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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은출판사: 창작고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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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041)
- 바람 부는 날 -
바람 부는 날
바람이 빨래 펄럭이는 날
나는 걸레가 되고 싶다
비굴하지 않게 걸레가 되고 싶구나
우리나라 오욕과 오염
그 얼마냐고 묻지 않겠다.
오로지 걸레가 되어
단 한 군데라도 겸허하게 닦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감방 닦던 시절
그 시절 잊어버리지 말자
나는 걸레가 되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더러운 한평생 닦고 싶구나
닦은 뒤 더러운 걸레
몇번이라도
몇번이라도
못견디도록 행구어지고 싶구나
새로운 나라 새로운 걸레로 태어나고 싶구나
- 旗 -
아무리 어두울지라도
어둡다고 호소하지 맙시다
입 다물어 버리고
밤 하늘의 어둠 속으로
기를 올립시다
내일 북동한설에 휘날릴 깃발아래
우리는 서야 합니다.
휘날리는 것 없이
어찌 그것이 삶이겠습니까
어둡다고 호소하지 맙시다
우리는 꿋꿋하게 서야 합니다
단 하나로 휘날리는 깃발아래
우리는 우리끼리 서야 합니다
빈 백양나무들 언제까지나 서 있습니다.
어둠속으로
어둠속으로
우리도 묵묵히 서서 기를 올립시다
마침내 어둠까지도 커다란 깃발인 그 날을 위하여
우리에게 이 어둠이 얼마나 환희 입니까
- 너울 -
바람 하나 없다
나에게 너무 큰 적이여
너울이여
울지 못하는 짐승에게
울음을 주어라
쓰러지면 안된다
잎이란 죽음에 없다
날으는 새에게
집 없는 민중에게
집을 주어라
나라를 주어라
우리나라에는 지평선 대신
가는 곳 마다
수평선이 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수평선이 있어야 민중이 있다
지금 수평선에는
바람 하나 없다
크나큰 너울 뿐이다
온 세상에게 성난 여울이여
나는 너에게 가야 한다
나는 너에게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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