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우라사와 나오키(浦澤 直樹)
출판사: 학산출판사
총권: 1~23권 완결
1998. 02.25 초판1쇄 발행

어느 가난한 집에 착한 딸은 도박을 즐기는, 아니 도박에 발을 담그게 된 오빠 때문에 가장이 되고 말았다. 고등학교를 일년 놔두고 있지만 오빠가 진 빚(우리 돈으로 2억 5천)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학업이란 사치가 되버렸다. 꼭 이런 주인공 밑에는 그저 착하기만 한 디딤돌은 커녕 걸림돌이 형제가 위에 꼭 포진해 있다. 성별은 주인공이 여자일 경우엔 남자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주인공의 성이 바뀔땐 그 걸림돌의 성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아무튼, 이 만화의 주인공 미유키는 가라오케, 터키탕과 같은 곳에서 망가지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필살기인 테니스에 승부를 걸어본다. 미유키가 테니스채를 잡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문제의 오빠와 빚 이외데도 키워야 되는 동생들이 셋이나 있으니까 그녀에겐 말 그대로 큰 돈을 마련해야만 하는 벼랑에서 부모님이 남겨주신 필살기를 쓸 수 밖에 없다. 말 그대로 만화같은 이유이지만, 이 이유는 미유키가 테니스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근거가 된다.  


가난한 이 주인공이 동생들에게 해 줄수 있는 것은 양파가 갈색이 될때까지 볶아서 만들어줄 수 있는 카레뿐, 동생들에겐 보다 맛있는 음식이, 미유키에겐 오빠의 빚을 갚아 다 같이 사는 인생의 목표가 뚜렷해 지고, 이들 가족 주위에 빚을 받아내기 위한 야쿠자들의 목적까지 가세하면서 그녀의 테니스 코트로의 복귀를 다그친다. 아마시절, 챔피언이기도 했지만, 미유키에게 있어 테니스는 복잡한 가족사 내에 얽힌 아픔임을, 그래서 미유키의 상황에 대한 절박함이 느껴지는 부분은 이쩨까지 우라사와 나오키가 보여줬던 사건의 복선이 주는 묘미의 작은 발현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주인공의 성공에는 수많은 역경이 따르기 마련인데, 가난한 자에게 있어서의 스포츠가 주는 굴욕감이 타고난 재능을 가로막는 부분이나, 부정한 승리욕에 가득한 라이벌의 계책이 주는 강력하면서도 짜증나는 묘미, 그리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작은 코미디와 순진한 사랑은 이 만화의 숨길 수 없는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면에서는 꼬이고 꼬이는 인물들이 복잡한 구조로 엮어지는 듯 보이지만, 어느 인물하나 불필요한 (하다못해 협회 회장의 개 존 트라볼트까지도)인물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져가는 사건사건들은 만화를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미국 US오픈, 영국의 윔블던, 까지 이어지는 테니스 잔치의 향연으로 끌어 들인다. 물론 일본 테니스계의 부폐와 승리를 위해 철면피로 변하는 클럽회장이나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야쿠자들의 지리한 행보들이 타이트 한 구조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역시 스포츠 만화의 묘미는 시합이 벌어지는 코트에서의 에피소드들이 주는 재미들이다. 개인적으로 야구만화는 몇번 본 적 있지만 정통 테니스만화는 처음이어서 생소한듯 했지만 책장을 남길수록 역시 하나의 스포츠에는 그만의 흥미거리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테니스 코트가 가지고 있는 땅의 표면이나 잔디의 변화가 주는 특성이나 , 테니스화의 차이, 코칭스탭과 선수의 육체가 지니고 있는 잠재적인 능력에 대한 작가의 코멘트들은 만화의 흥미를 끊임없이 유발시킨다.
이렇게 강인한 정신력들 지니고 있는 주인공 주면에는 역시나 나약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면서 주변을 맴도는 마마보이류의 샌님이나 겉으로는 불같아도 속이 여린 남자들은 있기 마련이다. 미유키 주변을 맴도는 이 두 남자 이외에도 술이나 알콜에 쩔어지내는 진정한 실력자 코치도 하나의 도구였던 선수를 자신의 여동생이나 딸같은 포지션의 친구로 삼게 되는 과정을 통해 강인한 여성이 비탄에 빠진 남자들을 진정성이 통하는 한 인간으로 구해낸다.

가난한 천재 테니스 천재와 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의 테니스 귀재와의 양대 구도는 그것이 꼭 테니스가 아니라 무엇이라 해도 어쩌면 너무 뻔한 만화의 뼈대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속에 꼬여있는 모든 갈등들의 해결 속에는 언제나 인간의 깊은 정이 흐러고 있어 만화책을 보는 순간순간에는 무서울 수도 있고, 짜증스러울 수도 있지만, 책장을 덮을 때는 마치 꼭 읽었어야 되는 책을 읽어낸 듯한 쾌감을 선사한다. 마치 부무모님은 했음 하고, 나는 하기 싫어했던 숙제를 끝냈을 때의 푸듯함을 주는 것은 역시 그의 탄탄한 구성능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극적인 요소를 풀어내는 작가의 힘이 결국은 미유키가 테니스의 본 고장이자 가장 권위 있는 윔블던에서 우승을 할거라는 것을, 그리고 말도 안되는 라이벌 쵸코는 그 전에 낙방, 결국 여왕과의 게임에서 승리할거라는 것, 결국 공이 빵처럼 크게 보이는 테니스의 시간 속으로 빠져버려 우승하고 말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흥분해서 보게되는 이유기기도 하다. 그래서 만화 속의 함성을 자연스럽게 동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몇년 전에 방영됐던 SBS 드라마 <라이벌>은 스포츠의 무대를 현재 한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스포츠 골프로 옮기는 잔머리를 쓰면서 적당히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를 다 본 건 아니지만, 이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고 보기에는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나 구조가 많이 단순화 되어서 웰 메이든 드라마라는 생각을 가질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마치 만화 속의 큰 이야기 하나를 토대로 필요한 에피소드들을 찾아서 조각을 맞춰놓은 듯한 느낌이었으니 원작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낸 느낌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독창성이 있을리 없고, 주변의 인물들의 캐릭터 역시도 기존의 드라마에 필요한 사람들만 배치해 평이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렇게 쉽게 드라마를 찍어냈다는 생각이 들다보니, 미유키의 막내 동생은 "그건 아니야"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by kinolife 2006. 7. 12. 23:36