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작 : TBS
방영타이틀 : 목요극장
방 영 : 2007.07.05 - 2007.09.13

연 출 : 요시다 아키오(吉田秋生)
          카토 아라타(加藤新)
         모리 카즈히로(森一弘)

각 본 : 아라이 슈코(荒井修子) 
          와타나베 치호(渡辺千穂)
원 작 : 이가라시 타카히사(五十嵐貴久)

출 연 : 에스미 마키코(江角マキコ)
          노기와 요코(野際陽子)
          사와무라 잇키(沢村一樹)
          카타세 나나(片瀬那奈) 
          카네다 아키오(金田明夫)
          오오시마 요코(大島蓉子)
          이시이 토미코(石井トミコ)
          시라이시 미호(白石美帆)
          아오타 노리코(青田典子)
         시부키 준(柴吹淳)
         이토 리카(棟里佳)
         우지이에 메구미(氏家恵)
         사노 시로(佐野史郎)
         아사다 미요코(浅田美代子)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란 정말 개와 고양이의 관계와 같은 것일까? 이 드라마는 그 시어머니와 며느리
의 관계를 마주보는 집 사이를 두고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의 전통문화와 정신에 전문적이면서도 고집스런 지식과 의지가 있는 시어머니와  잘 나가는 체인초밥집을 운영하는 신세대 며느리와의 싸움 아닌 언쟁과 전쟁 아닌 다툼들이 드라마를 이어가는 가장 큰 이슈이다. 집안 대소사는 물론 며느리의 일과 연관된 사건들에도 이들의 전쟁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는데 때론 똑똑한 며느리와 역시 똑 부러지는 시어머니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성들 간의 새대를 뛰어넘는 지능게임을 보는 듯한 인상을 전해준다. 세대를 대표하는 주장들과 빠른 시대를 동시에 살아가는 고부간에 대한 일본식 전개는 조금 과장되어 있는 표현을 뺀다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돈을 잘 버는 뛰어난 경영인으로서의 며느리는 밖에서는 최고의 여성이지만, 시어머니의 눈으로 봤을 때는 조신하지 못하면서 자기 일
 
밖에 모르는 현대 여성에 불과하다. 대부분 이러한 경우엔 집에서 살림만 해온 시어머니가 뒷방마님으로 인식되어 기가 죽기 마련이지만, 이 드라마 속의 시어머니는 자신의 삶 자체에 대한 자부심으로 며느리에게 자신의 가정 속에서 하나의 가족으로서 자리 매김하길 바란다.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가정의 수행법으로 며느리에게 육체, 정신적으로 압박하지만, 며느리는 나름 꿋꿋하게 시어머니의 수행을 이겨내면서 시집살이와 함께 자신의 회사를 끌어간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9회 까지는 그러한 에피소드들의 묶음 이었으나, 10회 들어 며느리가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그 대립구조의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어머니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통해서 좁게는 한 집에 같이 시집온 사람들로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의 문화 속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에 메세지 던지는 것으로 전환된다. 물론 뜻밖에 뒷방에 눌러앉아 일본 전통문화를 즐기는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운영하는 초밥집을 뉴욕에 선공적으로 뿌리 내리는데 기여함으로 일본 전통의 한 힘을 보여준다는 건 드라마적인 구조 속의 에피소드라고 해도 일본문화에 대한 제작진의 의견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부분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드라마의 말미....전통을 우기다시피 하면서 꿋꿋하게 살아온 고집센 할머니의 피와 신세대의 강인한 자신감과 추진력을 가진 엄마의 피를 이어 받은 시어머니의 손녀, 며느리의 딸에 대한 언급은 꽤 신선한 대사였다. 결국 그렇게 다른 피를 가지고 같은 집에 들어와 둘의 피가 섞인 또 다른 생명체와 가족의 연을 맺는 다는 걸 통해 서로 남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 가족이 되어갈 수 밖에 없는 필연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살짝 진부하면서도 지겨운 맛이 있어서 후반부에서는 건너뛰며 보기의 신공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일본의 문화에 대한 엿보기를 통한 즐거움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즐겨움을 선사하는 듯 했다. 시어머니의 샤미센 연주와 요시다 형제, 며느리의 하와이안 댄스 격돌 중에서는 시어머니의 샤미센 연주가 더 당겨졌고,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눈속임 없이 정정당당하게 싸워내는 둘의 격전을 다양한 전투씬으로 담아 낸 타이틀 역시 드라마를 뛰어넘는 재미를 선사한다.

며느리와 시어머니...한 가정에서 시작되는 진부한 싸움...일본식 가족 드라마의 가장 손쉬운 소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by kinolife 2008. 10. 20. 01:51



제 작 : 후지TV
방 영 : 1999년 1월-3월
감 독 : 다케우치 히데로키(武內英樹)  
          나가야마 코조(永山耕三)
          하스미 에이이치로(羽住英一郎)
각 본 : 키타가와 에리코(北川悅吏子)  
음 악 : 타케베 사토시(武部聡志)

출 연 : 소리마치 타카시 (反町隆史),
          에스미 마키코(江角マキコ)
          키무라 요시노(木村佳乃
          카토 하루히코(加藤晴彦)
          이토 히아키(伊藤英明)
          니시다 나오미(西田尙美)
          이시다 유리코(石田ゆり子)  
          시이나 킷페이(椎名桔平)
                                                              
 주제곡: そのスピ-ドで (소노 스피도데) - The Brilliant Green  

부모님이 안 계신 집에 누나의 친구들과 함께 사는 사진작가 소이치로, 그리고 그 누나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어찌보면 이 드라마의 틀은 진부하기 그지 없다. 물론 끝도 없이 쏟아내는 연애에 대한 담론들은 결코 신선하지 않은..하지만 그냥 또 지나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드라마. 내 기억이 정확이 맞다면 SBS에서 채림, 최윤영, 이의정에다 최근에 크게 뜬 권상우를 엮어 만들어 냈던 드라마 <지금은 연애중>은 이 드라마들 배낀 것이 틀림 없어 보인다. 물론 1회, 2회를 보면 딱 떠오르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각 캐릭터들의 조금은 다른 듯 보이지만 같은 포지션이나 조금 변화됐지만 다를 것 없는 극중 인물들의 성격이나 직업 등이 그런 의혹을 버릴 수 없게 한다. 각 드라마가 방영된 시기(각각 1999년, 2000년)를 보아도 작가가 보고서 배끼기(참고가 아니가 배낀다는 과격한 단어를 쓴데는 그 만큼 차용한 정도고 심하기 때문이다.)에 적당한 딱 좋은 텀이 있으니 더더욱 심증을 확실케 한다.


이 드라마는 내가 수 많이 모아온 일본 드라마 중에서 솔직히 처음으로 본 일본 드라마이다. 구한지가 3년이 넘어서야, 그리고 보다 끊다를 5=6번을 반복하며 2년만에 다 본...남들이 들으면 그렇게 볼려면 보지 마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한꺼번에 혹은 단 시간에 다 보아내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다 보고 난 지금은 오랫동안 미뤄온 숙제를 끝낸 듯, 가뿐하고 기분도 좋다. 궂이 그 이유가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것 보단, 20대 후반의 여자들의 연애담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예전에 들아왔던 못난이 공주 이갸기로 풀어온 것도 좋고, 욕심없고 솔직히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주인공들의 연애의 자세(?)에도 꽤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주인공인 나츠키와 소이치로는 친구의 동생, 누나의 친구이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각별한 사이이다. 특히 그들의 관계가 가장 빛날 때는 서로의 연애담에 대한 상담이 이루어지는 시간, 서로가 남녀로 보지 않는다는 상호전제 아래에서 이들의 대화는 진지하면서도 따뜻하고,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일면 솔직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더욱 더 사람의 마음을 파고 드는 것은 느닷없이 들리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상황을 함께 인지해주는 사람이라면 이 둘에게서 사건이 생기고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별 뉘앙스를 남기지 않는 시시콜콜한 연애담에 머물지도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는 자뭇 소소한 재미를 던져주는 캐릭터와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이 주는 유쾌함으로 단순한 이야기의 지루함을 깨고, 이러한 드라마들이 가지고 있는 그 빤한 오점을 털어낸다. 그 외에도 고민 썪인 대화와 역시 사랑의 몫을 보는 이들에게 돌려주는 영리함을 보여주면서 긴 여운까지 남겨 준다.

그걸 이뤄내기 위한 방법이란 누구나 바라는 연애의 성공 짝대기를 보는 이들이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결론 내리며,  그 결론의 이유로 '뒷모습'이라는 화두와 연애의 성격은 연애를 하는 당사자들의 성격을 따라간다는 연애의 숨은 법칙을 깨지 않으면서 사랑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영리함이다. 주인공 소이치로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과묵한 남자. 역시 사랑을 쟁취하는 것에서는 한 발짝 물러 서 있다. 이런 반면 나츠키는 솔직하면서도 나름대로의 당당함을 지니고 있지만, 역시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서는 바라는 것 만큼의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다는 점에서 활달한 성격과는 달리 전형적인 여성의(연애라는 관점에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결코 여우가 될 수 없는 나약한 여자의 전형이라 볼 수 있겠다. 역시 연애라는 관점에서... 이들 사이에 아니 이들의 사이가 생기기 이전에 있었던 나츠키의 또 다른 남자 쿠가는 이혼을 한, 그래서 사랑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지만 솔직하면서도 너그러운 성격의 기대기 좋은 남자. 말 그대로 마음에서 울리는 사랑의 짝대기는 소이치로와 나츠키겠지만, 현실적인 사랑의 짝대기는 쿠가와 나츠키, 우리 나라 드라마가 전자를 이뤄냈다면 이 드라마는 작가의 본 의도대로 후자의 사랑으로 매듭짓는다.

이유는 역시 상대방에 대한 마음, 그리고 드라마의 제목 "Over Time"을 보는 관점이리라. 사랑을 이루어진다 또는 이루어낸다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Over Time"이란 다 끝났음=상대방을 얻는다는 점에서의 성취를 의미하겠지만 그것에 안주하지 않는다면 "Over Time"은 연장전이라는 또 다른 관계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사 "똑같은 것이라도 보는 위치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는 말처름 사랑 역시도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고, 사랑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의 마음의 기준에 따라 다르지 않겠나, 역시 사랑은 영원보다는 찰나에 가깝고, 변하기도 잘 변하고, 변덕스럽기 까지 하다.

연애의 대상이란 앞에서 손을 내어 끌어주는 사람과 뒤에서 항상 지켜봐 주는 사람..어쩌면 연애에는 이 두 사람이 꼭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속의 나츠키 처럼 뒤에서 봐주는 사람과의 연애는 불안하면서도 끌리지만, 내가 또 언젠가 실연을 했을 때 티슈를 통째로가 아니라 뽑아다 줄 수 있는 배려깊은 사람을 잃기 싫기 때문이라고...사랑은 사랑대로 가지고 싶지만 그런 배려깊은 소중한 사람을 친구라는 이름으로 붙들어 매놓고 싶은 마음 역시 어쩔 수 없다. 역시 사람에 대한 욕심은 사랑보다 앞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연장전-Over Time-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걸 버린 사람에게는 그것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드라마 속 명대사-

"뭐랄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기적이야. 그런 기적이니까 하나님이 '연애'라는 멋진 이름을 지어준거잖아"

"한번 준 마음은 회수할 수 없는 것"

"난장판에 형편 없어도 혼자서 머리 싸매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잖아. 애교를 부리든 화를 내든 싸움을 해도 괜찮아. 아니면 뭐하러 이 세상에 이렇게 여기저기 사람들이 많겠어. 친구도 있고, 애인도 있고, 동반자도 있고, 그러니까 하나님은 오직 혼자만 살라고 놓아 두진 않았잖아. 우리들을"

"똑같은 것이라도 보는 위치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

"뒷모습이 좋은 건...봐 주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 때문......"


by kinolife 2006. 7. 1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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