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107M, Color
감독: 이치카와 곤(市川崑)
주연: 쿄 마치코(京マチ子)  
       가노우 준코(叶順子)
       이카다이 타츠야(仲代達矢)  
       니카무라 간지로 (中村鴈治郎)  
       기타바야시 타니에(北林谷栄)

역시나 '욕망'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힘과 연동되는 심리적, 육체적 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 더군다나 이 단어가 '성(性)'과 짝을 이룰때는 더 묘한 확정성을 갖는 것임은 틀림이 없다. 50년대 말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 중 한명인 이치가와 곤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 <열쇠 (鍵)>는 그 처절한 '욕망의 관계' 속에 숨겨진 인간의 성적인 커넥션과 성적인 욕망으로 묘사되어 온 사랑 하고 싶음, 혹은 사랑 받고 싶음, 무언가를 가지고 싶음, 혹은 빼앗고 싶음에 대한 관계설정에 대한 묘한 매력을 남기는 영화다.

초로의 고미술 감정가 겐모치와 그와는 상반되게 어려보이는 중년 부인 야쿠코, 그리고 어딘지 모를 애매모호한 성격을 지닌 딸 도시코와 그녀의 약혼녀이자 의사인 기무라. 이 네명을 둘러싼 욕망의 관계는 여느 미스터리 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흔한 교차편집으로 궁금즘 유발함은 물론. 이들 간의 관계를 알려주며 풀어지는 영화의 열쇠들은 영화에 흥미를 더해 준다. 겐모치는 자신의 성적 흥분을 배가 시키기 위해 부인 몰래 정력 증진 주사를 맞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딸과 정략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예비 사위 기무라와의 관계를 발전시킨다. 이른바 질투요법. 목욕 이후 나신의 아내를 기무라에게 맡기는가 하면, 자신이 찍은 부인의 나체 사진의 인화를 기무라에게 부탁 하면서 이들 각각의 목적에 충실 할 수 있는 도구를 마련하게 한다. 이른바. 일본식 헨다이의 순진한 한 형태일지도 모르겠으나 겐모치는 자신이 행할 수 없는 성적 만족을 부인의 외도를 통한 대리 충족으로 위안을 삼는다. 부인 이쿠코는 남편의 뜻을 따른다는 명목 하의 성적인 탐닉에 빠져들면서 부인할 수 없는 성적욕망을 즐기며, 겐모치의 예비 사위인 기무라는 명망 높은 어른을 장인으로 두면서 자신의 출세에 도움이 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함은 물론 성적으로 능숙한 부인과의 섹스 역시 궂이 피할 이유는 없는 장사에 기꺼이 동참한다. 여기서 사건을 즐기는 겐모치와 그 안에서 성적인 탐닉에 빠지는 중년 부인과 젊은 의사의 성적 유희는 주인의 묵인하에 이루어지는 당연한 놀이. 이들 관계에서는 성적인 욕망을 차지한 승자들의 게임만이 이어진다.


하지만, 게임이란 언제나 승자 뒤에 패자가 있기 마련, 이렇게 세 명의 관계 속에서 성적 욕망이 꽃 필 무렵, 이들 관계에서 배제된 딸 도시코는 자신의 약혼자와 엄마와 벌어지는 성적 관계와 이 모든 것을 주도, 방관하는 아버지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절대적인 패자로 부각된다. 사건의 종말은 역시 이 독기에 찬 패자의 결단으로 마루리 되기 십상이지만, 이치카와 콘은 여기에다 별로 주목할 것 없어 보이는 할머니 가정부의 어눌함을 통해 이 성과 욕망을 둘러싼 게임에서의 절대 승자나 이 모든 것을 처단할 극단적인 패자의 용기 따위를 허락하지 않는 연출의 치밀함을 보여준다. 빨간색의 농약통과 녹색의 조미료통의 애매모호함과 할머니의 색맹, 그리고 통 안의 내용물을 바꾼다는 복합적인 복선과 에피소드들은 절대적인 약자의 강자 퇴치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으면서 인간의 욕망의 끝이란 어떠한 목적과 의미를 담고 다른 과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허무하게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위해 자신의 사위와 아내를 연결하는 남편, 딸과 결혼할 사위임을 알면서도 관계를 가지는 엄마, 장인의 건강 상태를 알면서도 주사를 놓으며 성적인 욕망을 부추키는 사위,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으며 이들 모두에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딸...이 넷의 얽히고 섥힌 관계 사이에 내재된 성은 인물의 위치에 따라 굉장히  이기적이면서도 피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대부분의 성관계가 피동적일 뿐 아니라 성적인 대상의 주체에 따라 자율적일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욕망은 주변에서 받기도 하지만 그걸 통해 안에서 분출하는 것임을 역시 숨길 수가 없다.

그래서 영화 <열쇠> 속의 성이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절대적인 수단이며 그 절대적인 이유는 모든 관계를 목잡하게 얽히게 해 욕망의 처절하면서도 추한 모습을 이끌어 낸다. 영화 말미, 늙은 가정부의 혼돈으로 인해 모두 죽음으로 맏는 결말은 블랙 코미디의 한 진수, 이른바 각자가 성적인 욕망에 도취된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주인공들의 우매함은 영화의 발단 자체가 흥미로웠듯이 그 뻔한 결과에도 힘 빠지지 않은 이치카와 콘의 재치를 엿 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이 영화는 일본의 탐미화 문학의 거장인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이치카와 콘의 전성기 때 제작 되었으며 이후에도 구카시로 타츠미와 와카미츠 코우지, 이케다 토시하루 같은 후배 감독들에 의해 다시 제작되기도 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탐미 문학 속에 표현된 인간의 성은 굴절된 인간성과 분별없는 욕망에 대해 솔직하면서도 냉정하게 그리고 있으며 이치카와 콘은 여느 추리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다각적인 영화적인 시점을 통해 흥미롭고도 새로운 방식으로 영화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그의 개성있는 연출의 묘미를 충분히 맛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by kinolife 2006. 9. 27. 2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