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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작 : NTV
방영타이틀 : 24시간 TV 사랑은 지구를 구한다
방 영 : 2007.08.18

감 독 : 아메미야 노조미(雨宮望)
각 본 : 요시다 토모코(吉田智子)
원 작 : 야마자키 토시코(山崎敏子)

출 연 :  타키자와 히데아키(滝沢秀明) 
           후카다 쿄코(深田恭子)  
           타케이 아카시(武井証)  
           사사키 마오(佐々木麻緒)  
           스즈키 안즈(鈴木杏樹)  
           키무라 유이치(木村祐一)  
           토다 케이코(戸田恵子)  
           카츠무라 마사노부(勝村政信)  
           이즈미야 시게루(泉谷しげる)  
           나츠야기 이사오(夏八木勲)  
           나카지마 히로코(中島ひろ子)  
           시라카와 미나미(白川みなみ)

음 악 : 하케타 타카후미(羽毛田丈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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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17살 철부지 엄마 아빠와 함께 보다 어른스럽게 큰 나오의 병적 일기를 담은 담백한 드라마. 일본의 대표적인 아역배우가 아닌가 싶은 타케이 아카시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부모 역으로 나온 타키자와 히데아키와 후카다 쿄코의 안정적인 연기도 드라마에 문안한 진행을 돕는다. "오줌이 빨개"라는 몸의 이상증후를 시작으로 730일 동안 병마와 싸우다 간 첫아들과의 시간을 통해서 보다 어른스럽게 성장하는 부모의 이야기 이다. 드라마 속의 죽은 아이는 무서울 정도로 의젓하지만, 병은 그런 의젓함을 비웃듯 고통 뒤에 긴 수면만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사람으로써 아버지로써, 가족으로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아이를 둔 엄마로써 가슴이 아플 수 밖에 없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오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살짝 울음을 감추기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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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극화 된 것이고, 드라마 속의 진실성은 있는 현실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수긍하고 낙마하면서 성장해 가는 드라마 속의 인물들을 통해 삶에 대한 의미 제시를 보다 진하게 한다는 데 있다. 그런 진실성은 드라마를 보는 이들에게 현재의 보는이의 삶에 대한 가치를 보다 크게 한다는 데서 이련 류의 드라마는 의미가 있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짧은 드라마 이지만, 영화처럼 간결하고 깔끔한 구성 덕에 보는 동안 별로 불편하거나 지루한 점은 없었다. 소재의 한계에 의해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있으나 그 역시 삶이 아름다운 만큼 용서가 된다. 드마마 속엥서 죽어가는 꼬아 마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벌레들이 자신의 외피를 벗고 다시 태어나고  또 고통스러운 탄생과는 달리 짧게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진정 드라마 속의 비유 속 우화가 아닐 수 없다. 내세를 믿거나 믿지 않거나 죽지 않고서는 사실적으로 확인 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의미는 믿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봤을 때 이 짧은 인생에서 그 부활에 대한 믿음만이 큰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름이 어려워서 몇일이 지난 이후는 생각이 안 나지만, 나비가 가지고 있는 저 화려함이 더더욱 드라마 속의 주인공을 안타깝게 그려지는 것은 역시 지능적인 드라마 속의 장치가 아닐 수 없다. 죽어가는 아이가 좋아하고 바라는 것이 지극히 소박하고 삶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기에 더욱 더 아프게 다가온다. 눈물 찔끔.. 잠시 삶에 대한 속도감을 늦추고 현재를 돌아봄직도 하게 여운을 주는 드라마.

by kinolife 2007. 10. 10. 02:41

2006년, 119M, Color
감 독 :  니시카와 미와(西川美和)
각 본 : 니시카와 미와(西川美和)
원 안 : 니시카와 미와(西川美和)   


출 연 : 오다기리 죠(小田切 譲)
          카가와 테루유키(香川照之)
          이부 마사토(伊武雅刀)
          카니에 케이조(蟹江敬三)
          키무라 유이치(木村祐一)
          아라이 히로후미(新井浩文)
          마키 요코(真木よう子)
          피에르 타키(ピエール瀧)
          타구치 토모로오(田口トモロヲ)

음 악 : Cauliflowers

오다기리 죠가 머길래....이 영화를 보기 전에 사전 정보는 오다기리 죠 오다기리 죠 오다기리 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의해 발탁당한 것도 여성인 것도 혹은 일본영화의 신예가 주는 현재 일본 영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것도 그닥 정보화 되지 못한 영화..어찌보면 오다기리 죠의 매력에 의해 이 영화의 감수성이 뭍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형제의 이야기...주목받지 못한 인생에 대한 변방의 관심에 대한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작은 영화...순수한 삼각관계를 생각하다 극장을 나올 때는 조금은 허탈한...우리나라에선 절대 소재화 될 수 없는 일본색 강한 영화...그게 유레루였다.
형제의 만남이 각 개인의 성장과 함께 어떻게 변화하고 익어가는지 보여주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영화적인 단면은 형제 이야기를 표피에 깔고 있지만 결국엔 개인의 고민을 담은 철저한 개인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촌 구석에서 아버지의 주유소를 불려받아 운영하는 넉수그레 형과(주유소 정도면 경영이라는 단어를 써도 좋으련만 영화속의 형은 운영이 더 울린다.) 도쿄에서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는 킹카 동생...자주 연락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어머님 장례에선 말 못할 정을 나눌 수 있는 피를 나눈 형제..이들은 그런 가족관계 안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 형제로서의 관계보다는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할 줄도 드러내지도 못하고 언제나 자신의 환경과 모습에서 도피해 온 동생,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멋들어지는 일을 하는 동생이 자신의 모습에 비춰서 한없이 비교되는 형인 한 인간로서의 각각의 캐릭터가 더 강하게 그려진다. 물론 그런 동생이 더 돋보이고 탐 나는 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도 물론이겠다. 영화는 이 둘의 현재 모습이 한 여자 때문에 발생한 죽음을 통해서 어떻게 심화되어 이들의 관계를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데 그런면에서 법정이라는 장소와 면회실이라는 장소는 더 없이 깊게 울리는 장치로 보여진다.

형제애와 인간성의 본질 사이를 줄다리기 하는 이 영화의 매력은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격하게 폭팔하는지 얼마나 이성적인 현실을 무시해가면서 스스로를 보호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인데. 보다 개인적인 성향을 드러내면서 둘과 얽혀 있는 여자의 죽음을 보다 미스터리 하게 풀어서 과연 서로에게 있어 가해자가 누구인지 관객에게 그 결정권을 주는 연출이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이란 그저 덜 떨어진 형제의 무모한 흠집내기 아닌가 싶은것이 조금은 김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외람되지만 형제의 외모가 너무 차이난다는 점. 이런 면에서는 형도 매력이 있으나 스스로 알지 못하고 그래서 인정하지 못하는 유약자로 비쳐지면 보다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형이 좀 더 외모적으로 매력이 숨겨져 있는 사람이면 서 영화 중간 중간에 아니 형도 괜찮은데 왜 그러지...이런 느낌으로 비쳐 졌으면 어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인지 모르겠다. 실제 상당수 관객이 너무 쉽게 오다기리 죠의 심리 상태에 오버랩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 아쉽다.
다리를 지난 사람(타게루, 동생)과 다리를 건너지 못한 사람(미노루, 형)의 이야기에서 우리 살아가는 게 결국은 다리를 지나는 것과 그러지 못한 사람간의 간극이 있고 그 차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삶의 질을 그리고 타인이 보는 내 삶의 질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그 인간을 평가하고 재단하는게 아닌가 생각하게끔 한다. 그 다리가 흔들거리는 다리이든, 삐까뻔쩍한 금교이든...건넌자가 있고 건너고자 하는 자가 있고, 건널 수 없는 사람이 있고 건너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고 또 이미 건낸 사람이 있듯 스스로의 평가가 현실적으로 명확하지 않았던 이 두 형제에게 있어서 영화 속의 다리는 건너고 안 건너고의 현실적인 결과보다는 이 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경계선에 묶여서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영화속의 대사처럼 별 볼일 없는 인생에의 도피는 이 두 형제 모두에겐 실패였으니까...

모처럼...정말 몇 年만이라고 해도 좋을 극장 구경이 흥쾌함보단 미진함이 후렴함 보다는 답답함이 스며드는건 Unhappy Line, Unclear Bridge가 영화 속에 내내 엄습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의 마지막, 상영날 극장의 로비에는 영화 속에서 오다기리 죠가 입었던 의상을 전시하고 있었는데...이 극장스러운 소박한 이벤트인 이 옷마저 을씨년 스럽게 느껴졌다. 서늘한 가을이라 그런가....

 
by kinolife 2006. 10. 12.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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