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2M, Color
감독: 사부(SABU)
주연: 츠츠미 신이치(堤眞一)
       시바사키 코우(柴咲コウ)
       안도 마사노부(安藤政信)
       오오스기 렌(大杉漣),
       테라지마 스스무(寺島進)

인생이란 수 많은 비유법으로 칭송되고, 의미화 되어왔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길"이란 단어에 의해 규정 지어진 삶이란 언제나 끝이 없고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어떤 꽉 짜여진 길이 가지고 있는 묘한 의미처럼 다가오곤 했다. 그래서 운명같고, 또 그래서 아프게 느껴지기도 하는 길과 같은 인생, 우리는 그 위를 걸어가면서 살아가고, 뛰어가면서 넘어가고, 때론 쉬면서 나름의 형태를 취하며 길을 지나간다. 물론 그 길이란 끝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적잖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길로 치환된 삶에 대해 그리고 그 길을 지배하는 인생의 속도에 관한 의미를 생각케 하는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제목은 <드라이브 Drive> 말 그대로 인생, 길, 속도에 관한 왁짝지컬한 인생역전 코미디이다.

영화를 만든 이는 국내에 <포스트맨 블루스>로 어느 정도 알려진 사부 감독,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재미난 영화를 만들어 내는 감독으로 관심 있는 주제를 별 욕심없이 작게 잘 그려내는 감독이다.

모든 차들은 다 떠나고, 홀로 정지선에 서 있는 차가 한 대 있다. 그리고 그 차를 허겁지겁 얻어타는 세 명의 남자, 셋 다 복면을 쓰고 있고, 하나는 칼까지 들고 있는 걸 보니 직업이 어느 정도 예상이 간다. 차에 오르자마자 셋은 흥분한 상태에서 앞 차를 따라가라고 칼을 움직이며 외쳐 보지만, 이 차의 주인은 그저 '규정속도 40'을 지키는 바른생활맨이자 답답이. 소리를 지르고 위협을 하던 셋은 어느새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복면도 벗어던진 채 이 답답이를 향해 외치다가 안 통하는 걸 알고 한숨을 짓는다. 차례대로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는 이 세명의 강도는 아 아, 할 정도로 얼굴이 낯이 익은 일본의 배우들이라 반갑다. 이 황당한 사건으로 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이 작은 차에 타고 있는 4명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인생을 통해 삶의 일면과 그 삶속에 숨어 있는 인생의 속도를 보여준다. 같은 길을 같은 차를 타고 가지만 각각 다른 인생은 그들만의 가속도(각각 다른 과거와 현재로 연결되는 속도)를 통해 다르게 보여진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지만....그 인생은 차에서 하나씩 각자만의 이유를 가지고 '하차'하는 형식으로 결론지어지며, 그것은 각자 캐릭터들의 과거와 관련되어 현재의 삶을 보여주며 현재의 선택이 영화에서는 보여지지 않지만 어느 정도 상상이 가능한 미래를 예상하게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이 취하는 삶은 각자의 속도가 보여진 드라이브처럼 길 위에서 보여지고 계속된다.

제일 먼저 차에서 하차하는 청년과 중년의 중간이라고 말하고 싶은 이 아저씨는 음울하면서도 코믹한 느낌을 전해주는 독특한 캐릭터. 마치 스님같은 말을 혼자 중얼거리는 이 현학자는 우연히 마약에 심취해 있는 하드락 밴드(장르는 불확실하다. 펑크인지도 모르겠다)의 멤버를 질책하다가 마약에 뿅이 가 버린 놈 대신 무대에 오르면서 인생역전이 시작된다. 이른바 밴드의 간주 중간 중간에 랩 형식으로 중얼거리던 현학자의 말이 무대 아래에서 조명과 음악에 심취한 사람들에게 크게 어필, 대중스타로 거듭날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한번의 오디션도 없이 그는 어느 락 밴드의 리드싱어이자 랩퍼가 된 것이다. 로또보다 심한 인생의 우연, 여기서 크게 아니 웃을 수가 없다. 마치 어느 헐리우드 영화의 장면에서 본 듯한 이 우연의 컨셉은 스님이나 어느 철학자가 세상을 단죄하는 것과 젊음이 넘치는 음악이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것이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는 가능성을 느끼게 한다. 사부 식의 세상보기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 어정쩡한 나이의 아저씨는 차에서 제일 먼저 내린다.


그 다음으로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4명의 강도 중 가장 잘 생긴 청년, 우연히 신호 대기에 선 자동차 옆으로 묘령의 아가씨가 뒷 자석에 벌러덩 누운 청년을 보고 외친다. "지금 머하고 있는 거야?" 그냥 머....같이 은행을 털던 동료를 잡으려다 얻어탄 차가 추격은 커녕은 개인사를 뒤지는 로드 무비 형식의 운행이 되면서 동행하던 중이었다는 정도가 정답이 될 만하겠지만, 이 아가씨의 등장으로 이 청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차는 잠시 야구 연습장에 쉬게 되고, 실력을 발휘하던 청년은 프로야구단의 스카우터의 눈에 띄는 인생 역전의 기회를 맞는다. 어찌 그가 야구 실력이 있으며, 그의 그런 야구 실력을 딱 봐줄 스카우트가 거기 있었을까? 역시 사부식의 이 황당한 설정이 적지 않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아름다운 청년은 야구장으로,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도 기꺼이 그의 옆에 있으리라. 이로써 두 번째 하차다.

이제 남은 두 사람 중에서 이야기의 축이 되는 것은 주인공, 역시 이 뜻하지 않았던 동행은 소심하다 못해 짜증발전소를 방불케 하는 주인공의 소심증을 낳게 하고, 눈여겨 보던 은행 아가씨와의 새로운 동행이 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이 외에도 주인잃은 돈에게 제 갈길을 안내 해주며, 교정속도가 안겨 줬던 생활에 또 다른 드라이브의 속도를 선사한다.


젊은 감독 사부의 재기발랄함이 그대로 엿보이는 이 영화는 차 한 대와 그 차에 올라탄 사람들의 우연적이면서도 상상적이며, 또한 엽기적인 상황을 통해 인생에 대한 또 다른 해법의 가능성을 언급한다. 인생이 길로 치환되는 영화 속에서 드라이브란 그 과정이며, 그 안에 있는 속도는 자신의 인생이라는 차를 운전하는 속도=방식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이 사부식의 은유와 그 속에 담긴 유머가 비슷한 그의 영화들과 다르지 않으면서도 식상하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그 표현의 방식이 주는 묘미가 아니라 정론을 비켜난 듯 보이지만 자신의 스타일로 정론을 표현하는 사부만의 스타일 때문이 아닌가 싶다.
by kinolife 2006. 7. 14. 2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