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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50분,
영어 제목 : Spring Snow

감 독 : 유키사다 이사오(行定勳)

각 본 : 이토 치히로(伊藤ちひろ)
          사토 신스케(佐藤信介)
원 작 :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출 연 : 츠마부키 사토시(妻夫木聡)
          타케우치 유코(竹内結子)
          타카오카 소스케(高岡蒼甫)
          오이카와 미츠히로(及川光博)
          타구치 토모로오(田口トモロヲ)
          이시마루 켄지로(石丸謙次郎)
          미야자키 요시코(宮崎美子)

음 악 : 이와시로 타로(岩代太郎)

너무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남성의 냉철함이 보여주는 냉혹한 사랑의 끝에 관한 수필 같은 영화. 일본의 소설가 미시미 유키오의 서늘한 느낌이 그대로 담겨져 느껴지는 영화다. 그의 원작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우울하고 느리게 가는 시절과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살아가는 답답한 시절에 대한 분위기가 영화 안에 가득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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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부터 우연히 연을 맺은 사토코와 키오야키는 각자 커 가면서 아름다운 미소녀와 성숙한 숙녀로 성장한다. 어릴적에 사토코가 키요아키에게 했던 작은 다짐 처럼 언젠가 서로가 원한다면 결코 헤어지지 않을거라는 다짐과 기대를 사토코는 품고 있지만 그에 비해 키요아키는 그런 사토코를 은근히 무시하고 그녀의 마음을 조롱하면서 차가운 시간을 보낸다. 그녀에게 마음을 품는 주변의 친구와 남정내들의 관심을 애써 외면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사토코를 사랑하게 된 키요아키는 황실의 왕녀로 간택된 사토코의 입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애욕에 빠져드는 키요아키는 사토코를 탐하는 건지 진정으로 사랑한 건지 스스로의 혼란 속에서 자신을 망가 트리고 만다.

애써 자신의 사랑을 어필했던 사토코는 키요아키의 차가운 마음에 상처 입고 자신의 위하지 않은 탐욕스런 사랑
애 빠져 들어 결국은 키요아키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 황실의 황녀로 간택된 이후의 이 재앙을 그리고 숨기거나 외면 할 수 없는 키요아키의 사랑 앞에서 좌절하는 사토코...부모아 키요아키의 아버지의 합의에 따라 키요아키의 아이를 지우고 스스로 머리를 깍아 비구니로서의 삶을 선택한 사토코는..자신의 바로 잡고 키요아키의 후회스러운 사랑에 응대하는 방법이 그것 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에 비해 자신의 사랑을 원했던 사토코를 경멸하기 까지 했던 키요아키는 뒤늦게 불타는 사랑을 깨닫지만, 사토코의 고통 앞에서 힘을 쓸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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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화를 배경으로 새로운 문물 앞에서도 여전히 낡은 세습 안에서 움직이는 일본의 권력층을 무대로 단아하지만 스스로의 선택에 단호한 여성과 그에 비해 우유부단하면서도 무책임하고 어린 남자와의 사랑을 통해서 격변하는 사회의 음울함을 보여주는 지극히 문학적인 영화...마치 책을 읽듯이 느리게 그리고 조용히 진행되는 영화는 이 두 주인공의 답답한 일상을 통해서 적잖이 견디기 힘든 시대에 대한 잔상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고 궁극에는 자신을 망쳐버린 남자의 우유부단함과 뒤늦은 후회가 마치 영화의 제목 봄의 눈처럼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따뜻한 땅에 꽃을 피우는 봄에 눈을 내리는 이 철 없는 눈처럼 스스로는 비난하고 인정하지 않았던 남자처럼 뒤늦은 후회가 영화 안을 가득 메운다. 주인공을 맡은 두 배우들의 어설픈 성숙한 연기 역시도 영화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잘 어울려 묻어 난다.

지루한 시대, 답답한 영화처럼 영화는 그 느낌 그대로 한 없이 나즈막하다. 스산한 영화 한편...지루함 속에서 별로 큰 감흥을 남기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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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life 2008. 3. 31. 17:32
영어 제목 : KAMIKAZE TAXI
제 작: 1995년,  140분(완전판 169분)
감 독 : 하라도 마사토(原田眞人)
각 본 : 하라도 마사토(原田眞人)

출 연: 야쿠쇼 코지(役所廣司)
,        타카하시 카즈야(高橋和也)
,        카타오카 레이코(片岡礼子)
         나이토 타케토시(内藤武敏)
         야지마 켄이치(矢島健一)
         믹키 커티스(ミッキー カーチス)
         타구치 토모로오(田口トモロヲ)
         네기시 토시에(根岸とし江)
         시오야 토시(塩屋俊)
 
음 악 :  카와사키 마사히로(川崎真弘)

조직을 배신해 야쿠자로부터 도망하는 남자 타츠오는 가까스로 택시를 잡아타고는 조금은 안심하게 된다. 이 택시를 운전하는 운전수는 페루에 이민갔다가 일본으로 돌아와 택시를 몰며 생계를 유지하는 칸다케. 칸다케는 오랜동안 일본에서 떨어져 살아 일본어는 물론, 일본의 지리도 서툰 탓에 이 둘은 몇몇의 대화를 주고 받으며 승객과 운전수 치고는 꽤 긴 인간관계를 트게 된다. 도망가는 남자와 그 남자의 도움을 받으며 운전하는 운전수, 어느새 이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면서 영화 <카미카제 택시>는 시작이 된다.  

한 명은 도망을 다니면서 느끼게 되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나누는 상대로, 다른 한명은 그와의 느닷없는 여행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여행같은 도주는 그들을 따르는 야쿠자들에 의해 더욱 더 속도가 빨라 지게 되고 이들이 탄 택시의 속도도 이와 함께 빨라지면서 영화의 속도도 긴박감을 더해 가는 이 영화는 1995년 제작된 작품으로 국내에는 1998년 제 2회 부천 영화제를 통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영이 된 적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야쿠자로부터 도주하는 한 남자 이야기 속에 사회성 짙은 영화적인 아이콘들이 극의 사실성을 살리고 있는 작품으로 각각의 캐릭터 들이 영화의 속도감에 따라 더욱 더 빛나는 것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일본계 이민 노동자들의 이야기(영화 도입부의 다큐멘터식의 접근은 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더 자극한다.), 일본의 세계 대전 참여, 여성문제, 야쿠자를 비롯한 일본내의 부페상 등 영화 곳곳에는 단순히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독 하라도 마사토가 일본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로 가득해 감독의 정치적인 성향도 엿 볼 수 있게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이야기 구조와 일본적인 직업을 가진 캐릭터들의 사실적인 묘사 이외에도 이 영화는 독특한 매력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하라도 마사토와 같이 작업을 많이 한 베테랑 배우 중 하나인 배우 야쿠쇼 코지가 보여주는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를 드러내 준다. 택시를 세워두고 안데스의 피리를 부는 모습은 겉멋을 지닌 주인공의 매력을 서정적인 감성으로 가득 채워주며, 일본의 부폐를 처단하기 위해 야구망망이를 들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그의 모습은 현대의 전사로서 손색이 전혀 없는 모습으로 <글래디에이터>의 러셀 크러우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런 야쿠쇼 코지의 영화적인 매력 역시도 타이트 하면서도 빠른 전개를 보여주는 하라도 마사토의 연출력에 의해 그 가치가 빛난다. 영화의 매력 이외에도 다른 의미에서는 상업영화에서 영화가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독특하다. 두 시간이 훌쩍 넘는 긴 상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거나 고답적이지 않으며,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담고있어서 하라도 마사토 감독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으로 이 영화를 보는 많은 이들에게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수작임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인생에 큰 의미를 던지는 화두는 아니지만, 극적 구성에 의해 영화적인 재미를 충분히 살리고 있는 '가미가제 택시 Kamikaze Taxi'에 한번쯤은 타 볼만하다고 자신있게 이 택시의 콜 번호를 알려주고 싶니다. 그 택시 안에서는 안데스 피리와 야구방망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보여주는 인간사의 일면을 볼 수 있으며, 그 택시에서 내릴 땐 저절로 시원한 웃음을 얻게 된다. 영화적인 결말이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리 낙심할 수준은 아니다. 그 택시를 타고 있었던 여행은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것이며, 그 택시를 몰던 운전수는 배우로, 영화 속의 한 캐릭터로 오랜동안 기억을 지배할 것이다. 드라마와 캐릭터가 살아있는 그 안에 삶에 대한 작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박력넘치는 영화를 만나기란 그다지 쉬운일이 아닌데 이 영화는 그런 행운은 느끼게 한다.
by kinolife 2006. 10. 3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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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제목 : Jubaku: Spellbound
1999년, 115분, Color
감 독 : 하라다 마사토(原田眞人)
각 본 : 타카스기 료(高杉良)
          스즈키 사토루(鈴木智)
          키노시타 무기타(木下麦太)
원 작 : 타카스기 료(高杉良)

출 연 : 야쿠쇼 코지(役所廣司)
          나카다이 테츠야(仲代達矢)
          시이나 킷페이(椎名桔平)
          야지마 겐이치(矢島建一)
          나카무라 이쿠지(中村育二)
          와카무라 마유미(若村麻由美)
          후부키 준(風吹ジュン) 
          타키가와 유미(多岐川裕美)
          네즈 진파치(根津甚八)
          사토 케이(佐藤慶)
          이시바시 렌지(石橋蓮司)
          엔도 켄이치(遠藤憲一)
          모타이 마사코(もたいまさこ)
          혼다 히로타로(本田博太郎)
          우메노 야스키요(梅野泰靖)
          코바야시 카츠히코(小林勝彦)  
          야마모토 키요시(山本清)
          카츠베 노부유키(勝部演之)
          와카마츠 타케시(若松武史)
          쿠로키 히토미(黒木瞳)
          나이토 타케토시(内藤武敏)  
          야마사키 세이스케(山崎清介)  
          오오타카 히로오(大高洋夫)  
          오오니시 토모코(大西智子)  
          키노시타 호우카(木下ほうか)  
          키시 히로유키(岸博之)  
          타구치 토모로오(田口トモロヲ)  
          무라카미 준(村上淳)  
          모토미야 야스카제(本宮泰風)  
          타카스기 료(高杉良)  
          유진(遊人)  
          코모토 쿄이치(古本恭一)  
          이마이 아즈사(今井あずさ)  
          오오시로 에이지(大城英司)  
          다이몬 슈조(大門修三)  
          나카무라 료(中村亮)  
          우메자와 켄스케(梅沢健祐)  
          나미키 시로(並樹史朗)  
          타테 고타(殺陣剛太)  
          이노우에 하지메(井上肇)  
          미즈카미 류시(水上竜士)  
          미츠오카 유타로(光岡湧太郎)  
          카토 미츠루(加藤満)  
          아오키 테츠진(青木鉄仁)  
          요시이에 아키히토(吉家明仁)  
          혼고 겐(本郷弦)  
          미우라 하루마(三浦春馬)  
          오오타니 레이나(大谷玲凪)  
          마치다 마사노리(町田政則)  
          요시자키 노리코(吉崎典子)

음 악 : 카와사키 마사히로(川崎真弘)

언젠가 우리 나라에서 일본을 비방하는, 아니 일본의 속을 들여다본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단점들으 재미삼아 씹던 때가 있었다. 전여옥의 베스트셀러 [일본은 없다]에서부터 시작된 일본의 단점 헤집기는 그 비슷한 소재를 다룬 수십권의 책들이 출판되면서 논쟁의 소재과 되고 서점가에서는 유행의 정점이 된 것이었다.

그 이후, 2001년 봄에는 일본 스스로가 그런 소재를 가지고 쓴 소설이 모티브가 된 영화 한편을 국내 극장에서 만날 수가 있다. 소설을 쓰기만 하면 서점가를 긴장시킨다는 미국의 소설가 존 그리샴처럼 일본의 서점가를 들뜨게 하는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다카스키 료(高杉 良). 그의 소설 [금융부식열도]는 출간되자마자 출판사의 예측대로 빅 히트를 기록하며 서점가를 휩쓸고 뒤이어 하라다 마사토(原田眞人)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 제목하여 <쥬바쿠:금융부식열도> .

영화 <주바쿠>를 만든 하라다 마사토 감독은 <카미가제 택시><바운스>등을 통해 일본의 부폐를 소재로 수준 높은 상업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이다. <카미가제 택시>가  일본의 과거 정치계의 부폐를 다루고 있다면 영화 <바운스>는 일본의 십대들을 통해 현재 일본 성문화의 실태와 어른들의 비뚤어진 인생관을 비꼬고 있는 작품이. 그래서 1999년에 그가 선보인 영화 <쥬바쿠-금융부식열도>는 일본의 금융계의 비리를 소재로 하고 있다니 그의 날카로운 영화감각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의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주바쿠> 역시 상업영화의 틀 속에서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긴장감과 사실감을 놓지치는 않는다. 금융계와 정치, 그리고 이들과 연결고리를 놓고 있지 않는 야쿠자의 공포까지 영화 곳곳에는 부폐의 연결고리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물론 전작에 비해 긴장감이나 문학적 혹은 영화적인 드라마 전개는 지루함이라는 또 다른 복병 앞에서 쓰러져 안따까운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야큐쇼 코지와의 작업을 통한 균형을 깨트리지 않는 미덕만은 챙긴다. 평범한 은행원으로 출연한 야큐쇼 코지는 하라다 마사토의 영화에서는 평범함에서 시작해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등장했는데 이번 영화 역시 그의 영화에 걸맞는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바쿠(JUBAKU)'란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초자연적 존재나 신비로운 힘에 사로잡힌다는 뜻을 가진 단어, 그렇다면 영화 속의 주인공인 기타노(야큐쇼 코지)는 금융계 내에서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어떠한 틀 속의 비리에 연루된다는 뜻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보기 전에 이미 제목에서 부터 음모와 암투라는 영화적인 흥미는 충분히 안고 있는 셈이 되며 그 암투가 어떤 결말을 향해 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관객의 또 다른 즐거움일 테다.

일본의 거대함, 그 속에서 최고의 금융계 속에 걸린 덫, 어느 자본주의에서나 볼 수 있는 불법대출과 이에 따르는 해당 은행의 공신력 추락과 은행자체 존립에 대한 불안 등은 영화의 기초적인 문법에 해당되는 영화적인 존재이며, 그 사실을 모르는 은행원들은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부폐에 경악하는 것은 영화의 사건이 된다. 그리고 그 부폐의 시작이 자신이 믿고 있던 선배며 동료였으며, 그도 아닌 이들은 자신의 허물도 모른채 하루하루를 살던 바보에 불과했다는 점은 영화의 철학과 닿아있기도 하다. 부폐를 만드는 자, 알면서도 묵과하는 자, 무엇이 부폐였는지도 인식 못하는 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알게 된 후, 이를 변화시키려는 자, 영화 속의 사람들은 각각의 선택적인 방향 앞에서 쉽게 방관자과 되고 그래서 또 쉽게 패배자가 되는 단계에 대해 철저히 냉정한 시선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영화 <주바쿠>속에서의 악은 강하지 못한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정서이며, 이는 곳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우울한 잔상을 남긴다. 이 영화 속에서도 소재가 단지 금융계이지 악과 선의 기준이 바뀐다거나 인생이 변화한다거나 하는 큰 변화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전의 영화에 비해 <주바쿠> 안에서 그가 지적하고 있는 ‘악’의 실체가 깊게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아따까움까지 엄습한다. 마치 녹이 쓴 펜으로 옛날 이야기를 끄적이듯 충격적이지도, 새롭지도 않게 이야기와 우인공들의 무대만 옮겨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에 있었다는 금융계의 부폐를 실제 몸으로 느껴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영화속의 재미에만 의존해 이 영화를 평가해볼 때 그저그런, 그냥 실패한 상업영화 쯤으로 보이게 한다는 거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단지 그가 건드리고 있는 소재가 다큐멘터리적인 그의 카메라에 의해 진지한듯 보일 뿐, 영화적인 재미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현재 일본의 문제가 영화 속에서 재미가 된다니….마치 이런 문구를 암시하는 듯. '우리 모두는 썩어가도 영화는 만들거다. 그것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사회는 썩어가도…영화는 만들어질 뿐이지', 일본만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사회 속의 악이 들춰진다는 점에서 조금은 씁쓸함을 느낀다. 아! 누구는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영화가 재미없기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반복해서 생각을 하다보니 쓸쓸함의 근저에는 다른 어떤 구체적인 이유보다도, 영화가 재미없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욱 더 커지는 것 같다.  

by kinolife 2006. 10. 14. 21:48

2006년, 119M, Color
감 독 :  니시카와 미와(西川美和)
각 본 : 니시카와 미와(西川美和)
원 안 : 니시카와 미와(西川美和)   


출 연 : 오다기리 죠(小田切 譲)
          카가와 테루유키(香川照之)
          이부 마사토(伊武雅刀)
          카니에 케이조(蟹江敬三)
          키무라 유이치(木村祐一)
          아라이 히로후미(新井浩文)
          마키 요코(真木よう子)
          피에르 타키(ピエール瀧)
          타구치 토모로오(田口トモロヲ)

음 악 : Cauliflowers

오다기리 죠가 머길래....이 영화를 보기 전에 사전 정보는 오다기리 죠 오다기리 죠 오다기리 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의해 발탁당한 것도 여성인 것도 혹은 일본영화의 신예가 주는 현재 일본 영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것도 그닥 정보화 되지 못한 영화..어찌보면 오다기리 죠의 매력에 의해 이 영화의 감수성이 뭍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형제의 이야기...주목받지 못한 인생에 대한 변방의 관심에 대한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작은 영화...순수한 삼각관계를 생각하다 극장을 나올 때는 조금은 허탈한...우리나라에선 절대 소재화 될 수 없는 일본색 강한 영화...그게 유레루였다.
형제의 만남이 각 개인의 성장과 함께 어떻게 변화하고 익어가는지 보여주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영화적인 단면은 형제 이야기를 표피에 깔고 있지만 결국엔 개인의 고민을 담은 철저한 개인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촌 구석에서 아버지의 주유소를 불려받아 운영하는 넉수그레 형과(주유소 정도면 경영이라는 단어를 써도 좋으련만 영화속의 형은 운영이 더 울린다.) 도쿄에서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는 킹카 동생...자주 연락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어머님 장례에선 말 못할 정을 나눌 수 있는 피를 나눈 형제..이들은 그런 가족관계 안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 형제로서의 관계보다는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할 줄도 드러내지도 못하고 언제나 자신의 환경과 모습에서 도피해 온 동생,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멋들어지는 일을 하는 동생이 자신의 모습에 비춰서 한없이 비교되는 형인 한 인간로서의 각각의 캐릭터가 더 강하게 그려진다. 물론 그런 동생이 더 돋보이고 탐 나는 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도 물론이겠다. 영화는 이 둘의 현재 모습이 한 여자 때문에 발생한 죽음을 통해서 어떻게 심화되어 이들의 관계를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데 그런면에서 법정이라는 장소와 면회실이라는 장소는 더 없이 깊게 울리는 장치로 보여진다.

형제애와 인간성의 본질 사이를 줄다리기 하는 이 영화의 매력은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격하게 폭팔하는지 얼마나 이성적인 현실을 무시해가면서 스스로를 보호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인데. 보다 개인적인 성향을 드러내면서 둘과 얽혀 있는 여자의 죽음을 보다 미스터리 하게 풀어서 과연 서로에게 있어 가해자가 누구인지 관객에게 그 결정권을 주는 연출이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이란 그저 덜 떨어진 형제의 무모한 흠집내기 아닌가 싶은것이 조금은 김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외람되지만 형제의 외모가 너무 차이난다는 점. 이런 면에서는 형도 매력이 있으나 스스로 알지 못하고 그래서 인정하지 못하는 유약자로 비쳐지면 보다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형이 좀 더 외모적으로 매력이 숨겨져 있는 사람이면 서 영화 중간 중간에 아니 형도 괜찮은데 왜 그러지...이런 느낌으로 비쳐 졌으면 어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인지 모르겠다. 실제 상당수 관객이 너무 쉽게 오다기리 죠의 심리 상태에 오버랩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 아쉽다.
다리를 지난 사람(타게루, 동생)과 다리를 건너지 못한 사람(미노루, 형)의 이야기에서 우리 살아가는 게 결국은 다리를 지나는 것과 그러지 못한 사람간의 간극이 있고 그 차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삶의 질을 그리고 타인이 보는 내 삶의 질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그 인간을 평가하고 재단하는게 아닌가 생각하게끔 한다. 그 다리가 흔들거리는 다리이든, 삐까뻔쩍한 금교이든...건넌자가 있고 건너고자 하는 자가 있고, 건널 수 없는 사람이 있고 건너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고 또 이미 건낸 사람이 있듯 스스로의 평가가 현실적으로 명확하지 않았던 이 두 형제에게 있어서 영화 속의 다리는 건너고 안 건너고의 현실적인 결과보다는 이 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경계선에 묶여서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영화속의 대사처럼 별 볼일 없는 인생에의 도피는 이 두 형제 모두에겐 실패였으니까...

모처럼...정말 몇 年만이라고 해도 좋을 극장 구경이 흥쾌함보단 미진함이 후렴함 보다는 답답함이 스며드는건 Unhappy Line, Unclear Bridge가 영화 속에 내내 엄습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의 마지막, 상영날 극장의 로비에는 영화 속에서 오다기리 죠가 입었던 의상을 전시하고 있었는데...이 극장스러운 소박한 이벤트인 이 옷마저 을씨년 스럽게 느껴졌다. 서늘한 가을이라 그런가....

 
by kinolife 2006. 10. 12.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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