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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일본 영화, 146분
영문제목 : All About Lily Chou-Chou

감 독 : 이와이 슌지(岩井俊二)
각 본 : 이와이 슌지(岩井俊二)
 
출 연 : 이치하라 하야토(市原隼人)
          오시나리 슈고(忍成修吾)
          이토 아유미(伊藤歩)
          아오이 유우(蒼井優)
          오오사와 타카오(大沢たかお)
          이나모리 이즈미(稲森いずみ)

음 악 : 코바야시 타케시(小林武史)

이와이 슌지... 일본 여고생들의 맹주로 불러도 좋을만큼 특별한 감수성을 가진 이 감독을 추앙했던 90년대가 지나고 2009년도에 보는 그의 이 작품에 대한 나의 인상은 감정의 과잉으로 인한 소화 불량이었다.

인터넷 세대로 표현될만한 청소년들의 채팅글을 주된 의미 전달의 수단으로 쓰며 그 방법 그대로 그들의 색깔로 중무장 된 이미지들 만을 쏟아낸다. 어떠한 특별한 줄거리나 이야기 전개와 상관없이 메신져의 단문들은 영화의 분위기를 주도하듯이 영화의 중간 중간에 등장하며 이야기의 맥을 끊는 듯한 방법으로 영화를 이어간다. 이런 식의 전개가 새롭다기 보다는 불편하다니..역시 나도 이젠 기성세대 임이 분명하다.

고민이 한창 많을 청소년. 그 중 하나인 유이치. 그가 벅차게 자신을 압박해오는 현실을 도피 할 수 있는 방편은 '릴리 슈슈'의 음악에 탐닉하는 것 뿐이다.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는 설정이지만, 그 노래 하나에 청춘의 모두를 맡기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는 위태로운 청춘만큼이나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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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해야 할 시기의 아이들이 소비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분위기라 생각된다. 생산적인 활동이라는 것이 모호한 시기라는 점에서 영화의 불분명함은 예기된 것이었겠지만, 영화 속의 아이들은 그 시기의 방황을 넘어서는 혼돈 속에 갇혀 잇는 것 같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음악 역시도 이런 기운을 배가 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런 불확실하면서도 애매모호한 분위기를 즐기는 슌지 피플들에게는 환호받을 만하겠지만, 깔끔한 구성에 소소한 재미를 즐기는 나 같은 관객에게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미지 과잉으로 인한 소화 불량에 휩싸이게 한다. 아님 영화가 탄생한지 8년이 훌쩍넘은 시간 차가 내가 영화릐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원인 중에 하나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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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아이들과 잘 섞이지 못하고 이지매를 당하는 주인공 유이치 역시도 무기력하게 다가오고 그런 그를 이지매 하는 아이들의 심리도 이해하기 힘든다. 그 이해하기 힘든 간격 사이에 그들 세대라고 불릴만한 단절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이지매를 당하고 그걸 강하게 이겨내거나 저항하기 보다는 자신을 이해해 줄만한 인터넷 속의 단문에 빠져들고 릴리 슈슈의 음악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회피 하는 것..무기력한 이들 세대의 가장 큰 특징임에도 그냥 보고 있기에는 답답한 면이 있다. 실제 그 상황이라면?이라고 상상해 보면 역시 영화 속의 유이치와 나의 모습이 별반 다를바 없다 하더라고 ..그 모습 그대로를 영화 속에서 반복해서 보고 느낀다는 건 꽤 피곤한 일이다. 슌지의 초기작들이 가지고 있는 수수함과 만화같은 감수성..그걸 더욱 돋보이게 하는 간견할 이야기가 더욱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퇴보 한 것이 아니라 그의 감성이 너무 충만해서 소화가 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이가 점점 더 감수성을 잃어가는 기성세대가 되어 가고 나이를 먹고 건조해지니..이런 과잉 감수성에 익사할 지경인지도...슌지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나의 노쇄함을 확인 하는 것 같다는 점에서 2009년도에 감상하는 릴리 슈슈의 세계는 개인적으로는 스스로가 퇴보되는 것인가? 라는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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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life 2009. 9. 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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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작 : TBS
방 영 : 2006년 3월 22일
감 독 : 요시다 켄(吉田健)
각 본 : 야마자키 준야(山崎淳也)
원 작 : 소설 [조금은 은혜를 갚을 수 있었는지" - 키타하라 미키코 著 (고단샤 발행)] 

출 연 : 니노야 카즈나리(二宮和也)
          이케와키 지즈루(池脇千鶴)
          카즈지 료(勝地涼)
          카즈무라 마사노부(勝村政信)
          오기 시게미츠(小木茂光)
          무라타 타케히로([村田雄浩)
          오오타케 시노부(大竹しのぶ)
          타카하시 잇세이(高橋一生)=쿠도 칸쿠로(宮藤官九郎)
          타니 케이(谷啓)
          카쿠 토모히로(郭智博)

음 악 : 카사마츠 야스히로(笠松泰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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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프다. 낳을 수 없을만큼 너무 많이 아프다. 어떤 약으로도 이겨낼 수 없을 만큼 아프다. 드라마 속의 카즈노리는 희망없이 아픈 것이다. 실제 병에 관한 많은 실화 드라마 중에서도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묘미는 확실한 대답이 없이도 살아있는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주인공의 노력이 너무나 큰 교휸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 시작과 함께 자막으로 처리된 실화를 재구성이라는 문구는 당연한 감동의 큰 바탕이자 원동력이다.

가족 역시 이와 같은 사실은 본인에게 알리고 그의 남은 삶을 최대한 함께 나누기 위해 노력한다. 동경대학을 위한 준비도 합격 이후의 공부도 점점 심해지는 병과 싸우는 것도...혹은 차마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사실 조차도 함께 인식하고 함께 나눈다. 눈물이 나는 일상에도 그저 울고만 있지만 있는 이들 모두의 삶은 병에 대한 환자의 태도는 물론이거니와 병과 상관이 없이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강요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으로도 큰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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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어가는 몸..하지만 모든 인간의 몸은 죽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삶의 고통의 정도나 남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압박감이 한 인간에게 주는 무게를 그 무게감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모습이 주변인들에게 주는 감동과 교훈처럼 판에 박힌 이 드라마 속 한 인간의 삶이 한 해를 마감하는 지금의  내게 주는 교훈은 과연 무언지...
저절로 마음이 무거워 지고 또 그만큼 뜨거워 진다. 드라마 속의 대사처럼 한결 같은 삶을 살아간 주인공... 그것의 가치를 어찌 작게 평가할 수 있을까 !!

- 드라마속 대사 -
"목표가 있으면 힘낼 수 있다"
by kinolife 2006. 12. 3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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