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전을 다녀온지 벌써 2주가 훌쩍 지나버렸나.. 더 되었나..요즘은 하도 정신없이 살다보니 삶에 대한 감각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약속을 오후 2시로 하다보니 시간이 별로 없어서 같이 간 친구랑 허둥지둥대가 막판에 왜 이 출판사를 지금에서야 봤지 이러면서 질러버리고 머 막 계획없이 구매하고 그런 중에서도 나름 만족하고 그랬던 것 같다. 책은 사고 싶은 것이 많은데....읽을 시간이 없다. 아이들 뒤 꽁무니 쫒아다니다 보면 이내 하루가 가 버린다.  책만 보면 혹은 사고 싶은 책이 떠 오르거나 리스트 정리하다가 욕구가 치밀어 오르면 역시 아직은 내 시간이 적네...라고 하는 현실에 부딪혀 곧 실망해 버리고 만다. 디카로 사진도 좀 찍고.이래저래 돌아다니기도 하고 머 그러고 싶은데 아직은 정말이지 그림의 떡!....이 책들은 언제 읽을 수 있을 꼬.....환갑 전에는 읽고 싶은데...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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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life 2010. 5. 28. 21:53
청도 운문사의 눈밭에서 정언이랑 내가 함께 발자국을 찍었다. 걷지도 못하는 놈이 이젠 엄마와 발 크기를 잴 정도로 훌쩍 커 나가고 있다. 이 발이 얼마나 더 커져서 엄마를 뛰어 넘을지 내내 궁금하다. 그걸 알까..나의 딸들은.....아빠에게 부탁해서 찍은 이 작은 사진에서 자식을 키우는 부족한 엄마의 여러가지 마음들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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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life 2010. 2. 2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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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대구 시댁에 조금 일찍 내려가고 조금 늦게 올라왔다. 대부분 설이 짧아서 내려가고 올라오기 바빴다지만, 우린 명절마다 가능하면 휴가를 붙여서 5-8일 정도 보내고 온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시댁 친정 모두 대구라 멀리 떨어져 있고, 남편과 나 모두 운전면허가 없어서 어디를 이동해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든 일이다. 어른들과 떨어져 살고 있으니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보낼 시간도 적고 해서 가능하면 이렇게 명절+휴가를 이용해 친적들과 이야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그런 시간을 가질려고 노력 한다. 시댁이야 마음이나 몸이 완전히 편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시어머니가 무척 너그러우셔서 일하고 아이 키우는 며느리에게 스트레스 없이 지내도록 한없이 배려하신다. 몸도 불편하시지만, 어이구 어이구 하시면서도 즐겁게 넘기시려고 하는 모습은 천정 못지 않게 편안한 휴가를 안기는 편이다. 이번 설에도 제사 준비나 나름 몸이 힘이 드는 건 있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아이들을 보면..아 사람사는 일부분을 이렇게라도 느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내내 가졌다. 아이들에게 가족들과 부대끼는 이런 시간들이 얼마나 필요한지 궂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만 사실 대구 갔다 올라오면 아이들이 훌쩍 컸다는 걸 다시 느끼는데 이번엔 작은 넘을 보고 또 다시 느꼈다. 이번에도 조금 일찍 내려간 덕에 작은 어머님이 사주시는 중국요리를 먹을 수 있었는데, 요리도 요리지만 무엇보다도 왜관 촌의 중국집 마당에서 키우는 얌전하고 참한 개 한마리가 우리 가족과 아이들에게 즐겨운 시간을 주었다.

예전에 "큰넘은 엄마 우리 개 키우면 안돼?"라고 물었었고,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건 우리만 즐겁자는 이기적인 행동이고...개 역시 마당이 있는 집에서 크는 것이 개에게 좋다고 불가 입장을 밝힌바 있다. 큰 딸은 꼭 개랑 고양이를 한 마리씩 키우고 싶어한다. 작은 넘도 이제 18개월을 넘어가니 2돌을 향해가고 이번 설에 보니 꽤 컸다는 걸 개랑 함께 놀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역시 둘째도 개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 보이고, 꼭 그런 이유는 아니라 할지라도 정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있는데...그건 내가 살던 어릴적 집의 모습과 많이 오버랩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이면에 엄마의 과도한 노동이 있었음을 알면서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아이가 유아기에 살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자주 가진다. 두 딸에게 자연과 함께 노동을 즐기면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종종 이럴 때면 든다. 동물들을 좋아해서 정이 많은 우리 딸들...이럴 땐 엄마 아빠의 욕심을 이겨낼 수 있는 부지런함 증가 알약이라도 먹고 싶단다......
by kinolife 2010. 2. 1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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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을 보내며...

2009년은 자식 낳고 키우는 걱정을 몰아서 하느라 스트레스 많이 받았던 해 인것 같다. 이건 살아가면서 계속 고민이 될 문제지만 2009년을 보내면서 년말...사실 지난주..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죽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물론 해가 바뀌면서 86살이 되신 할머니의 미래도 확답지을 수 없지만, 65년 가까이 함께 였다가 하나를 먼저 보낸 늙은 할미에겐 어떤 생각들이 남아 있을지... 장례식장에선 의연하다 못해 초연한 할머니.그니의 딸인 나의 고모들과 다눈 아들에 대한 수다를 기억하면 우리 할미 여전히 꼬장꼬장하구나...다시 생각한다. 1923년생..일제시대에서 태어나서, 3.1절과 3.25를 거친..말 그대로 현대사의 한줄을 이어온 우리 할아버지는 그냥 불쌍한 생각만 든다. 순하디 순해서 먼저 돌아가신 형님을 대신해서 군대도 2번이나 갔다 왔다고 들었고, 나름 카리스마 넘치는 할머니 덕에 자기 이야기 한번 못해보고 순하디 순한 할베였다. 그리고 보니 살아 생전 할아버지라고 깍듯이 불러보기 보단 할배 할배 이렇게 냅다 부른게 다였던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다. 돌아가시기 전엔 내가 누구인지도 몰라봤지만, 노환의 그늘에 숨죽인 엄마의 노동도 참 보아주기 쉽진 않았다. 살아간다는 것 혹은 살아남아서 계속 존재해야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잠시 들었다. 허무하다고 하기엔 너무 당연한 인간의 역사... 그냥 살았을 때 보다 행복하자. 그게 이기는 것이다(그 누구에게도 이길 방법은 이 길 밖에 없다.). 다시 한번 생각한다.

자식을 위한 걱정도 자식 배움에 대한 질투나 고민도 이젠 조금 뒤로 할까 싶다. 고민한다고 공부 할 놈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니 운명이겠거니. 그 운명에 엄마가 좋은 길잡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 뿐 뾰족이 방안이 서질 않는다. 그냥 함께 해보자..엄마는 이젠 늙어가지만, 너는 앞으로 피워질 나의 꽃이 아니냐!

2009년 이사를 하고 나서 야심차게 거실에 꾸민 LP랙...집에 LP가 약 2천여장 있으니...결혼 하고 우리 부부는 서재가 아니라 우린 음반들을 결혼시켰네. 그 중에서 방 구석에 처 박혀서 잘 듣지 않던 LP를 2010년 들어서 집 위치를 조금 바꾸고 조금씩 듣기 시작한다. 아빠도 아이들도 정서적으로 보다 따뜻해지기를 바라면서... 아빠가 노가다 해서 힘들게 사 모은 수입 LP들 엄마가 뒤 늦게 음악듣기 시작하면서 동네 오빠들이 구해준 귀하디 귀한 라이센스들 등등 해서 추억이 가득한 엄마, 아빠의 청년시절의 추억을 거실 벽에 달았다. LP렉의 가격을 알면 기절 일보 직전이니 공개하지 않고...작년의 거실 모습이다. 2009년엔 훌륭한 일러스트 앨범들이 거실벽을 차지했찌만, 2010년에는 아티스트의 얼굴이 크게 그려진 자켓들로 한번 꾸며 볼까나.... 아빠, 아이들아...우리 음악을 보다 많이  듣는 새해가 되도록 해봐요!! 우리 가족 그리고 모두 모두 Happy New Year !!  아 벌써 새해는 아니고 당면한 해가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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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life 2010. 1. 4. 05:02
음 내가 살이 많이 쪘구나. 아이 둘을 낳으면서 각각 4kg 그램씩 8키로그램이 전혀 빠지고 있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이런 이렇게 내 뒷모습을 사진으로 다시 보니...그야말로 충격...영락없는 40대 아줌마의 뒤태였다. 아 나의 뒤태여...머 아가씨 떄도 그다지 태가 아름답진 않았으나 이렇게 잔인한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결혼 5년 이후 별 생각없이 여행 사진첩 속의 이 한장의 사진은 "당신의 뒷모습을 보니 당신이 얼마나 비 환경적인 동물인지 알 것 같소!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추석 지나고 나면 진정 .....몸을 좀 돌보아야 할 것인가...이거 인생의 끓이지 않을 딜레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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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life 2009. 9. 30. 22:53
"곧 양초가 작아질거예요. 굵은 걸로..."
"오늘은 아주 우울한 날이란다. 엄마 나이가 더 많아지는 날이거든..."

이게 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가족들의 변이다. 나원 참...그려 그려 나 나이 많지요...나이 어린 신랑이랑 사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지만..꽤 많은 범사 속의 이런 감사도 이런 멘트 앞에서는 울컥 한다. 꽤 많이 나이드는 것에 담담해 하는 편인데..문뜩 진짜 나이가 많아지는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세]를 읽은지 얼마 안된거 같은데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 셈이니까...이젠 좀 두렵기도하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보니 이남희씨의 [사십세]라는 소설이 호응을 해 주는 것 같다.

이제 2년만 있으면 마흔..서른이 되는걸 기뻐했던 것과는 달리 40대는 좀 낯설게 다가온다. 지금도 30대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앞으로 남은 2년은 정말 귀한 시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한 동안 잊어버리고 살았거나 조금은 무시했던 나의 생일에 축하를..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그럼에도 꽤 많이 남기도 한 나의 30대에게 환호를 보내주고 싶다. 가는거야..Go Go ~ Move M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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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life 2009. 9. 20. 03:21
토요일 아침이면 늦잠을 자지요...주중에 피곤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막 이사를 해서 실제 저의 생활 리듬이 꽤 깨어져 벼려서 나사가 풀린 주말을 즐기기 때문인 요즘이라 그랬답니다. 잠이 든 것도 꺤 것도 아닌 비몽사몽간의 저를 깨운 도련님의...목소리는 '노무현 자살'이었습니다. 내 인생 최고로 황당한 아침이었습니다. 이제 사흘 째 인데도 순수한 그 분의 얼굴이나 이야기나 뉴스를 보면 계속 눈물이 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나만 그런건지...인터넷을 보고 뉴스를 보니 그런 마음인건 저 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제가 92 학번이니 80년대 학번의 선배님들이 독재나 반민주를 외치면서 학교를 비우고 경찰서와 교도소를 드나들던 전투기를 어느 정도 지난  민주화 운동의 막바지 학번이지요. 신입생 때 등록금 투쟁을 한다는 곳에 자리를 꽤 차고 앉아 있던 것이 학생 운동의 조그만 기억입니다 .전교조 세대라 중학교 고등학교 때 기존 사회에 대 들던 기억마니 희미하게 남아 있는 난 정말 평범함 사람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내 인생을 두루두루 돌아보게 한다는 건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큰데 그 큰 충격과 슬픔이 꽤 오랫동안 제 인생을 지배할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원망하거나 현재의 정부를 욕하는 건 정말이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죄인에게 죄인이라고 말하거나 파렴치한에게 파렴치하다고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듯이 잔인한 정부에 장인하다고 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고...그냥 언급 조차 하기 싫어집니다. 재임 기간 동안에도 참여정부가 정치 잘 한다고 생각해 온  생각이 시대와 역사가 제대로 평가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괴롬힘이 없었다면.... 평범한 한국의 촌부처럼 늙어갈 것을...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살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당했을까요? 가족들과 극장에 가고 소풍을 가고 싶어했던 어느 한 남자가 이미 대통령이 되어 버린걸 말입니다. 카메라의 감옥 안에 갇힌 것을 말이지요.. 평생 언론과 검찰과 싸워 온 사람은 대통령이 되고서도 그들보다 힘이 더 있었을까요? 재임 5년 동안에도 그러질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겨우 상고 나온 주제에...라는 데서 시작된 대통령에 대한 멸시는 정말 참기 어려운 모멸이었습니다. 지켜보는 국민이 봐도 그렇구요..조 중 동으로 대표되는 재벌언론은 언론을 상품화 해서 파는 공장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언론은 아니지요. 평생 거대한 두 힘과 싸워 온 대통령이 그들과의 승부에서 마지막으로 던진 것이 목숨이라는 건 살아남은 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힘없는 이들에 대해 가장 잔인한 사회 돈 없는 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사회가 바로 내가 사는 이 땅이라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지 모릅니다.

재임 기간동안에도 내내 칭찬보다 욕을 더 많이 먹을 수 밖에 없었던 건 대통령이 되어서도 언론과 싸웠기 때문이고 언론은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욕할거리만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그럴 밖에... 힘 있는 이들에게 넙죽 엎드림으로 해서 자신도 힘을 가지게 되는 이 말도 안되는 태생적 이율배반...이란 심히 한국 언론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운명이고..싸울 수가 있을까.. 그냥 외면하게 됩니다. 생각만 해도 힘이 쑥 빠지지요. 그저 답답하고 한숨만 나옵니다.  같은 사건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잘잘못 이전에 흠집만이 공개되니 알려진 허물 안의 잘한 점을 너무 몰랐던 것 같아요.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써 둔 글이 있어서 한번 적어봤는데..저도 놀랐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이 지은 죄
1. 기득권 세력과 결탁을 거부한 죄
2. 언론과 결탁을 거부한 죄
3. 평균물가 성장률을 고작 3.0%로 막은 죄
4. 국민소득 2만불을 돌파시킨 죄
5. 경제규모를 1조 달러를 넘긴 죄
6. 주가를 2000 P 돌파하게 만든 죄
7. 수출 3천억불을 돌파한 죄
8. 참여정부 평균 물가 성장률이 OECD 회원국간 3위에 머문 죄
9. 2007년 4/4 분기 성장률이 OECD 1등한 죄
10. 외환을 2600 억 달러나 모아놓은 죄
11 부도업체수를 3925개나 만든 죄( 김영삼-12701개, 김대중-9152개)
12. 국가 정보화 순위를 3위로 만든 죄
13. 국가 신용 등급을 A+로 만든 죄(FITCH)
14. 남북인 왕래를 232886명이나 하게 한 죄(김영삼-1733명, 김대중-39583명)
15. 청와대가 당장악을 하지 않은 죄
16. 감히 부동산 값을 잡으려한 죄
17. 검찰, 경찰을 정원의 시녀로 삼지 아니한 죄
18. 감히 친일파 청산을 시도한 죄
19. 금권 선거를 단절시킨 죄
20. 복지 예산을 늘린 죄
21. 국방예산을 늘린 죄
22. 단기 부양을 하지 않은 죄
23. 암환자 건장 보험 보장률을 70.1%에 이르게 한 죄
24. 문화 기반 시설을 1609개까지 늘린 죄(김영삼-705개, 김대중-1100개)
25. 국가 균형 발전을 시도한 죄
26. 대한민국 국민을 너무나도 사랑한 죄.

다 읽다 보니 너무 눈물이 났어요.. 많이 좋아했는데 정말 너무 무관심하게 모르고 살았구나 싶어서..그리고 외롭게 자신의 고향에 육신을 던져버린 한 인간에 대한 나의 마음이 너무 아픈걸 알고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더 많이 그를 좋아 했었던 것 같았습니다. 마치 연애하던 애인의 암선고처럼 가슴이 철렁한 걸 확인하고는 이상한 자책이 하루종일 나를 누르는 걸 확인 했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이렇게 자신보다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으로 정치를 하는 정치인을 만날 수 있을까요? 바르지 못한 권력자에게 오기로 꼿꼿할 수 있는 정치인을 만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걸 걸고 자신을 던질 정치인을 만날 수 있을까요?  쉽게 대답을 못 하는 저를 보고 또 다시 눈물이 납니다.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써 기억하고 싶어서 아무런 계획없이 두서없이 쓰고 안타까운 사진 두 장만 올려봅니다. 고인의 명복을..그리고 사는 동안 잊지 않겠다는 다짐만이 머리를 뒤 흔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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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서울역 분향소에서_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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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life 2009. 5. 2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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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다닐 때, 흔하게 있는 술자리에서 나온 대화 중 하나가 언뜻 떠올랐다. 시간을 거스르니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는 이야기가 되고 있었지만, 이 주제는 인간관계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습성 변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주제는 흔하게 있는 이런 술자리에서 내가 싫어하는 인간이 오는 술자리에 가느냐 안 가느냐...라는 것..

그러니까 과의 많은 동기 선배들이 모이는 자리에 내가 싫어하는 그 인간이 오면 참석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것이었는데...20년 전의 나는 머 어때..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잖아..전혀 게의치 않고 참석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인간이 나의 인간 카테고리 안에 끼는 게 치를 떨게 싫다는 걸 너무 쉽게 느낀다. 때론 병적이지 않나 라고 느낄 만큼 싫은데....문제는 그런 인간들이 조금씩 늘어간다는 게 때론 너무 슬픔을 준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아주 작은 실수와 무관심에서 시작이 되어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인간으로 추락하고 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케이스 1)은 말 잘 든는 후배였는데(상경해서 공부하는 후배를 친동생처럼 집에서 보살필 정도)... 후배의 작은 실수는 나에 대한 기만으로 받아들여져서  이름을 듣거나 얼굴을 쳐다 보면 화가 치 솟는다.  주변의 사람들은 나의 까탈스런 성격을 언급했는데...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단호하고 강한 나의 모습을 내가 발견한 것인지도 몰랐다.  잘못은 저질러 졌다. 문제는 용서를 위한 태도....문제는 그게 없었다는 것이었고..소소한 것이라고 생각한 그 태도를 용납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 후배의 태도에 상당히 불만 스러웠고..시간이 지나자 분노는 가라않지 않고 조소나 무관심으로 변질 되는 걸 확인 하게 됐다. 연을 끊은지 2년 정도가 지나 애기 돌잔치에 나타난 후배 얼굴에 물이라도 붓고 싶은 분노를 다시 느꼈는데, 그 분노는 그 후배에게 소식을 알린 사람 모두에게 비난을 화살을 쏘면서 다시 한번 내 성격을 드러내기에 다다랐다. 내 성격을 알면서 그러다니..라는 의미였는데...병적이다라고 해도 용서나 화해는 흐지부지 하는게 아니라는게 내 생각이다. 감정적으로도 그런 우유부단함이 용서되지 않는다.

케이스 2)는 너무나 많이 친하고 좋아했던 남자 친구이자 동료...같이 회사를 다니면서 시들해진 감정이 무슨 특별한 이유없이 멀어지게 된 케이스였는데...우리 부부 그들 부부 두루두루 친분이 있었는데..지금은 완전히 소원해 져 소식 변통을 서로가 하지 않는다. 첫 아이를 출산하면서 벌어진 회사 내 조직 개편을 끼고 이상한 몇몇 소문에 휩싸이면서 쌓인 오해가 풀리지 않고 추측과 오해로 남더니 어색함과 서먹함으로 이어져 결국은 애틋한 무관심으로 남아 버렸다. 서로에게 해명없이 이어진 불편한 시간들이 오래 되면서 머쓱한 관계가 되고 말았다.
회사 라는 공간 안에서는 친분의 색깔과 그것을 벗어난 친분 관계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꽤 고민하게 한 부분인데..결국은 안 보고 사는게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 참 좋은 자식이었는데...라는 과거 감정을 뛰어 넘은 케이스 인거 같다. 그 녀석이 나를 좋아한 게 어느 정도 였는지 모르겠는데....난 꽤 좋아했었기에 그 허전함이 컸고, 섭섭함이나 화가 꽤 표현없이 쌓였던 것 같다.

이 둘의 경우를 보면 용서와 화해에 실패해서 둘이라는 인간을 잃어버린 경우겠다.
사람 둘을 잃었을 때 그저 기분이 좋은 사람은 없겠지만, 우야 부야 다시 옛날 관계로 되돌리자는 데는 반대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깊이가 있다는 건 의심 없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고 봤을 때 이 둘의 경우는 신뢰가 꺠어진 경우이므로 그 이전의 관계로 돌릴 수 없다. 그 신뢰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어떠한 처방이 있기 전에는 화해나 이해를 한 것 처럼 보여도 그 이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케이스 1의 경우는 전혀 다시 언급하기 싫은 케이스 2의 경우는 좋았던 시절을 추억으로만 남기는 걸로 나 자신을 위한 처방전을 내리면서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자 그럼 오늘 술자리에 케이스 1, 2의 경우 같은 경험을 지닌 사람이 동석을 한다면 참석을 할 것인가?
난 참석하지 않는다. 술은 즐겁게 마셔야지....그게 내 지론이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by kinolife 2008. 8. 10. 09:43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 남겨두고...애기 놓기 전의 일상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가방을 싸면서 드는 생각...
길면 알 수 없고 짧으면 3일 정도의 병원 입원 기간을 생각하며 싸는 가방 안에는 아기 배넷저고리며, 간단한 세면 도구들이 담긴다. 어떤 목적에 따라서 가방을 싸 본적이 종종 있었지만, 병원 입원을 앞두고 싸는 가방엔 조금 많이 낯선 감성들이 함께 담기는 것 같다. 이미 알고 있는 육체적 고통의 기억까지 가방에 담아가야 하니 그 부담감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이렇게 집을 떠나면서 싸는 가방을 생각하다 보니, 유난히 가방을 좋아하고 욕심을 내던 나의 일상적인 습관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는 과연 어떤 가방들을 좋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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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자애들이 들고 나니는 파우치를 가방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역시 많은 용량의 짐들을 담을 수 있는 큰 가방이 우선적으로 좋은데..그러다보니, 한쪽 어꺠에 매거나 한 손에 들어야 하는 가방보다는 양쪽 어깨에 매고 다니던 가방이 가장 나에게 어울렸던 가방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저런 가방에 잡다구리한 필기도구들과 노트..그리고 책을 한바구니 넣고 다니던 나의 20대 초반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는데 라는 생각에 미치다 보면..어깨를 짓눌렀던 무거운 가방 마저도 그 나이 때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가 담겨 있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애기 놓고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는 내년 봄에는 이런 큰 가방에 잡다한 필기도구랑 책, PMP, 사전들을 넣고서 도서관이나 공원 같은데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근 10년 가까이 회사 다니면서..아이 키우면서 들지 않았던 책가방을 다시 든다면 기분이 어떨까...공부만이 최고의 의무인 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그 책가방 안에 담긴 무게감이 때론 그 때는 전혀 모를 미래에 대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담겨 있었여서 더 무거웠던 건 아닌지 나이 먹고 책가방을 내러 놓고서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by kinolife 2008. 7. 1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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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의 첫 작품과 둘쨰 작품


출산을 이제 겨우 2주 정도 남겨둔 요즈음..무더운 날씨에 무거운 몸을 스스로 끌고 다니는 것도 무척이나 고역이지만, 무엇보다도..제일 마음이 답답한 건 한 아이의 엄마와 두 아이의 엄마가 가지는 무게감이란 어떤 것일까 라고 하는 생각에 미칠 때이다.

한번의 기 출산 경험은 그 고통의 순례를 다 알고 있기에 더욱 더 끔찍하게 두려운 기억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으며, 그 사이 3년이란 시간동안 더 늙어버린 나의 몸은 그런 두려움에 더욱 더 깊은 인식을 시키기에 충분할 만큼의 누진고통을 전해 준다. 앉았다 일어날 때 아랫부분이 당기는 것은 둘째 치고 누워서 잠을 잘 때 몸을 비틀 때도 꽤나 몸이 바친다. 더운 날씨에 출산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으며, 하고 있는 일에 딱 아다리..혹시나 지장이 생길까 하는 걱정도 꽤 많이 된다. 대한 민국의 어느 누구가 출산 당일의 문제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하랴 하면서도...내가 그런 누의 한 부분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상한 결벽은 내가 가진 능력과 또 다른 양심적인 부담감으로 날 짓누르는 것을 느낀다. 아이 하나를 낳아서 3년이 다 되도록 키우면서 몸이 힘들고 마음이 걱정되고 했던 것들이 조금씩 기억이 날 때면 또 다시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첫 아이 만큼 잘 할 수 있을까 더 마음을 쓸 수 있을까 라고 하는 스스로의 의문 역시도 무척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남는다.

첫 아이를 키우면서 아주 많은 조력자가 되어준 아이 아빠도 출산 이후엔 더욱 더 바빠질 터라 기대기도 어려 울 듯 하고..혼자서 하던 일에 두 아이까지 맡아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니...아주 많이 무서운 기운이 든다. 정말..한 아이를 키우는 것과 두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무게 차이로 나에게 다가올까..올태면 와봐라..하면서도 꽤 많이 걱정이 된다. 역시 그럴때면 드는 생각...아이는 돈이 아니라 마음이 우선이다라는 것인데... 내 마음이 어디까지 아이에게 닿을 수 있을까 또 다른 시험대가 하루 하루를 넘기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두려움과 기대를 반반 등을 맞대고서....
by kinolife 2008. 7. 8.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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