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음반 유통업계의 일반적인 판로를 통하지 않고 독자적인 루트를 통하는 음악이란 역시 시장성 없음, 혹은 독특한 자기 고집의 과다 쯤으로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이러한 루트 중에서도 출판사를 통한 음반의 발매가 조용하면서도 꾸준하게 이어지는 현상이 눈에 띈다. 가장 흔한 포멧이 시집과 묶어나오는 시 낭송집과 작사가 곧 시라는 점에서 시집과 노래CD가 묶여나오는 것 등이다. 이러한 부류의 앨범 중에서도 출판사 바오로딸에서 출시한 "사랑의 이삭줍기" 시리즈가 주는 신선함은 종교적인 색채만이 아닌 독특한 색깔로 새로움 이상의 여운을 남긴다.

사람과 사람과의 교통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흔하고, 또 인정하기도 쉽다. 하지만 그 사랑보다 더 가치있는 교통의 방법이 있다면 '배려'일런지도 모른다. 눈에 잘 띄지 않고 그 가치보다 폄하되는 배려는 계산없이 타인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줄 수 있기에 오랜동안 조용한 빛을 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숨어있는 작은 등불이 나즈막하지만 진심어린 힘을 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천주교의 교리 안에서 타인에게 봉사하는 삶을 일생의 자화상으로 삼은 수녀들이 부르는 노래는 그래서 더 큰 가치로 다가온다.

"사랑의 이삭줍기"는 1997년 1집이 발매된 이후 2001년에 2집이 발매되었다. 사랑을 근간으로 해서 '노래'로 배려와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이 앨범은 수녀들의 맑은 목소리를 실력을 갖춘 가요계의 순수함이 담아낸다는 데 있어 그 행보 자체만으로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종교적인 색깔을 바탕에 두긴 하되 일부러 드러내지 않으면서 일반 대중들의 정서를 받아들이는 노력은 이 앨범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랑과 배려를 그대로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첫번째 앨범에 수록된 "아름다운 사람", 두번째 앨범에 수록된 "백구"의 경우 김민기 작사, 작곡으로 국민 대다수가 익히 알고 있는 서정성 깊은 대중가요의 기본 코드, 하지만 순박한 수녀들의 목소리로 표현되는 노래는 익숙한 음률을 신선한 목소리고 새롭게 다가오게 한다. 이렇게 눈에 띄는 몇몇 곡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이 앨범의 백미는 대중가요를 다시 부른다는 일반적인 변주에 한정되지만은 않는다. 익숙한 가요를 다시 부르는 친근한 접근 사이사이에 녹아있는 이들만의 맑은 노래, 순박한 음성이 주는 독특한 안식 이 더 크게 다가온다. 척박하고 답답한 세상에 그들만의 새로운 신호를 담은 곡들은 노래를 듣는 동안은 세상의 고통과 고민에서 벗어난 착각을 가지게 한다. 첫번째 앨범에 수록된 도종환 시인의 시에 노래를 붙인 "꽃씨를 거두며"나 두번째 앨범에 수록된 "노래를 불러드릴까요" ,"행복한 과일가게" 같은 노래들은 우리 삶 속의 일상사가 주는 행복이야 말로 삶의 활력소임을 아낌없이 전해준다. 또한 1집에 수록된 "꼬마 천사와 꼬마 거지" 는 종교적인 색채가 두드러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녀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훌륭한 동요로써 모자람이 없다.

앨범에 담긴 하나하나의 노래만큼이나 눈여겨 볼 것은 두 앨범의 전체적인 성격.
두 앨범에 쓰인 작사는 뜻깊은 이들의 '시'와 '마음'라는 데 있어 충분히 감성적이며 교육적이다. 또한 이런 시적 감성을 욕심없는 마음으로 부른 수녀들 사이에는 훌륭한 가교로서의 한 음악인이 있어 음반이 더욱 더 빛을 발하게 한다. 독특한 행보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이어가고 있는 작곡가 겸 가수로 활동중인 김현성씨가 선보이는 음반 프로듀싱은 현재 가요계에서 상쾌한 기분을 가지게 하는 최고의 청량제로써 다가오게 한다. 음반 전체의 분위기를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기계음보다는 수녀님들의 목소리를 더욱 더 강조하는 그의 의도는 사람의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임을 여지없이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김현성씨의 프로듀싱은 함께 하면서도 수녀님들을 배려하는듯한 인상에서 전체 음악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조력자로서의 프로듀싱의 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인상은 남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만의 신호로 세상의 자기 아닌 것들에게 자기의 의지를 전달한다. 말과 몸짓, 그리고 글과 행동, 또한 그 많은 방법들 중에 '노래' 역시도 힘있는 자기 메세지 전달법이다. 몸으로 행동하되 조용히 노래하는 수녀님들의 행보는 급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나즈막하게 이 작은 노래를 통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한다.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이 욕심없이 맑은 사람들이 전하는 세상의 따스함과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사랑의 이삭줍기"는 앨범의 타이틀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에 버려진 아주 작은 하나의 이삭을 줍는 마음처럼 세상의 작은 미물에 대한 넓은 사랑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더더욱 풋풋한 마음 그대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마치 하나의 붕어빵 기계로 앙코의 양만 차이가 있게 만들어지는 최근의 국내 음반들에 비하면 이들 수녀님의 도전은 가요계는 물론 문화계 전반에 신선함으로 다가오며 가요계의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하나의 자극으로도 받아들여진다. 사랑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 부르는 욕심없고 맑디 맑은 노래는 반복되고 더 복잡해지는 '요즈음의 노래' 사이에 좋은 쉼터가 되며 일생을 통해 함께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말이 된다. 성서 속에서 누가로부터 전해지는 전언,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배부르게 한 것처럼 두 장의 "사랑의 이삭줍기"는 오천명이 넘는 이들의 가슴에 생물학적 배부름에 결코 못하지 않는 정신적인 편안함과 마음속의 사랑을 다시 새겨 줄 것이다.
p.s. 녹음 뒷이야기를 정리해주신 음반기획부 황젬마 수녀님 감사드립니다.

Tip 이 글은 제가 2002년 4월에 www.kpopdb.com의 미니웹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kinolife 2006. 7. 1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