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도현
출판사: 창작고 비평사
1997.07.15 초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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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163)

-사랑-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섬-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번 가봐라, 그 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게 뭔가
삶이란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두눈 밝혀야 하리

-바람이 부는 까닭-

바람이 부는 까닭은
미루나무 한 그루 때문이다.

미루나무 이파리 수천, 수만 장이
제 몸을 뒤집었다 엎었다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흔들고 싶거든,
자기 자신을 먼저 흔들 줄 알아야 한다고
by kinolife 2006. 10. 22. 1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