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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기철
출판사:문학동네
2006.08 초판 1쇄
가격: 7.000원


시집 한권 다 읽어 내기 힘든 삶을 사는 요즘의 내 모습은 시집 한권 놓여 있지 않은 딱딱한 테이블 같다는 생각을 한다. 회사 자리 이사를 핑계로 후다닥 수박 겉핡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빛의 속도로 슬쩍 읽고 말았다. 늙는다.나이 든다..그건 감수성이 죽는다는 것과 또 다른 동의어 인 것 같다.












- 달의 발자국 -

구두는 늘 혼자 오는 법이 없다.
길을 가다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내려다보면
지나온 발자국들이 모두 따라와 있다.
그때부터 조심조심 걷게 되었다.
남긴 발자국을 속이기 위해서다.
보도에서 껑충 뛰거나 일부러 넘어지기도 하고 엉금엉금 기어가기도 하다가
뒤돌아보면서
발자국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좋아한다.
그렇게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집에 돌아와 대단히 편해한다.
발자국 하나 묻어 있지 않는
구두에 안심하면서 자리에 누우면
하루만큼의 아픔이
백지처럼 지워져 있다.
하지만 잠이 들라치면
질긴 발자국 하나가 여간 성가시게 하는게 아니다.
그래서 잠도 자지 못하고
약칠을 하고 광을 내어 구두를 못살게 한다.


by kinolife 2007. 6. 22. 1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