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석남
출판사:문학과 지성사
2005.08 초판 1쇄
가격: 7.000원


사 두고 오랜동안 못 읽다가 2013년 도서목록에 어렵게 끼워 넣었다. 시에 대한 이해는 삶이 팍팍해 질수록 더 멀어지는 것인지..아니면, 삶의 극한으로 치달아 그 끝에서 만나게 되는 것인지....이 모호함은 장석남의 이 시집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시는 외피적으로 읽게 되는 것 같고..책 뒷면의 김연수 해설을 읽어도 오롯이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래도 겨울의 끝에서 시집을 만지작 거린 기억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덮었다.


- 책 속의 시 -


-얼룩에 대하여-


못 보던 얼룩이다.


한 사람의 생은 이렇게 쏟아져 얼룩을 만드는 거다.


빙판 언덕길에 연탄을 배달하는 노인

팽이를 치며 코를 훔쳐대는 아이의 소매에

거룩을 느낄 때


수줍고 수줍은 저녁 빛 한 자락씩 끌고 집으로 갈 때

千水川眠의 노을 든 구름장들 장엄하다.


내 생을 쏟아서 

몇 푼의 돈을 모으고

몇 다발의 사랑을 하고

새끼와 사랑과 꿈과 죄를 두고

적막에 스밀 때


얼룩이 남지 않도록

맑게

울어 얼굴에 얼룩을 만ㄷ는 이 없도록

맑게

노래를 부르다 가야 하리


-밤길-

밤길을 걷는다

걸음은 어둠이나 다 가져라

걸음 없이 가고 싶은 데가 있으니

어둠 속 풀잎이나

바람결이나 다 가져라

걸어서 닿을 수 없느 데에 가고 싶으니

유실수들 풋열매 떨어뜨리는 소리

이승의 끝자락을 적신다

그러하다가

새벽달이 뜨면 울음이

풀리는 빛에 걸음은 걸려라

거려 넘어져라

넘어져 무릎에 철철 피가 넘치고

핏속에 파란 별빛들과 여러 날 시각을 달리해서 뜨던 달

셋방과 가난한 식탁

옹색한 여관 잠과 마주치는 눈길들의

망초꽃 같은 세미나

꼬부라져 사라졌던 또다른 길들 피어날 것이다

환하고 축축하게 웃으면서 이곳이군

내가 닿은 곳은 이곳이군

조금은 쓰라리겠지

내가 밤길을 걸어서 

새벽이 밝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새 날이 와서 침침하게 앉아 

밤길을 걸었던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나는 벙어리가 되어야 하겠지

그것이 다 우리들의 연애였으니

by kinolife 2013. 2. 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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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연수
출판사 : 문학과 지성사
2009.01 초판 8쇄

1930년대 동만주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모티브로 김연수가 그려내는 역사상상소설이라고 해야할 이 연애 치정 역사 소설..역사적인 사실을 조금 차지하고라도 조금 다이나믹하게 읽을 수 있다. 위대한 역사도 개인의 역사와 따로 떼어놓을 수 없고 아무리 찬란한 역사라고 하나 인간 없이 가능한 것은 없으니 소설은 역시 인간미 풀풀 넘치는 묘사로 흥미로운 시간을 전해준다. 역사적인 사실은 전혀 모르고 지금도 그저 소설의 모티브 정도의 지식과 영감으로 남아 있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이 주는 쏠쏠한 재미로 꽤 빠르게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소재를 살려내는 힘이 인물의 관계에 함몰되는 건 보면, 역시 김연수는 연애소설은 잘 쓰지만. 사이즈 큰 걸 버거운 건가?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 책 속의 글 -

"죽음이란 그것을 통해 삶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만으로 족한 거야"

"서로의 심장을 꺼내놓고 싸우고 나면 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정리될 테니까. 역사책이란 그런 사람들의 심장에서 뿜어난 피로 쓴 책이야."

"이제는 알겠다. 사랑은 여분의 것이다. 인생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찌꺼기와 같은 것이다. 자신이 사는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컨대 측량이란 완전해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익히는 일이다. 자신의 몸으로 세계를 재어보면 분명 참값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것을 도면으로 옮길 때는 참값을 포기해야만 한다."

"도덕이란 그렇게 변화하는 인간만이 알 수 있는 것이오. 일단 그렇게 변화하는 인간의 도덕을 알게 되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잔혹한 일들을 혐오하게 될 수 밖에 없소. 변화를 멈춘 죽은 자들만이 변화하는 인간을 잔혹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그건 정말 구역질이 나는 일이오. 하지만 인간은 그보다 힘이 더 센 존재요. 나는 잔인한 세계에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잔인한 세계 속에서도 늘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간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됐소. 인간이 성장하는 한, 세계도 조금씩 변하게 마련이오. 그런 인간의 힘을 나는 믿었소."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by kinolife 2009. 7. 7.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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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이현
문학과 지성사
2006.07 초판 18쇄

2006년 한국의 20대 후반과 30대들이 가장 많이 읽었다는 소설..다 읽고나서 보니 특히 우리 사회에서 노처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에게 아주 어필할 만한 상황과 문구들이 넘쳐나느구나 라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는 소설책이었다.
여류 작가 특유의 고백적인 문체도 물론이거니와 주인공이나 주변인들의 캐릭터나 고민 등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고통들이 담겨 있다. 난 이 고민 속의 여성들이 겪는 시기를 지나왔고, 운 좋게 결혼도 했지만..이들이 소설속에서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 없어진건 아니다.
생이 끝나지 않는 한 외로움과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다만 바라는 건 고통스럽거나 외롭지 않은 끝을 바라는 것..정말 작은 소망만이 소설 끝자락에 남는다.

- 책 속의 문구 -

"혹시 내 피가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건가? 앞으로 이렇게 점점 더 차가워져갈 일만 남은 건가? 더럭 겁이 났다. 이러다가 곧, 냉동칸의 동태처럼 꽁꽁 얼어붙은 채 늙어갈지도 모른다. 영원히 무감동한 인간으로 말이다."

"일부일처제 사회의 위대한 규칙 한 가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결혼하는 건 아니지만, 결혼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랑해야 한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사랑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가진 무언가를 사랑할 수도 있으며,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는지 모르면서 사랑할수도 있다."

"모든 고백은 이기적이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고백을 할 때, 그에게 진심을 알리고 싶다는 갈망보다 제 마음의 짐을 덜고 싶다는 욕심이 더 클지도 모른다."

"쇼핑과 연애는 경이로울 만큼 흡사하다."
 한 개인의 파워를 입증하는 장(場)일뿐더러, 그 안에서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정서적 안도감을 느낀다. 여유로운 시간과 젊음이 있을 때는 경제력이 받쳐주지 않고, 경제력이 생겼을 떄는 여유로운 시간과 젊음을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재화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

"인생을 소모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관계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사랑에 몸을 던지나 보다. 순간의 충만함, 꽉 찬 것 같은 시간을 위하여. 그러나 사랑의 끝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소모하지 않은 삶을 위해 사랑을 택했지만, 반대로 시간이 지나 사랑이 깨지고 나면 삶이 가장 결정적인 방식으로 탕진되었음을 말이다. 이번 사랑에서는, 부디 나에게 그런 허망한 깨달음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은 인간을 생에 가뿐히 헌신하도록 만드는 기적의 동력처럼 보인다."

"하나의 사랑이 완성되었다는 말은, 누군가와 영원을 기약하는 순간이 아니라 지난한 이별 여정을 통과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입에 올릴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랑할 때보다 어쩌면 헤어질 때, 한 인간의 밑바닥이 보다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끔은 행복하게 사랑하는 연인들보다 평화롭게 이별하는 연인들이 더 부럽다."

"눈을 뜨자 어제와 다른 내일이 펼쳐졌다, 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리 없지 않은가. 그 전날과 완전히 다른 내일이란 어디에도 없다는 체념을 받아들이면서 사람은 나이를 먹어간다."

"그림자는 빛이 만들어 내 허상이다. 세상의 모든 실체들이 저마다 하나씩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살듯이, 세상의 모든 그림자들은 저마다 하나씩의 실체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림자가 없는 것은, 그림자 뿐이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의 맛이다."

by kinolife 2007. 2. 2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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