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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 Armisén Cold on the outsid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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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7. 12. 13:23 All That Movie/Art, Shop

영화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에서 주인공인 핀 벨(에단 호크 분)이 커서 어릴적 꿈이었던 화가로서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벨의 그림은 벨의 성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중요한 도구이면서도 그의 성장과 함께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상징이기도 하다. 어릴적 부터 성장기까지 보여지는 영화 속의 이 그림들은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프랜시스코 클레멘트( Francesco Clemente)의 그림들이라고 한다. 그는 이 영화 이외에도 영화 <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에서는 최면술사로, 또 다른 멕시코 영화 <도대체 훌리엣이 누구야? Quien Diablos Es Juliette?>에서도 단역으로 촐연하기도 해 영화와의 인연이 긴 화가이기도 하단다. 그의 그림엔 영화만큼이나 독특한 향내가 난다. 내가 아시는 어떤 분은 같이 영화를 보고 나와선느 그냥 편한 그림들을 쓱쓱 그리는데 잘 그리는 걸 보니 화간가봐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나는데, 정말이지 별로 어려운 것 같지 않는데 내가 그린다면 하면 깝깝한 걸 보면 화가라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정말이지 선택받은 재주인건 분명 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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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7. 12. 13:16 All That Movie/Art, Shop
"Double portrait of Lucaian Freud and Frank Auerbach" 1964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오프닝에는 영화 속의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그림 두 점이 벽에 걸려 있다. (아래 그림과 연작 인듯 싶은데 정확하게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기에 둘 다 올렸다,) 그림속의 남자는 얼굴이 이그러져 있어서 누군지를 알 수가 없다. 영화 속에서 폴을 총으로 쏜 잔느는 그 남자가 누군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림 속의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져 알 수 없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 잔느의 대사와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Double portrait of Lucaian Freud and Frank Auerbach" 1964

Study for Portrait of Isabel Rawsthorne1964

물론 아래에 잔느를 연상시키는 듯한 그림에서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서보다는 잔느적인 느낌만이 남아 있는 그림이지만,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속의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Vacon)의 그림은 이 영화속의 주인공들에게 있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자아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의 주제처럼 혼돈스럽고 부정확한 인간의 관계를 잘 드러내 준다. 특히 각각 남자 여자의 그림은 개인의 혼돈을, 두 그림을 붙혀 두었을 때는 더더욱 정리되지 않은 혼돈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주인공들의 자아와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속의 피사물이 주는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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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7. 12. 13:12 All That Movie/Art, Shop
영화 <미스터 빈 Mr-Bean>에는 빈이 어이없게 망쳐 버리는 그림이 한 장 있다. 영화 속에서는 손으로 짓이겨진 이 영화 속의 그림은 영화적 장면에 의해 그의 재치로 다시 소생한 듯 보이지만, 만약 영화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빈은 예술품을 망친 범죄자로 자책감에 휩싸여 감방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영화 속에서 미스터 빈에 의해 곤욕을 치르는 모델이 된 그림은 미국 출신의 화가 제임스 애보트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가 1872년 경에 그린 <화가의 어머니 Portrait of the Artist's Mother >라고 한다. 현재는 파리의 오르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군더더기 없는 구도와 깔끔한 색채가 단정함과 진득함을 전해 주는 담백한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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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4. 18. 13:02 All That Movie/고거 & 이거
소설
글:와타나베 준이치(渡邊淳一)
니혼게이자이신문 조간에 1995년 9월부터 다음 해 10월까지 연재
출판년도:1995년
영화
감독: 모리타 요시미츠(森田芳光)
주연 : 야쿠쇼 코지(役所廣司)
         구로키 히토미(黑木瞳)
제작년도:1997년


1997년 또는 98년인가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일본 영화들을 복사 테이프로 보곤 하던 때 모리따 요시미츠의 영화 <실낙원>은 꽤 깊은 인상을 남겨 줬었다. 일단 야하다는 소문과는 달리 가릴부분은 잘 가리면서 사실적으로 성묘사를 표현했던 감독이 연출이 고급스러웠다는 기억이 제일 먼저 난다. 그 당시엔 야하기도 참 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최근 들어 다시 봤더니 야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위의 장면은 없었다. 역시 시간은 심장을 무디게 하고 눈을 어둡게 하는 걸일까? 물론 5-6년의 시간 동안 더 외설적인 문화들을 접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두 번에 5년 동안 두 번에 걸쳐 영화를 보고 작년에 헌책방에서 구한 책으로 번역된 소설까지 읽고 나서 이 작품 '실낙원'은 영화는 범작 이상, 소설은 수작이하라는 애매한 성적표가 매겨진다. 소설과 영화 모두 문학적으로, 영화적으로 각각의 가치가 있겠지만, 역시 영화는 스토리에 강하고 소설은 주인공의 심리 묘사에 강하다는 느낌이다.

먼저 영화는 두 남녀 주인공이 만나게 되고 사랑이 생기게 되고 나아가서 서로의 성감을 느끼면서 서로의 육체에 빠져들면서 깊어지는 관계에 대한 묘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이들의 사랑은 그 시작이 각자 결혼 이후의 상태임을 생각할 때, 관계를 가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가졌느냐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관계를 가지는 장소나 상황에 대한 묘사가 깊어지는 관계와 성 행위에 대한 수위를 짐작케 하는 형식으로 보여지게 된다. 이와 함께 이러한 이들의 변화에 대한 주변 인물들과의 마찰 혹은 행동이 이 둘에게 끼치는 영향성에 대한 문제들이다. 깊어지는 관계 만큼이나 그들의 생활은 자연스럽게 변화했고, 그러한 변화들은 관계의 정점에 있는 이 둘에게 끝이 보이는 터널 속으로 밀어넣게 한다.

영화가 두 인물의 성 묘사에 날카로운 카메라를 속삭인다면 소설은 주인공들의 내면 세계 그 중에서도 여자 주인공의 심리 변화, 또 그에 따르는 남자 주인공의 해석들이 이들의 관계변화를 자연스럽게 이해 할 수 있게 한다. 특히 글 중간 중간에 보여지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규정짓는 듯한 내용, 이른바, 남자는 여자를 즐겁게 해 주었을 때 가치는 얻는 다는 점에서 사랑에 있어서의 승리자 혹은 주된 권한은 여자가 가지고 있다는 작가의 해설은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보여지는 교미기의 동물의 자태와 인간의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남녀의 관계 속에 숨겨진 원초적인 원리는 그러한 시스템에 있음을 수 많은 독백에 의해 반복,주시한다. 역시 사랑의 의미에서 외부적인 힘과는 달리 '성행위'에서의 우위에 대해서는 철저히 여성에게 무게를 주는 작가의 시선을 지극히 세심하면서도 감정적이지만, 적지 않은 신선함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많은 성묘사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박하지 않으며 또 가볍지도 않게 한다. 남녀의 관계 그 중에서도 성에 대해 궁금해 함에도 이 소설 속에서의 성은 진지한 궁극에 다달아 있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진정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남녀의 짙고 짙은 패륜을 다루고 있음에도 쉽게 3류 소설로 치부할 수 없게 한다.  

역시 이 작품에 있어서 소설은 각 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초점을...그리고 영화는 그들의 행위를 통한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데 있어 각각의 묘미가 영화는 영화대로 원작 소설은 원작 소설대로 살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전해주는 부분에 있어서는 역시 소설이 더 섬세하지만, 머리 속을 채우는 몇몇의 영화장면들은 책을 접했을 때의 사실성이나 자세함 만큼이나 강렬하게 남아 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지는 시체 검술 보고서는 소설의 설명보다 더 강렬한 문학적 효과를 영화 속에서 전해 준다는 점에서 수작인 원작 소설을 영화로 옮겨진 작품 역시도 원작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감독의 역량이 적당한 선에서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실낙원>이라는 작품은 사랑과 육체의 의미를 이만큼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천박하지 않다는 점에서 책과 영화 모두를 권해도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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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4. 18. 09:03 All That Movie/Art, Shop
영화 <텔 미 썸딩 Tell Me Something>에는 두 편의 그림을 찾아 볼 수 있다.

한 편은 15C의 화가 헤랄드 다비드(Herald David)가 그린 그림 [캄뷰세스 왕의 재판]과 또 다른 한 편은 셰익스피어의 소설 [햄릿]과 연관이 있는 존 에버릿 밀레이(J E.Millais)의 작품 [오필리어의 죽음]이다.

전작 [캄뷰세스 왕의 재판]의 경우는 재판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결단과 그림 속의 잔혹함이 영화 속의 주인공이 지닌 살기에 대한 느낌을 충분히 전달해 준다. 그다지 아름답고 완벽해 보이는 그녀가 왜 이렇게 피 비린내 나는 그림들을 좋아하는지....어떤면에서는 신비로운 느낌마저 전해준다. 영화속 주인공 채수연(심은하 분)이 자신만의 완벽한 남자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애인들의 몸을 조합해온 사실은 앞선 그림의 시각적 효과가 영화 속에 어떻게 반영 되었는지를 짐작 할 수 있게 하는 부분. 살아있는 사람의 생살을 찢고 피를 내는 심판은 영화 속에서는 시체 절단이라는 행위로 치환되어 이해 될 수 있겠다. 뒤 이은 작품 [오필리어의 죽음]의 경우는 세익스피어의 소설 [햄릿] 속의 오필리어가 사랑하는 오빠 햄릿이 선왕의 복수를 위해 발산하는 광기, 급기야 그녀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 절대 순수의 상징인 자신이 미쳐  물속에서 빠져 죽는 과정을 그린 그림이다. 특히 이 그림의 모델은 당시 뛰어난 프로의식을 가진 모델로 실제로 얼어붙은 강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물에 들어가 있음으로서 명작 탄생이 기꺼이 동조했으나 이후에는 병을 얻어 나이보다 쇠락해 일찍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그림이다. 이런 그림 속의 오필리어의 죽음은 순수를 위해 죽음으로 향하는 자아를 자신에게 맞는 타아를 찾아 죽음을 감행하는 여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는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살인을 저지르는 여자, 알고 보면 미친 여자인데...그 여자가 너무 매혹적이다 보니, 영화 속의 남자들이 빠져들듯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그녀와 그녀의 살인에 빠져든다. 역사 속의  전혀 다른 느낌의 두 그림이 영화 <텔미 썸딩>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치환, 소생했다고 도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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