 쓰여서 그런지 스산하게 보인다. 물론 그런 느낌에는 지하라는 주된 공간과 어두운 조명으로 인한 분위기 연출의 영향이 없지 안겠지만, 역시 이들 캐릭터들의 우울한 과거와 현재가 그림을 비켜갈 수 없기 때문이 주된 요인이다.크림트의 다른 그림 역시도 마찬가지지만 빨아들이는 듯한 색감이 오히려 쓸쓸한 감상을 전해주는 그의 그림이 이 불운한 액션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약간 오용된 듯한 느낌이 든다. 편견인가? 역시 영화는 성공을 하고 볼 일인가 보다. 재미없고, 흥행에 실패해서 그런지 그런 자잔한 것 깥지 뭔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by kinolife 2006. 7. 12. 21:14
2003년 가을, 국내 영화계에 섹쉬하면서도 슬픈 영화 한편이 크게 사람들의 이름에 오르내릴 것 같다. <정사>에서의 화려한 데뷔이후, <순애보>에서 조금 주춤했던 이재용이 칼을 갈며 내 놓은 영화 <스캔달-조선남여상렬시자>가 바로 그 작품.

18C 관능문학의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라클로(Pierre Choderlos de Laclos)의 원작 소설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를 원안으로 했다는 데서 영화계는 물론 순수문학인들에게도 주목을 받는 이 작품은 단순히 옛 유럽문학을 우리식으로 옮긴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역사의 과거로 되돌아가 현재의 이야기를 한다는 복합적인 정서의 결합체로서의 관심은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런 궁금증과 기대들은 영화가 공개되기 전의 기대는 영화가 공개되고 난 이후 더욱 더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오고 있으니 말 그대로 이슈작이 나온 셈이다. 문학의 완성도에 전혀 누가 되지 않는 영화적 재해석과, 시대여행이 지루하지 않도록 배치한 우리 멋의 극치, 그리고 그에 역시 빠질까 신경을 쓰고 있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어디 하나 험을 잡기가 쉽지 않은 웰메이든 영화의 표본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러한 영화적인 요소만큼이나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옛이야기를 현대식으로 풀면서 중간중간에 보여주는 남자 주인공 조원의 그림솜씨가 더 없이 눈이 풍성한 식탁으로 초대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은 현재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교수로 있는 윤여환 화백의 그림들이다. 한국화의 묘미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윤화백의 그림은 말 그대로 몰라서 그 가치를 알지 못했던 미지의 개쳑이 주는 기쁨을 전해준다. 어떤 그림이 이전의 윤화백 그림이며, 이번 영화를 위해 새롭게 그린 그림이 어떤 것인지는 구별되지 않지만, 더군다나 그의 홈페이지에서도 영화 속의 그림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이 없어서 조금은 답답하기는 하지만, 영화를 보기전에..그리고 다시 영화를 보고 나서 보아도 적지않은 기쁨들을 주는 그림들이다.

한국화에 대한 조예는 전혀 없는 나지만, 예쁜 그림들에 대한 솔직한 감상은 궂이 숨길 필요가 없을 듯 싶다. 자! 그럼 차례대로 그림들을 감상 해 보자.


by kinolife 2006. 7. 12. 13:47

[수코의 아이들] 과  [수콕메달들] (240×170㎝, 1987년작)

2000년 경, 막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dbdbdb)의 내리막길의 정점에서 한 편의 한국 다큐멘터리가 영화인은 물론 문화계의 관심을 끌었었다.  영화의 제목은 <하늘색 고향> 감독은 여류감독 김소영이었고 다큐멘터리의 소재는 소련의 우즈베키스찬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족화가 신순남 화백에 대한 이야기. 시대는 1937년부터 스탈린에 의해 일본과의 전쟁을 예견하고, 러시아 국경 지대의 한인들을 이주시킨 일종의 '강제이주'의 역사를 시발점으로 한 우즈베키스탄에서의 한인들의 생활, 그 중에서도 화가 신순남의 인간사와 그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처절한 우리 민족의 또 다른 역사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그 당시엔 개봉이 되지 못했고, 지난 2002년 뒤늦게 서울의 몇몇 극장에서 개봉해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고 한다. 나 역시도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우연히 이 영화에 대한 소식을 담은 기사를 다시 보았고 그 때(2000년 경)가 생각이 나서 이래 저래 정보를 모아 보았다.

영화 초입, "“우리는 노예였습니다. 노예에겐 이름도, 민족도 없습니다. 그래서 난『레퀴엠』에 얼굴을 그려 넣지 않았습니다..."라는 신순남 화백의 말로 시작한다는 영화는 이제 개봉도 끝이 나고 몇몇의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게 됐다. 이런 영화들이 간간히 작은 공간에서 상영되고 알려지고, 하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영화가 화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 속의 주인공은 신순남 화백과 그의 자식과도 같은 그림들이 될테다. 그 중에서도 신순남 화백의 대표작인  [하늘색 고향]과 [전설] [레퀴엠], 그리고  세편의 그림들을 더 올려본다.

[장미색의 눈(雪)]
연작 [레퀴엠-하얀새 검은해] 36m (2m×3m×총18점)
연작 [하늘색 고향] (8×3m, 2×3m, 88년작, 4부작의 대형유화)
연작 [전설] (2×3m 총 26점, 가로길이 52m)

신순남 화백이나 영화에 대해 더 관심이 있으신 분은 그림 위, 링크되어 있는 홈페이지에서 다 많은 정보 얻으시면 됩니다.

홈페이지  http://www.sky-blue.co.kr

by kinolife 2006. 7. 12. 13:38

영화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에서 주인공인 핀 벨(에단 호크 분)이 커서 어릴적 꿈이었던 화가로서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벨의 그림은 벨의 성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중요한 도구이면서도 그의 성장과 함께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상징이기도 하다. 어릴적 부터 성장기까지 보여지는 영화 속의 이 그림들은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프랜시스코 클레멘트( Francesco Clemente)의 그림들이라고 한다. 그는 이 영화 이외에도 영화 <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에서는 최면술사로, 또 다른 멕시코 영화 <도대체 훌리엣이 누구야? Quien Diablos Es Juliette?>에서도 단역으로 촐연하기도 해 영화와의 인연이 긴 화가이기도 하단다. 그의 그림엔 영화만큼이나 독특한 향내가 난다. 내가 아시는 어떤 분은 같이 영화를 보고 나와선느 그냥 편한 그림들을 쓱쓱 그리는데 잘 그리는 걸 보니 화간가봐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나는데, 정말이지 별로 어려운 것 같지 않는데 내가 그린다면 하면 깝깝한 걸 보면 화가라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정말이지 선택받은 재주인건 분명 한가 봅니다.

by kinolife 2006. 7. 12. 13:23
"Double portrait of Lucaian Freud and Frank Auerbach" 1964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오프닝에는 영화 속의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그림 두 점이 벽에 걸려 있다. (아래 그림과 연작 인듯 싶은데 정확하게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기에 둘 다 올렸다,) 그림속의 남자는 얼굴이 이그러져 있어서 누군지를 알 수가 없다. 영화 속에서 폴을 총으로 쏜 잔느는 그 남자가 누군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림 속의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져 알 수 없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 잔느의 대사와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Double portrait of Lucaian Freud and Frank Auerbach" 1964

Study for Portrait of Isabel Rawsthorne1964

물론 아래에 잔느를 연상시키는 듯한 그림에서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서보다는 잔느적인 느낌만이 남아 있는 그림이지만,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속의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Vacon)의 그림은 이 영화속의 주인공들에게 있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자아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의 주제처럼 혼돈스럽고 부정확한 인간의 관계를 잘 드러내 준다. 특히 각각 남자 여자의 그림은 개인의 혼돈을, 두 그림을 붙혀 두었을 때는 더더욱 정리되지 않은 혼돈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주인공들의 자아와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속의 피사물이 주는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by kinolife 2006. 7. 12. 13:16
영화 <미스터 빈 Mr-Bean>에는 빈이 어이없게 망쳐 버리는 그림이 한 장 있다. 영화 속에서는 손으로 짓이겨진 이 영화 속의 그림은 영화적 장면에 의해 그의 재치로 다시 소생한 듯 보이지만, 만약 영화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빈은 예술품을 망친 범죄자로 자책감에 휩싸여 감방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영화 속에서 미스터 빈에 의해 곤욕을 치르는 모델이 된 그림은 미국 출신의 화가 제임스 애보트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가 1872년 경에 그린 <화가의 어머니 Portrait of the Artist's Mother >라고 한다. 현재는 파리의 오르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군더더기 없는 구도와 깔끔한 색채가 단정함과 진득함을 전해 주는 담백한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by kinolife 2006. 7. 12. 13:12
영화 <텔 미 썸딩 Tell Me Something>에는 두 편의 그림을 찾아 볼 수 있다.

한 편은 15C의 화가 헤랄드 다비드(Herald David)가 그린 그림 [캄뷰세스 왕의 재판]과 또 다른 한 편은 셰익스피어의 소설 [햄릿]과 연관이 있는 존 에버릿 밀레이(J E.Millais)의 작품 [오필리어의 죽음]이다.

전작 [캄뷰세스 왕의 재판]의 경우는 재판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결단과 그림 속의 잔혹함이 영화 속의 주인공이 지닌 살기에 대한 느낌을 충분히 전달해 준다. 그다지 아름답고 완벽해 보이는 그녀가 왜 이렇게 피 비린내 나는 그림들을 좋아하는지....어떤면에서는 신비로운 느낌마저 전해준다. 영화속 주인공 채수연(심은하 분)이 자신만의 완벽한 남자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애인들의 몸을 조합해온 사실은 앞선 그림의 시각적 효과가 영화 속에 어떻게 반영 되었는지를 짐작 할 수 있게 하는 부분. 살아있는 사람의 생살을 찢고 피를 내는 심판은 영화 속에서는 시체 절단이라는 행위로 치환되어 이해 될 수 있겠다. 뒤 이은 작품 [오필리어의 죽음]의 경우는 세익스피어의 소설 [햄릿] 속의 오필리어가 사랑하는 오빠 햄릿이 선왕의 복수를 위해 발산하는 광기, 급기야 그녀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 절대 순수의 상징인 자신이 미쳐  물속에서 빠져 죽는 과정을 그린 그림이다. 특히 이 그림의 모델은 당시 뛰어난 프로의식을 가진 모델로 실제로 얼어붙은 강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물에 들어가 있음으로서 명작 탄생이 기꺼이 동조했으나 이후에는 병을 얻어 나이보다 쇠락해 일찍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그림이다. 이런 그림 속의 오필리어의 죽음은 순수를 위해 죽음으로 향하는 자아를 자신에게 맞는 타아를 찾아 죽음을 감행하는 여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는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살인을 저지르는 여자, 알고 보면 미친 여자인데...그 여자가 너무 매혹적이다 보니, 영화 속의 남자들이 빠져들듯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그녀와 그녀의 살인에 빠져든다. 역사 속의  전혀 다른 느낌의 두 그림이 영화 <텔미 썸딩>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치환, 소생했다고 도 볼 수도 있다.

by kinolife 2006. 4. 18. 09:03
|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