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요시나가 후미(よしなが ふみ)
번역: 장수연
출판사: (주) 서울문화사
총권: 1~4권 완결
2002. 02.05 1쇄 발행


"커피라면 브랜드 커피와 에스프레소, 카페 카프치노랑 카페오레, 카페라떼. 홍차는 다즐링, 얼그레이, 키먼, 앗삼, 우바, 딤블라 중에서 원하시는 걸로, 로얄 밀크티, 아시아풍 시나몬티, 바닐라 밀크티 또는 허브티를 원하신다면 재스민티와 캐모마일, 로즈힙, 그리고 다뜻한 코코아와 캐러멜 코코아도 있지요."

"저희 가게는 오후 2시에 마지막 주문을 받고, 2시 반에 폐점 입니다아 -"

"손님의 맨 오른쪽에 있는 게 프레제, 딸기와 커스터드 버터 크림을, 피스타치오 맛 빵으로 감싼 것이죠. 바삭바삭한 사블레 빵 위에 시럽에 조린 블루베리와 생크림을 얹은 레어치즈 케이크, 오늘의 추천 상품은 붉은 과실과 아몬드 크림 타르트이고, 슈크림은 바닐라 빈즈를 듬뿍 넣은, 생크림이 들어간 커스터드를 안에 채워넣었답니다. 케이크 속까지 휘핑 크림이 듬뿍 스며들어 촉촉하기 그지없는 쇼콜라 클라식, 이건 악마의 유혹과도 같이 환상적인 맛이라서, 자신있게 권해드릴 만한 상품이죠. 그밖에도 스콘이나 바나나 쉬폰, 캐러멜을 뿌린 아이스크림도 있습니다."

본 작품 [서양골동양과자점]에 나오는 양과자점 '앤티크'에서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만화 속의 대사이다. 이 짧은 대사 안에서도 국내 어느 곳에 이런 다양하고 알찬 메뉴들(만화 속에서처럼)과 함께 가식없는 웃음을 만날 수 있는 양과자점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 달려가서 다양한 색깔과 모양을 자랑하는 케익을 구경하고 맛까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원래 케익을 즐겨 먹진 않지만(입에 안 맞거나 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 좀 비싸다는 생각에), 이 만화를 읽는 동안은 이상한 유혹과 군침도는 상상력이 내내 위장을 노크하고 두뇌를 자극해 와서 괴로웠다. 그러므로 적어도 오후 10시가 넘은 밤 시간에는 이 만화를 보는 것을 권하고 싶지 않다. 흑백의 화면이라는 불리함 속에서도 이 만화 속의 케익은 만들어 먹지도 혹은 사러 나갈수도 없는 한계상황을 일깨워 더더욱 군침돌게 하니 이런 경우는 가히 피하는 게 상책이다.  

만화 [서양골동 양과자점]에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4명의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어릴적에 유괴를 당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양과자점 앤티크의 주인 타치바나 케이이치로와 그의 고등학교 동창생이자 매력적인 호모 오노 유우스케, 오랜 동안 타치바나 케이이치로가에서 생활하면서 타치바나의 짐이 되어 온 특이한 충복 코바야카와 치카게...이들과 함께 고아로 부량아로 성장, 우연히 양과자점 앤티크에서 오노의 제자로 파티세로서의 희망을 품고 있는 칸다 에이지 이 네 명의 주인공들이 각자의 과거를 적당히 숨기고 또 적당히 보여주면서 서양골동 양과자점에서의 생활에 담긴 이들의 일상과 일련의 사건들을 보여주는 잔잔한 재미를 지닌 만화다. 물론 네 명의 청년 모두가 만화 주인공 답게 멀쑥하게 잘 생겼다는 점을 감안해 이른바 '제과점에서 만날 수 있는 수려한 네 사나이' 정도의 부제를 달 수 있지 않을까!

장르를 따지자면 호모 만화+제과 상법 만화+유괴범을 잡기 위한 추리 형사물로 자리매김을 해야할지 애매모호한 이 작품은 이 모든 특징을 모아 하나의 맛있는 케익을 만드는 재료로 쓰듯이 복합적이면서도 개성만점의 만화를 선보인다. 크게 이야기기의 구조는 이 네 인물들의 과거를 복합적으로 조율한 것에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이들 과거가 현재와 병치되변서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내고 사건을 해소 시킨다. 양과자점에 모인 사람들의 특성과 개성 안에 담겨진 것은 호모 섹슈얼리티 속에 담긴 불온한 가족사와 성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들, 어릴적 유괴당한 경험에서 나오는 법에 대한 질문과 개인의 사회성. 그리고 정신적으로 이상한 현대인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하는 일이 내내 미심쩍으며 손을 댄 곳엔 다시 손을 대고야 말게 만드는 어리숙한 남자가 만들어낸 개인적이면서 자율적인 현대가족, 그리고 그 나마도 없이 원초적인 발원지로부터 버림받은 고아가 가지는 세상에 대한 시선과 다시 버림다는 것에 치를 떠는 생리까지 다양한 소재가 뒤범벅이 되어 이 만화를 어느 하나 적당한 장르 안에 밀어넣을 수 없게 한다. 이 달콤한 양과자 점 안의 4명의 남자는 어느 하나 온전해 보이지 않은 과거 때문에 불안해 보이고 또 그것 때문에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각각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이 불안감은 파티세(제빵사) 오노와 그의 제자 칸다가 만들어 내는 놀랄만한 케익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긴장감이 풀어진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하면서도 색다른 케익들은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게 편안한 여유까지 선사하고 독자들에겐 눈과 상상 속의 미각을 자극시긴다. 그래서 조금은 이상한 케익과 유괴의 삼각관계는 괴로움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단것'의 묘미가 우리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필요한지를 말해 주는 것 같다. 달콤한 케익, 그것을 더욱 더 달콤하게 하는 것은 살아가는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인생의 쓴맛' 때문은 아닌지... 영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시켜줘>의 대사 처럼...우울한 날의 고구마 케익이 주는 삶의 작은 진리는 달콤한 맛이 화나고 들뜬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효과가 명백이 있기 때문이리라. 혹시 그럴 때가 있다면 몇 100그람 늘어날지 모르는 몸 속의 지방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과감하게 달고도 단 케익을 먹어 보는 것이 좋겠다. 덜 우울해지고, 또 맛도 좋으니 말이다.

만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안에는 다양하고 달콤한 케익들만큼이나 쓸쓸하고 또 우울한 삶의 흔적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런 이 둘의 긴장감은 이 케익의 단맛을 더욱 더 자극시켜 책장을 넘기는 동안 긴장을 주는 동시에 입안에 기분좋은 기운을 돌게 한다. 케익 한 조각이 주는 삶의 여유가 수 많은 삶의 여유의 도구 중에서도 유독 달콤해 보이는 것은 케익 안의 설탕이 주는 마력만이 아님을, 그것은 케익을 예술로 생각하고 만들어 내는 파티세의 의지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설탕이 아니라 땀이 만들어 내는 여유와 단맛 말이다.
by kinolife 2006. 4. 18. 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