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림 : 송진헌
출판사 : 창작과 비평사
출판일 : 2003년 04 초판 1쇄
가격 : 9,800

아이에게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라는 말 보다는 "친구들에게 니 스스로 좋은 친구가 되어라"라는 말을 이 책과 함께 전해주고 싶다면 너무 무거운 걸까...

조금은 우울하고 조금은 무거운 듯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 [삐비 이야기]는 한 개인의 과거에 머물로 있는 친구에 대한 고백처럼 아프게 읽힌다. 책 내용은 조금은 이상한 기운을 전해주는 한 아이와의 짧은 만남을 주인공의 변화에 따라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상하게 관심이 가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그러자니 학교에서 내가 그 친구처럼 친구가 없어질 것 같은 두려움..그러한 것들이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친구를 취하고 버려야 하는지 고민하게 해야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꽤 많이 잔인한 구석이 있다. 어린 나이게 겪을 만한 이 이야기는 최근 들어 아주 심각해지는 왕따, 외톨이와 연관이 되어 있어서 쉽사리 그 가이드를 전해주고 결론내리기가 쉽지 않다.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한다면 주변의 시선보다 내 가슴이 원하는 행동하라!고 하는 지침 까지 확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이후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지침을 전해 주기란 또 쉽지 않다. 사회적인 의식으로까지 확장해 보자면, 소수민, 인권, 사회적 보호 등등.. 어찌 보면 이러한 문제는 평생 끼고 고민하고 또 답을 내고 내 그 답을 다시 뒤집고 행동하고 또 그 결과를 다시 바로 잡고 해 나가야 할 일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나이(40)이 되고보니..친구는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말을 해 주고 싶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의미없는 숫자라고 할지라도 의미 없지 않음을 알기에 무엇 하나 전해주기란 쉽지가 않다, 어렵고 대답없는 일들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조금 더 미루어 되어야 겠다. 이 책을 읽어주어도 무얼 이야기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을 것 같으니...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중년의 엄마는 생각이 많아졌다.
by kinolife 2011. 1. 16.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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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은출판사: 창작고 비평사
0000.00.00 초판 1쇄
가격: 2.500원
창비시선(041)














- 바람 부는 날 -

바람 부는 날
바람이 빨래 펄럭이는 날
나는 걸레가 되고 싶다
비굴하지 않게 걸레가 되고 싶구나
우리나라 오욕과 오염
그 얼마냐고 묻지 않겠다.
오로지 걸레가 되어
단 한 군데라도 겸허하게 닦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감방 닦던 시절
그 시절 잊어버리지 말자

나는 걸레가 되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더러운 한평생 닦고 싶구나

닦은 뒤 더러운 걸레
몇번이라도
몇번이라도
못견디도록 행구어지고 싶구나
새로운 나라 새로운 걸레로 태어나고 싶구나

- 旗 -

아무리 어두울지라도
어둡다고 호소하지 맙시다
입 다물어 버리고
밤 하늘의 어둠 속으로
기를 올립시다

내일 북동한설에 휘날릴 깃발아래
우리는 서야 합니다.
휘날리는 것 없이
어찌 그것이 삶이겠습니까

어둡다고 호소하지 맙시다
우리는 꿋꿋하게 서야 합니다
단 하나로 휘날리는 깃발아래
우리는 우리끼리 서야 합니다

빈 백양나무들 언제까지나 서 있습니다.
어둠속으로
어둠속으로
우리도 묵묵히 서서 기를 올립시다

마침내 어둠까지도 커다란 깃발인 그 날을 위하여
우리에게 이 어둠이 얼마나 환희 입니까

- 너울 -

바람 하나 없다
나에게 너무 큰 적이여
너울이여
울지 못하는 짐승에게
울음을 주어라
쓰러지면 안된다
잎이란 죽음에 없다
날으는 새에게
집 없는 민중에게
집을 주어라
나라를 주어라

우리나라에는 지평선 대신
가는 곳 마다
수평선이 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수평선이 있어야 민중이 있다
지금 수평선에는
바람 하나 없다
크나큰 너울 뿐이다
온 세상에게 성난 여울이여
나는 너에게 가야 한다
나는 너에게 가야 한다.
by kinolife 2007. 1. 2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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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시영
출판사: 창작고 비평사
0000.00.00 초판 1쇄
가격: 2.500원
창비시선(010)

- 引火 -

아무도 눕지 않은 깊은 밤, 주검 곁에서 일어난
가난한 마음이 켜고 있는 불을 보아라
한 마음이 다른 마음을 위하여
숨 죽이며 켜고 있는 불을 보아라
이 밤이 지샐 때까지, 고요 뒤에 노리고 선
첩첩의 눈이 뚫릴 때까지
돌에 눌린 가슴을 찾아
이웃에서 이웃으로 몰래몰래 깜빡이는
한 사람의 새벽 불을 모아라.






- 이름 -

밤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때
잠시라도 잊었을 때
채찍 아래서 우리를 부르는 뜨거운 소리를 듣는다.

이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는 누구에게도 가야 한다.
우리가 가기를 멈췄을 때
혹은 가기를 포기 했을 때
칼자욱을 딛고서 오는 그이의
아픈 발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누구인가를 불러야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로 가야 한다.
대낮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
형제의 찬 손일지라도

언젠가는 피가 돌아
고향의 논둑을 더듬는 다른 날선 낫이 될지라도
오는 조인 목을 뽑아
우리는 그에게로 가야만 한다
부르다가 쓰러져 그의 돌이 되기 위해
가다가 멈춰 서서 그의 짐승이 되기 위해

 - 갈 길 -

가야 할 길은 하나
등 뒤에 쓰러진 벗들, 발목을 붙들고
같이가자 소리쳐도
뿌리치고 걸어야 할 길은 하나
저 태양소리 없는 눈을 뒤집어 쓰고
까무러치는 곳
돌덩이 같은 달 파랗게 박힌 하늘로
지평선으로

부러진 팔 쓰린 눈으로
더듬어 찾아야 할 것은 하나
움켜쥐고 낯 비벼야 할 건은 하나
웃음으로 잠들어야 할 것은 하나
거기에 가서

목메이게 불러야 할 것은 하나
흔들어야 할 깃발은 하나
싸움이 끝난 땅에서
칼날이 잠든 땅에서

그러나 이내 걸어야 할 길
숨 막힌 방 쪽을 뚫고
갑옷을 뚫고
가야 할 길은 천리
함께 걸어야 할 그리움에
몸부림 치는 이름없는 벗들
못내 떨치고 가야 할 길은 만리
                              
by kinolife 2007. 1. 24. 09:16
글: 안도현
출판사: 창작고 비평사
1997.07.15 초판 1쇄
가격: 5.000원
창비시선(163)

-사랑-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섬-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번 가봐라, 그 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게 뭔가
삶이란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두눈 밝혀야 하리

-바람이 부는 까닭-

바람이 부는 까닭은
미루나무 한 그루 때문이다.

미루나무 이파리 수천, 수만 장이
제 몸을 뒤집었다 엎었다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흔들고 싶거든,
자기 자신을 먼저 흔들 줄 알아야 한다고
by kinolife 2006. 10. 2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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