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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작 : TBS
방영타이틀 : 일요극장
방 영 : 2007년 01월 14일~03월 18일

연 출 : 후쿠자와 카츠오(福澤克雄)
           야마무로 다이스케(山室大輔)
각본 : 하시모토 히로시(橋本裕志)
원작 : 야마자키 토요코(山崎豊子)의 [돌풍지대 華麗なる一族]

출 연 : 키무라 타쿠야(木村拓哉)
          스즈키 쿄카(鈴木京香)
          하세가와 쿄코(長谷川京子)
          야마모토 코지(山本耕史)
          야마다 유(山田優)
          아이부 사키(相武紗季)  
          나카무라 토오루(仲村トオル)
          후키이시 카즈에(吹石一恵)  
          이나모리 이즈미(稲森いずみ)  
          타키가와 유미(多岐川裕美)
          나리미야 히로키(成宮寛貴)  
          히라이즈미 세이(平泉成)  
          니시무라 마사히코(西村雅彦)
          쇼후쿠테이 츠루베(笑福亭鶴瓶)
          코바야시 타카시(小林隆)
          야지마 켄이치(矢島健一)  
          니시다 토시유키(西田敏行)  
          타케다 테츠야(武田鉄矢)
          츠가와 마사히코(津川雅彦)
          야나기바 토시로(柳葉敏郎)  
          하라다 미에코(原田美枝子)
          키타오오지 킨야(北大路欣也)
          츠무라 타카시(津村鷹志)  
          타야마 료세이(田山涼成)  
          마에다 긴(前田吟)  
          야마야 하츠오(山谷初男)  
          마츠오 타카시(松尾貴史)  
          미야가와 이치로타(宮川一朗太)  
          미네기시 토오루(峰岸徹)  
          사노 시로(佐野史郎)  
          야마노 후비토(山野史人)  
          아사노 카즈유키(浅野和之)  
          하기와라 마사토(萩原聖人)  
          누마자키 유(沼崎悠)  
          쿠로베 스스무(黒部進)  
          와니부치 하루코(鰐淵晴子)  
          오사나이 미나코(長内美那子)  
          이시다 타로(石田太郎)  
          이노 마나부(猪野学)  
          반도 에이지(坂東英二)  
          오오와다 신야(大和田伸也)  
          이토 마사유키(伊藤正之)  
          타나카 류조(田中隆三)  
          카네다 아키오(金田明夫)  
          코타로(鼓太郎)  
          무사카 나오마사(六平直政)  
          나카마루 신쇼(中丸新将)

성 우 : 바이쇼 치에코(倍賞千恵子)
음 악 : 핫토리 타카유키(服部隆之)
삽입곡 : "Desperado" By The Ea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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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회, 2개월에 걸쳐 방송된 본 작품은 오래간만에 타이트하고 꽉 짜인 내용이 돋보이는 드라마였다.

父子 관계라는 주된 줄거리 축 안에 재벌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족벌이라는 의미의 가족이 보여주는 품위와 격식의 외양, 재벌이나 권력에 있어서 어떠한 것이 중요한 이슈인지...음모와 계략없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건 없는 것인지..드라마는 주변의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많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게 하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탐하고 그 일로 남편으로 부터 심리적으로 버림받고 자신의 아들을 의심하고 자유롭게 사랑하지 못하는 엄마로 그려지는 여성상은 드라마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상황임에도 썩 유쾌한 캐릭터는 아니다. 드라마의 갈등 구조를 위해서 있을 수 밖에 없는 극적 모티브이며,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주변의 여성의 캐릭터가 작아질 수 있는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여성 캐릭터 자체만으로는 안타까운 면이 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한다면, 이런 여성 캐릭터의 낮은 비중이 비교적 남성 중심으로 짜여진 본 드라메에서는 드라마의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스토리 안에 내용들을 응집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을 한다. 그나마 살아 있는 캐릭터가 만표 집안이 비서이자 가장의 정부 정도의 역할이겠지만, 그녀 역시도 남성으로 활동할 떄 더더욱 그 캐릭터가 돋보이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드라마는 철저한 남자 드라마로 보여진다.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가장 큰 재미의 요소는 부자 간의 해결되지 못한 숙제를 위한 극적 치달음이라기 보다는 키무라 타쿠야 속에 담겨진 테페이 라는 인물상에 대한 매력이 가장 크게 다가왔는데, 드라마 속의 영웅을 영웅답게 만들기 위해서 그려지는 눈에 빤히 보이는 극적인 장치 마저도 알면서 볼 수 있을 만큼 주인공의 캐릭터가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자신과의 싸움, 아버지와의 싸움, 자신의 의지를 관철 시키고자 했으나 실패한 인간이 선택한 죽음이라는 결론마저도 드라마 안에 모티브로 깔려 있는 복선과 한 인간을 인생을 30년 넘게 짓눌러온 존재의 이유에 대한 물음에 다달았을 때는 안타까움을 넘어서는 이해를 안고 있음에 충분히 동감하고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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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재와 삶, 그안에 가족과 일에 대한 의미를 포괄적으로 건드리고 있는 이 대규모 기획 프로젝트는 치열한 승부를 펼치는 거대한 싸움 안에서 서 있는 남자들의 책략과 외로움이 무서울 정도로 처절하게 담겨 있다. 자신이 보다 높은 위치의 인간이 되고 그 힘을 얻기 위해서 처절하게 비인간적인 인물이 되고 철저하게 더러운 인간이 되는 과장을 실날하게 보여준다. 스스로 스스로의 가치와 현재의 이미지 혹은 자신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음에도 마치 도박에 빠져드는 중독자 처럼 승부 앞에서는 스스로의 강인함을 위해서 눈에 보든 것을 버려야 하는 모습이 실로 처절한 것이다. 그 안에서 그래도 그 캐릭터에 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그걸 뛰어 넘으려는 인간이며 이런 류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주인공의 캐릭터이다. 실제 인간 생활에서도 별 것 없는 사람, 혹은 별반 차이 없는 사람들 안에서도 유독 매력이 넘치는 몇몇의 인물듣과 만나게 되면 그 인물이 가진 인간적인 매력에 대해서는 궂이 본인 스스로가 노력한다기 보다 원래부터 그런 매력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되고, 동경하게 되고, 질투하게 되고, 표현하게 되는 것을 드라마 안 캐릭터에서 전형처럼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최고 장점이다. 이런 주인공의 매력점 때문에 드라마를 보는 동안 더욱 더 빠져 들어서 볼 수 밖에 없다.

말랑 말랑한 , 혹은 단순한 주변 잡기들만이 담겨 있는 드라마와 달리 남성들의 선이 굵은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드라마를 통해서 키무라 타쿠야가 가지고 있는 힘이 단순한 일본식 미남 스타일 이상임을...일본의 대중 스타 안에서의 히어로의 면모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족의 치부를 건드리면서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 그 안에서 한 인간이 느낄 수 여러 이면들을 보여주는 복잡한 드라마에서 그의 연기는 극의 가장 큰 소재를 잘 풀어주는 좋은 재료 이상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소재상 국내에 소개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작품 자체만으로는 드라마로서 가질 수 있는 품격이나 가치는 충분히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이 된다. 오래 간만에 선이 굵은 작품을 단숨에 봐 버린 것이  이 드라마가 지니고 있는 내부적인 극적 긴장감의 가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남성적인 구조와 색깔이 속도감 있는 전개로 그 폭발력을 가중 시키는 이 드라마의 가장 큰 가치는 비판할 거리(시아버지가 며느리를 탐한다는 비인간적인 드라마의 모티브는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들다.)를 지니면서도 극에 빠져 들어서 한 인간의 괴로움에 기꺼이 동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힘이 좋은 시나리오에 그걸 스피디하게 녹여내는 연출력에 담겨져 배우들의 일관되고 균형잡인 연기로 폭발되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오류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 된 웰 메이든 드라마로서 충분히 매력이 있는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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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속 명대사 -

인간은 보잘것 없는 존재다
자신을 강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상처입고 그 상처를 스스로 벌려버린다.
어리석고 약한 생물이다 그렇기때문에 인간은 꿈을 꾸는 걸지도 몰라
꿈의 실현은 곤란을 동반하고 때때로 꿈은 사람을 괴롭게 한다.
그럼에도 나는...
미래를 열 수 있는 것은 꿈에 정열을 쏟는 인간의 힘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뜻을 잊었을 때 영광은 전부 끝을 향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째서...
내일의 태양을 보지 못하는 걸까
by kinolife 2007. 9.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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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제목 : Jubaku: Spellbound
1999년, 115분, Color
감 독 : 하라다 마사토(原田眞人)
각 본 : 타카스기 료(高杉良)
          스즈키 사토루(鈴木智)
          키노시타 무기타(木下麦太)
원 작 : 타카스기 료(高杉良)

출 연 : 야쿠쇼 코지(役所廣司)
          나카다이 테츠야(仲代達矢)
          시이나 킷페이(椎名桔平)
          야지마 겐이치(矢島建一)
          나카무라 이쿠지(中村育二)
          와카무라 마유미(若村麻由美)
          후부키 준(風吹ジュン) 
          타키가와 유미(多岐川裕美)
          네즈 진파치(根津甚八)
          사토 케이(佐藤慶)
          이시바시 렌지(石橋蓮司)
          엔도 켄이치(遠藤憲一)
          모타이 마사코(もたいまさこ)
          혼다 히로타로(本田博太郎)
          우메노 야스키요(梅野泰靖)
          코바야시 카츠히코(小林勝彦)  
          야마모토 키요시(山本清)
          카츠베 노부유키(勝部演之)
          와카마츠 타케시(若松武史)
          쿠로키 히토미(黒木瞳)
          나이토 타케토시(内藤武敏)  
          야마사키 세이스케(山崎清介)  
          오오타카 히로오(大高洋夫)  
          오오니시 토모코(大西智子)  
          키노시타 호우카(木下ほうか)  
          키시 히로유키(岸博之)  
          타구치 토모로오(田口トモロヲ)  
          무라카미 준(村上淳)  
          모토미야 야스카제(本宮泰風)  
          타카스기 료(高杉良)  
          유진(遊人)  
          코모토 쿄이치(古本恭一)  
          이마이 아즈사(今井あずさ)  
          오오시로 에이지(大城英司)  
          다이몬 슈조(大門修三)  
          나카무라 료(中村亮)  
          우메자와 켄스케(梅沢健祐)  
          나미키 시로(並樹史朗)  
          타테 고타(殺陣剛太)  
          이노우에 하지메(井上肇)  
          미즈카미 류시(水上竜士)  
          미츠오카 유타로(光岡湧太郎)  
          카토 미츠루(加藤満)  
          아오키 테츠진(青木鉄仁)  
          요시이에 아키히토(吉家明仁)  
          혼고 겐(本郷弦)  
          미우라 하루마(三浦春馬)  
          오오타니 레이나(大谷玲凪)  
          마치다 마사노리(町田政則)  
          요시자키 노리코(吉崎典子)

음 악 : 카와사키 마사히로(川崎真弘)

언젠가 우리 나라에서 일본을 비방하는, 아니 일본의 속을 들여다본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단점들으 재미삼아 씹던 때가 있었다. 전여옥의 베스트셀러 [일본은 없다]에서부터 시작된 일본의 단점 헤집기는 그 비슷한 소재를 다룬 수십권의 책들이 출판되면서 논쟁의 소재과 되고 서점가에서는 유행의 정점이 된 것이었다.

그 이후, 2001년 봄에는 일본 스스로가 그런 소재를 가지고 쓴 소설이 모티브가 된 영화 한편을 국내 극장에서 만날 수가 있다. 소설을 쓰기만 하면 서점가를 긴장시킨다는 미국의 소설가 존 그리샴처럼 일본의 서점가를 들뜨게 하는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다카스키 료(高杉 良). 그의 소설 [금융부식열도]는 출간되자마자 출판사의 예측대로 빅 히트를 기록하며 서점가를 휩쓸고 뒤이어 하라다 마사토(原田眞人)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 제목하여 <쥬바쿠:금융부식열도> .

영화 <주바쿠>를 만든 하라다 마사토 감독은 <카미가제 택시><바운스>등을 통해 일본의 부폐를 소재로 수준 높은 상업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이다. <카미가제 택시>가  일본의 과거 정치계의 부폐를 다루고 있다면 영화 <바운스>는 일본의 십대들을 통해 현재 일본 성문화의 실태와 어른들의 비뚤어진 인생관을 비꼬고 있는 작품이. 그래서 1999년에 그가 선보인 영화 <쥬바쿠-금융부식열도>는 일본의 금융계의 비리를 소재로 하고 있다니 그의 날카로운 영화감각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의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주바쿠> 역시 상업영화의 틀 속에서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긴장감과 사실감을 놓지치는 않는다. 금융계와 정치, 그리고 이들과 연결고리를 놓고 있지 않는 야쿠자의 공포까지 영화 곳곳에는 부폐의 연결고리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물론 전작에 비해 긴장감이나 문학적 혹은 영화적인 드라마 전개는 지루함이라는 또 다른 복병 앞에서 쓰러져 안따까운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야큐쇼 코지와의 작업을 통한 균형을 깨트리지 않는 미덕만은 챙긴다. 평범한 은행원으로 출연한 야큐쇼 코지는 하라다 마사토의 영화에서는 평범함에서 시작해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등장했는데 이번 영화 역시 그의 영화에 걸맞는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바쿠(JUBAKU)'란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초자연적 존재나 신비로운 힘에 사로잡힌다는 뜻을 가진 단어, 그렇다면 영화 속의 주인공인 기타노(야큐쇼 코지)는 금융계 내에서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어떠한 틀 속의 비리에 연루된다는 뜻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보기 전에 이미 제목에서 부터 음모와 암투라는 영화적인 흥미는 충분히 안고 있는 셈이 되며 그 암투가 어떤 결말을 향해 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관객의 또 다른 즐거움일 테다.

일본의 거대함, 그 속에서 최고의 금융계 속에 걸린 덫, 어느 자본주의에서나 볼 수 있는 불법대출과 이에 따르는 해당 은행의 공신력 추락과 은행자체 존립에 대한 불안 등은 영화의 기초적인 문법에 해당되는 영화적인 존재이며, 그 사실을 모르는 은행원들은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부폐에 경악하는 것은 영화의 사건이 된다. 그리고 그 부폐의 시작이 자신이 믿고 있던 선배며 동료였으며, 그도 아닌 이들은 자신의 허물도 모른채 하루하루를 살던 바보에 불과했다는 점은 영화의 철학과 닿아있기도 하다. 부폐를 만드는 자, 알면서도 묵과하는 자, 무엇이 부폐였는지도 인식 못하는 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알게 된 후, 이를 변화시키려는 자, 영화 속의 사람들은 각각의 선택적인 방향 앞에서 쉽게 방관자과 되고 그래서 또 쉽게 패배자가 되는 단계에 대해 철저히 냉정한 시선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영화 <주바쿠>속에서의 악은 강하지 못한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정서이며, 이는 곳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우울한 잔상을 남긴다. 이 영화 속에서도 소재가 단지 금융계이지 악과 선의 기준이 바뀐다거나 인생이 변화한다거나 하는 큰 변화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전의 영화에 비해 <주바쿠> 안에서 그가 지적하고 있는 ‘악’의 실체가 깊게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아따까움까지 엄습한다. 마치 녹이 쓴 펜으로 옛날 이야기를 끄적이듯 충격적이지도, 새롭지도 않게 이야기와 우인공들의 무대만 옮겨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에 있었다는 금융계의 부폐를 실제 몸으로 느껴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영화속의 재미에만 의존해 이 영화를 평가해볼 때 그저그런, 그냥 실패한 상업영화 쯤으로 보이게 한다는 거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단지 그가 건드리고 있는 소재가 다큐멘터리적인 그의 카메라에 의해 진지한듯 보일 뿐, 영화적인 재미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현재 일본의 문제가 영화 속에서 재미가 된다니….마치 이런 문구를 암시하는 듯. '우리 모두는 썩어가도 영화는 만들거다. 그것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사회는 썩어가도…영화는 만들어질 뿐이지', 일본만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사회 속의 악이 들춰진다는 점에서 조금은 씁쓸함을 느낀다. 아! 누구는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영화가 재미없기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반복해서 생각을 하다보니 쓸쓸함의 근저에는 다른 어떤 구체적인 이유보다도, 영화가 재미없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욱 더 커지는 것 같다.  

by kinolife 2006. 10. 1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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