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에는 비슷한 것, 이른바 닮은꼴이 참 많다. 음악에서도 비슷비슷한 음률이나 분위기를 느낀다거나 비슷한 음악세계를 가지고 있는 가수들을 만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비슷한 음악, 비슷한 가수 이러한 음악세계에서 시와 노래의 만남은 조금 다른 영역에서의 비슷한 감성을 만나게 한다. 시가 아주 원시적인 시대에서는 그들이 부르던 가사였음을 상기한다면 시의 노래화는 '보는 시'에서 '듣는 시'로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크게 보면 음악과 문학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 같지만 시에 마음을 담으면 노래가 되었고, 노래를 깊게 들으면 시가 되듯이 이 둘의 관계는 마치 같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형제처럼 그 모양새나 느낌이 닮아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선보이는 BOOK-CD는 이 둘의 친밀함과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를 잘 알 수 있게 한다. 시와 독자와의 사이를 조금 더 친근하게 접근하는 방법으로 진행중인 여러 동인, 개인의 시노래들을 천천히 살펴본다.

이런 일련의 BOOK-CD 중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팀이 있다면 시인과 가수, 그리고 시인이 주축이 되어 만든 동인 ‘나팔꽃’의 활동이 아닐까 한다. 시인 김용택, 정호승, 도종환, 안도현과 작곡가이자 시인인 유종화 그리고 가수이자 작곡가인 백창우, 김원중, 배경희, 김현성, 홍순관, 류형선, 이지상, 안치환, 이수진 등이 모여 만든 시 노래 모임인 나팔꽃은 한달에 한번씩 작은 장소를 빌려 콘서트를 개최하고, 현재까지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주 현대문학북스, 1999)과 [제비꽃 편지](현대문학북스, 2001)라는 제목의 BOOK-CD를 두 권 만들어 냈다. 이 동호회에 소속된 시인의 시와 삶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책과 이들의 시에 노래를 붙힌 곡들을 위의 가수들이 부른 시디를 함께 읽고 들을 수 있다. 이들만의 독특한 서정성은 자신들의 홈페이지 입구에 씌어있는 -작게. 낮게, 느리게-라는 문구를 통해서 그 색깔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현재의 도시인들에게 더 없이 따뜻하고 윤택함이 될 수 있는 이들의 음악과 시는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시선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스스로를 작게 보는 넉넉한 마음과 자기를 낮출 수 있는 솔직함 그리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는 이 동인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이 나팔꽃 동호회에 속해있는 멤버 중에서는 나팔꽃을 통한 BOOK-CD 이외에 따로 출간한 개인적인 성격의 BOOK-CD들을 발간한 경우도 있다. 먼저 ‘노래마을’ 등으로 오랜 동안 노래패 활동해 온 백창우의 소탈한 노래 운동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동요집을 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시인 이원수씨의 시에 자신이 음률을 붙힌 동요집 [이원수의 시에 붙힌 노래들 1,2](보림, 1999)는 자신이 직접 결성한 어린이 노래패 ‘꼬마 굴렁쇠’들과 함께 해 포크 팬들은 물론 순수함을 원하는 맑은 노래들을 들려준다. 이 앨범 속에서는 ‘나팔꽃’ 동호회의 일원인 홍순관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토속적인 맛에다 풋풋함까지 서려 있는 이 앨범은 함께 부는 노래가 어떤 것인지 조용히 알려주는 독특한 앨범이다. 음악인으로서의 백창우 못지 않게 문학적인 감수성도 높은 백창우는 [사람하나 만나고 싶다] 1,2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가을편지] 등의 시집을 냈다. 단순히 음악인이라고만 하기에는 그의 문학적인 활동이 무척 왕성한 모습이다.

백창우와 함께 BOOK-CD [바람 부는 날](당그레, 2001)을 낸 시인이자 국어교사인 유종화는 시를 통한 노래운동,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말의 아름다움과 참다운 삶을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바람 부는 날] 역시 그의 활동을 볼 수 있는 좋은 보기가 되는데 유종화가 선택한 우리의 시들에 자신이 직접 곡을 붙혀 만든 이 노래들은 그 음색에 맞게 재야 가수들이 색깔있게 불러냈다. 이 음악과 함께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시에 대한 의미들은 담은 책은 CD만큼이나 돋보인다. 여느 시 해설서에서 볼 수 없는 개인적이면서 솔직한 글들은 우리의 시가 가진 아름다움을 아주 쉽게 보여준다. 시가 어떻게 노래가 되는지 그 과정을 알려주는 듯한 그의 글, 그리고 우리의 노래들 중에서 여느 시 못지 않는 감성과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노래 가사까지 꼼꼼하게 적은 그의 글들은 맑은 노래만큼이나 다양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전해준다.

이들 앨범과 그 멤버나 성격이 비슷한 또 하나의 BOOK-CD [혼자 사랑한다는 것은](명예의 전당, 2002)은 가장 최근에 발표된 BOOK-CD이다. 시인 이정하 씨의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에 가수이자 작곡가인 김현성이 곡을 붙힌 이 BOOK-CD는 기존의 김현성의 음악세계를 아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낯설지 않은 앨범이다. 보통의 사랑노래와는 다른 김현성 식의 사랑노래를 담백한 음색으로 들을 수 있는 이 앨범은 그를 중심으로 결성된 문화행동 ‘혜화동 푸른 섬’이 노래해 부담없는 사랑 노래를 전해준다. 단순하면서도 말랑말랑한 사랑노래와는 다르게 시적인 언어로 정화된 사랑은 단순한 고백이나 맹목적인 사랑으로 일관하는 메인스트림의 사랑노래와는 다른 정서를 전해준다. 이것이 이른바 김현성 스타일의 포크에 담긴 사랑일 것이다.

위에 소개된 노래들을 듣다 보면 역시 시와 음악의 사이에 흐르는 감정이란 시가 음악에부터 가사부분을 담당하는 형태라는 당연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이 노래가 가지고 있는 문학성이기도 하며 음악이 문학에 기댄 부분이기도 할 테다. 그리고 잘 만들어진 노래 가사는 문학에 자극을 주기도 하면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일 테다.

이제까지 열거된 앨범과 책들이 포크 가수들과 시인의 시 그리고 편곡자들이 만들어낸 앨범이다. 이러한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는 여타의 앨범들 속에서 특별히 돋보이는 앨범들이 있다. 그건 바로 시인들이 직접 노랫말을 만들고 자신들이 직접 앨범의 노래를 부른 경우다.
시인이자 노래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한보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꽃 한송이 주지 못했네](당그레, 2001) 라는 제목의 BOOK-CD를 발표했다. 우리 정서가 충분히 담겨있는 노래가사와 자신의 음성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의 목소리는 일면 너무 평범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숨김없음이 가지는 담백함이 전해주는 그의 색깔은 색다른 사랑노래로 거듭날 수 있게 한다. 언더 중에서도 언더로 불릴 수 있는 그의 시와 음악은 마치 청학동 동자들의 노래처럼 세상과 유리되어 있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 안에 있는 개인적인 감수성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데 있어 편안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최근 요란스러운 가요계의 여러 풍토들을 생각한다면 그의 이런 활동이나 노력은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한보리가 음악이나 문학적인 활동에서 시작하는 단계라고 한다면 또 한명의 이 문학인 이제하는 문학적인 경륜이나 여러가지로 상당히 놀라움을 전해준다.
소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쓴 소설가로 그리고 시인으로 많이 알려진 이제하가 1990년 말에 발표한 시집 [빈들판](나무생각, 1998) 과 음악은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을 선사한다. CD에 담긴 총 12곡 중에 10곡을 자신이 직접 만들었으며 예전 여러 기수들에 의해 애창되어온 “세노야”를 자기식으로 불러준다. 워낙 내공이 깊은 문학인이었으니 그가 노랫말을 만들었다는 소식은 놀랄 일이 아니겠으나 그가 직접 노랫가락을 만들고 불렀다는 것은 센세이션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한다. 이제하의 목소리는 구수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 한데, 마치 오랫동안 잘 숙성시킨 된장이 전해주는 편안함과 구수한 맛이 넉넉한 삶의 성찰로 빠져들게 한다. 황혼으로 달려가는 한 나이든 사나이이자 문학인인 그의 삶은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된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독백의 성격이라 볼 수도 있는 이러한 성찰의 내음은 노랫말 곳곳에 나타나는 우리 자연과의 호흡과 내면을 다듬는 개인의 자숙이 섞인 우리 포크의 진수같이 보인다. 마치 최근까지 잠자고 있는 우리 포크에 정신을 깨우치는 돌팔매 같은 이 음반은 90년대를 통틀어 손에 꼽을 만한 포크의 수작이라고 보기에 전혀 아까움이 없이 앨범이다.

시를 쓰는 사람, 노래를 만드는 사람, 노래를 하는 사람, 어쩌면 이들은 같은 나무에 달린 나뭇가지처럼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태고적에는 같은 것이었다. 꽃이 필 때면 열매가 숨을 죽이고 있고, 꽃이 다 지고 나면 비로소 열매가 열리는 것과 같이 서로를 드러내지 않고 잘 보듬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이 문학적인 음악들은 장르로 말하자면 수수한 포크 정도로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때로는 특별한 장르 구분 없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듣는 이들에게 부담없이 전해진다. 삶 속에서 노랫말을 찾고 그 안에서 성찰을 담아 노랫가락을 붙히고……노래를 단순한 노래에 한정하지 않고 노랫말을 음미할 수 있어서 좋고, 마치 따분함이나 너무 어려움의 진수로 볼 수 있는 시를 편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이 시를 노래하고, 노래를 읽게 하는 BOOK-CD들은 갖가지 개성과 매력으로 다가온다. 여름을 향해가는 봄의 끄트머리에 시와 노래가 함께 담긴 이 종합선물 세트는 명절 이외에 과자 꾸러미를 지고 집에 오신 삼촌마냥 푸짐하고 행복한 순간을 전해준다.

이 글은 제가 2002년 5월에 www.kpopdb.com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kinolife 2006. 7. 13. 1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